6월14일
복음주의
어제 매일묵상에서 언급한 ‘율법주의’와 대별되는 것이 ‘복음주의’다. 복음주의는 복음을 신앙의 토대로 삼는 태도를 가리킨다. 기쁜 소식이라는 뜻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가리킨다. 그것이 복음인 이유는 인간의 노력과 업적이라는 값을 내는 게 아니라 그런 값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아무런 노력 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건 이 세상 작동원리에 기본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연봉도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아닌가. 율법주의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그런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바탕에 둔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 논리에 길들여진 사람은 아무런 노력 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거나 구원받는다는 말을 해괴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복음의 능력을 깨달을 수 있다. 보라. 세상에서도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모두 값을 치루지 않고 그냥 받는다. 사랑의 능력에 휩싸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은 그냥 받는 것이지 반대급부로 받는 게 아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 사건도 우리가 그냥 받았다. 그렇게 숨 쉬고, 먹고, 마시며 산다.
복음주의는 인간 내부에서 구원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extra nos(우리 밖에서)! 율법은 우리 안에서 그것을 찾는 것이다. 우리 밖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건이 구원이다. 이런 기독교 교리가 실감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구원’을 너무 협소하게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아니 그것을 인간의 사유 범주 안에 한정시킨다는 데에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배타적 사건이다. 그분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요즘 나의 관심 사항인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도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에게 일어난 사건, 그의 가르침과 운명을 온전히 믿음으로써 그 해방의 힘에 들어간다. 그래서 그 사건을 복음(유앙겔리온)이라고 한다. 복음의 참된 능력에 휩싸이기를!
날씨의 변화에 민감한 저는
추위나 바람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모릅니다.
예전에 한창 사이클 탈때 도로에서 기진맥진하여 전진하고자 하나,
봄철에 불어대는 바람을 감당할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 원망이 나오더군요.
"아이씨, 쓸데없이 왜 자꾸 바람이 부는거야!!!!! ...."
근데, 감사하게도 담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법대로 자연이 순종하는거고, 봄에 바람을 일으키셔서 나무에 물이 오르게 하신다. 이 깨우침 이후로는 날씨에 대해 이런저런 원망을 접고, 오늘은 많이 춥네, 요즘엔 비가 넘 자주오네 정도로 내 맘을 표현하게 되더군요. 더불어 체력이 딸려서 좋아하던 싸이클도 접었고요.
정 목사님이 쓰신 율법과 복음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왜 이런 분을 한국 교회에서는 자유주의자라고 매도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