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1일
귀신(2)
여기서 귀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무엇을 귀신이라고 하느냐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더 우선이다. 옥황상제와 같은 존재를 생각한다면 무신론이 더 옳다.
귀신은 생명을 파괴하는 존재론적 능력을 가리킨다. 이런 규정을 전제한다면 나도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거라사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현대 의학 개념에 근거해서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 이유는 괴기 영화에서 보듯이 귀신이 사람 안에 들어가서 피부를 거칠게 만들거나 심지어 침대를 공중부양 시키는 존재로 보는 걸 반대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미친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 안으로 들어갔다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참고적으로, 보수 신학을 견지하고 있는 영국 성서학자 바클레이는 유명한 <바클레이 주석>에서 돼지 떼 몰사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친 사람이 갑자기 고함을 치니까 돼지 떼가 놀라서 비탈 아래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이야기인데, 돼지도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호수에 빠져도 죽지는 않는다. 복음서 기자들이 굳이 돼지를 끌어들인 이유는 그게 부정한 짐승으로서 이방인들을 위한 먹을거리라는 데에 있다. 부정한 짐승이 죽는 거는 그들이 볼 때 통쾌한 일이다.
귀신을 ‘존재론적 능력’이라고 말한 이유는 우리가 그 대상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를 우리가 극복할 수 없듯이 악한 힘도 우리가 극복할 수 없다. 돼지 떼에게 들어간 귀신이 갈릴리 호수에서 몰사했다 해서 악한 세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능력은 어느 때이건 기회만 되면 등장한다. 귀신 이야기가 고대인들의 유치한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걸 통해서 그들이 말하려고 한 것만은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유효하다. 악과 죄의 심층!
레드 님, 안녕하세요?
불운이 한 개인에게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악한 영이 어떤 개인에게 반복해서 영향을 끼친다고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 저로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악한 영 역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여 있으니까요.
인간 세상에는 불행이 없을 수가 없어요.
누군가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그게 나를 피해가라는 법은 없는 거지요.
박완서 선생은 남편과 아들을 몇년 사이에 잃었어요.
저주스러운 운명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운명이 자기를 피해가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말에서
큰 위로를 받고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하네요.
반복되는 불운을 저는 여전히 우연한 경우라고 보며,
그걸 내가 극복하라는 게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와 악이 득실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악령을 끊을 수 있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종말이 돼야 악령이 타파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서 살면서 그것과 함께 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요? 요란하고 속이 빈 방식이 아니라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싶은데 그게 무엇일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