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2일
귀신(3)
구약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욥을 시험에 빠뜨린 이가 사탄이다. 사탄은 욥을 극한의 고통 가운데 빠지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내기를 한다. 저주스러운 불행이 닥치면 욥이 하나님을 부정하는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욥기가 신화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서로 충돌하는 몇 가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1) 하나님은 선하다.
2) 하나님은 전능하다.
3) 그런데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불행이 일어난다.
4) 사탄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놓은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가해하다. 어떤 논리로도 다 해명이 안 되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 난치병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을 보라. 얼마 전에 이상한 사고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생이 죽으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에 어떤 공무원이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부부였다. 아내는 만삭이었다. 자살하던 그 학생이 공무원을 덮쳐서 함께 죽었다. 몇 초만 시간이 어긋났으면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일으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연하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문학적으로는 사탄, 또는 귀신의 간섭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으로 ‘귀신론’이 한국교회에서 나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것은 삶과 역사의 신비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기보다는 주술에 속한다는 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 신비와 주술은 겉으로 비슷해보여도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다. 더구나 한국교회의 귀신론은 주술의 자연주의적 두려움이라는 깊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종교적 ‘여흥’에,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유흥’에 불과하다.
목사님의 깊은 통찰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도 한때는 귀신에 대한 지식에 많은 접근을 한적이 있습니다.
묘심화의 빙의나 민속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서정범교수의 한국무속인열전등도 열독하며
국내 유명 축귀자들이나 해외축귀자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한때 유명했던 내가 본 천국(펄시 콜레)의 책이나 집회에 참석도 했습니다.
유명한 과학자이며, 유체이탈 경험자인스베덴보리의 책을 읽으면서 저도 그런 체험을 하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당시에도 이상한점은 있었습니다. 축귀후에도 다음날 귀신들렸던자에게 다시 귀신을 불러내면 또 나오더군요.
이름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은 유사했습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도 다음날 또 있고, 또 있고, 또 있고
끊임없이 귀신은 사람속에 있었습니다. 귀신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의 대화 방식이나 귀신들린자의 신체의 진동이나 반응은 늘 유사했습니다. 그리고 병은 낫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개인의 체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축귀목사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다고 선포하였지만, 단상에서 내려온 환자는 여전히 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믿음으로 자신이 고쳐졌다고 말하는 바람에 실제로 낫지도 않은 병이 나은것처럼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지요. 저는 병이 나았다고 간증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병이 낫지도 않았지만, 교회에서 배운대로 나았다고 믿음으로 주장하면 그 믿음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여 끝내 자신이 나았다고 주장하다가 죽어가는것을 피하지 아니하고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았다고 주장하던 그 순간에는 그의 글이나 간증비디오가 불티나게 전파되는것을 보았지요.
목사님의 통찰은 정확하십니다. 제가 존경의 표현으로 말씀드리는것은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저는 사실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공개 검증을 하자고 하면 정말 자신이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을 밝혀낼 자신도 있습니다.
귀신쫓는다는 유명한 교회에 완전 불신자 연기자를 목사라고 보내서 (교인들을 속이고) 그가 지방에서 유명한 귀신쫓는 목사라고 소개한 다음에 귀신을 쫓개 한다면 제 생각에는 그 유명한 교회의 교인들은 다 귀신이 예수이름으로 쫓겨나가고 병이 낫는다고 난리가 날것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