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3일
채식주의자
지난 설교에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한번 언급했다. 영혜라는 이름의 여자를 주변에 있는 세 사람의 시각으로 풀어간 연작 소설로 맨부커 상을 수상했다 해서 유명해진 작품이다. 남편, 형부, 언니라는 세 사람이 영혜에 대해서 말한다. 결국 영혜는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운명에 처한다. 영혜가 미친 건지, 주변의 사람들이 미친 건지 누가 100%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으랴.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는 잠꼬대처럼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누가 그 말을 제 정신 차린 사람의 말로 알아듣겠는가. 나무는 육식을 하지 않고, 다른 것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저 물과 햇빛과 땅만 있으면 다른 것에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런 삶이 인간 세계에서는, 그리고 모든 동물 세계에서조차 불가능하다. 특히 문명이 발달한 인류사회에서는 자신이 아무리 최소한의 것으로만 생명을 부지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딸의 입에 고기를 강제로 쑤셔 넣는다. 그래야만 딸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폭력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정의로, 또는 가족애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기세가 이제 조금씩 숙지고 있긴 해도.
작품성은 둘째 치고 <채식주의자>가 21세기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 울림이 크다. 육식성 삶의 행태가 현대 문명의 토대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금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지난 역사에서 또 있었을까? 우주과학자들은 인류가 영원히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 주장하면서 우주 탐색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의 인류 문화와 삶의 행태를 우주에도 이식시키는 것이라면 나는 거기에 반대다. 그나저나 여전히 숯불구이 돼지목살에 군침이 도는 걸 보니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아예 글렀나 보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육식은 뇌의 크기를 급격하게 키운 가장 큰 공신입니다.
단백질의 섭취가 머리를 키우고 생각을 키우게 되었지요.
지금도 기초대사량의 가장 큰 부분의 소모를 뇌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무를 너무 순진하게 본것 같군요
식물계도 동물계 못지않게 약육강식과 자연선택이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옆나무보다 더 커서 옆나무가 햇빛을 못보게하고 자신만 보려고 하는 이기주의적인 나무들을 숲에서 많이 봅니다.
옆나무가 더 커져서 햇볕을 보지 못하여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는 나무들도 많이 있습니다.
옆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옆나무의 성장을 막고 죽이기까지 하는 칡넝쿨을 못봤나보군요 한강씨가요
나무 뿌리들이 서로 얽혀서 더 많은 수분을 자신이 뽑아올리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기도 하지요.
자연은 비슷합니다. 식물계나 동물계나요
제가 한강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입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소설인데
이 책을 읽고 한 3일 동안 정신이 멍~했습니다.
그 날에 있었던 참혹한 일들을 어찌 그리 담담하고 자세하게
시적으로 표현을 했는지... 책을 읽고 한동안 후유증이 컸습니다.
지난 5월 18일에 이 책을 추천할까 하다가 아쉽게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
그리고 나서 올해 초에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은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되려고 했던 영애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사라져 비를 맞으며
서있는 영애의 모습이요. 나무가 되려고 했던 영애의 모습이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것처럼 이리와 어린 양이 뛰노는 곳이겠죠?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방법으로 모든 것이 연합되고
연결되어 있어서 굳이 우리가 서로 물고 뜯고 싸우지 않아도,
먹고 먹히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곳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