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9일
동성애(3)
‘당신은 동성애를 찬성하나, 아니면 반대하나?’ 이건 단순히 찬반으로 대답할 주제는 아니다. 나는 동성애자들의 생리적, 심리적, 정서적 정체를 모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말할 게 없다. ‘왜 그럴까. 이해가 안 되네.’ 하는 정도의 느낌만 있다. 그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떤 특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소극적으로 말할 수 있다. 동성애자들의 성적 취향은 기독교 신앙과 직접 관계되는 것이 아니니 기독교 이름으로 찬반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울은 독신으로 살았고, 베드로는 결혼했다. 결혼은 자신이 선택해야 할 문제이지 신앙의 본질이 아닌 거와 같다. 동성애 반대를 설교의 주제로 삼거나 퀴어 축제를 따라다니면서 반대 피켓을 드는 이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하겠다. ‘그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너나 잘해라. 다름을 나쁨으로 전제하지 마시라.’
동성애는 성경이 분명히 거부하고 있지 않냐, 하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신학석사 학위 논문을 쓰는 게 아니니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자.
1) 동성애는 변태다.
2)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다.
3) 동성애는 가족제도를 해체시킨다.
4) 동성애는 로마서에서 바울도 죄로 말한 것이다.
5) 동성애는 인구를 감소시킨다.
6) 동성애는 윤리 규범을 파괴한다.
7) 동성애 부부가 입양한 아이의 정신 건강이 위태롭다.
8) 동성애는 선천적인 게 아니라 후천적인 것이다.
등등....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저걸 내가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에이즈 원인이라는 말은 근거가 없는 거고, 가족 해체는 비혼자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왈가왈부할 거도 없고, 더 근본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게 왜 나쁜지 나는 모르겠다.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동성애가 성서적으로 죄라는 사실과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라는 사실이다. 과연 그런가? 성서는 꼭 짚어서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가? 예수도 역시 동성애자들을 비난할까?
누구나 볼 수 있는 개방된 행진 혹은 축제에서 자극적이고 더럽게까지 보이는 그런 행동들에는 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표현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다만 동성애 반대냐 찬성이냐 중에 꼭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는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동성애 안에 한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바꾸어 가도록 해야하는지에 대한 권고가 필요하며,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지지 않도록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에 필리핀에 잠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게이가 많은 이유가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부재하고 학교에 가도 선생님들이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다보니 남자아이들이 성정체성을 제대로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후천적 요인으로 작용하는게 단지 이런 이유뿐만은 아니겠죠. 또 다른 여러 환경적 요인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 만약 선천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무조건 후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인간의 노력 혹은 반대나 강압적 저지로 이성애자로 바뀔 수없는 일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더럽다고 침을 뱉어서는 안되고요.
그런데 보수 기독단체에서는 그냥 더럽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사탄이라도 씌인 것처럼 퇴마사가 되어 그들을 박멸하려 듭니다.
정작 정말 이 사회의 구조적인 악, 마치 사탄과 같이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의 부를 팽창시켜가는 일들엔 무관심하면서 말이죠.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위선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왜 유독 동성애 문제에 이렇게 열성을 다하는 것일까요?
왜 성도들에게 동성애의 부정적 인식을 세뇌시켜서 동성애에 맞서싸우는 충성스런 군사들이 되게하는건가요?
기독교신앙의 본질엔 접근하지 못한채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일들에만 몰입되어있는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이런현상으로까지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제 아이패드미니는 한번에 긴글이 등록이 안되서 중요하지도 않은 글을 쓸데없이 요래 나눠썼습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이라는 소설을 재밌게 본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무인도에 갇히게 되는데,
들뢰즈는 이 무인도를 자아에 앞선 세게, 자아가 없는 세계로 읽습니다.
욕망이 구조화되었다면, 그 욕망의 구조 이전의 더 근원적인 욕망? 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기억하기로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해변의 모래에
성기를 삽입하고 대지와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동물말고 동굴과도? 사랑을 나누고, 다양하게 사랑한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너무나도 재미나게 봤고,
백번 공감할 뿐더러 뭔가 카타르시스까지 느꼈습니다.
왜냐면 제가 늘 벗어나고 싶었던 어떤 무의식적 구조라는 벽을
자유롭게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소설속 아주 아름다운 문장이 기억납니다.
'눈은 빛이되고, 귀는 소리가 된다.'
캬 ~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에 든 상태일까요?
아무튼, 무인도에서 나오게 되면 우리는 다시 자아를 가지고, 욕망의 모델을 가지게 되겠죠.
그 욕망의 모델이 동성애일 수도 있고, 또 그걸 충분히 인정도 합니다.
다만, 저는 동성애의 결과가 파괴적이라는 겁니다.
http://blog.daum.net/sweetieolivia/76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한 통계입니다.
에이즈 환자중 동성애자의 비율이 대충 봐도 최소 50%이상은 됩니다.
70%가 넘기도 하고요.
이성애자의 비율에 비해, 동성애자가 극소수인점을 비추었을 때,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근거없는이야기는 당연 말도 안돼죠...
에이즈가 저정도면 성병은 말할것도 없겠죠.
목사님은 분명히 이전댓글에서,
동성애자들의 사랑이 비위생적이지도 비정상적이지도 않다는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셨는데,
이말씀은 정확하게
항문성교는 비위생적이지도 않고, 비정상적이지도 않다는 말씀이시죠?
배변과 피와 정액과 성병의 원인이되는 바이러스들이 뒤섞여있는 그 행위가 정당하고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는거 맞나요?
동성애자는 당연히 사랑해야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이죠.
그게 인문학의 기본정신 아닌가요...
그러나, 동성애는 아니 정확히 항문성교와 같은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문제라고 봅니다.
잘 생각하셔야한다고 봅니다.
목사님과 같은 위치에서 그냥 동성애는 문제없다고 턱하니 이야기하시는건
어쩌면 또 한명의 에이즈 환자, 성병환자, 항문성교중독자를 만들어내는 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