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행위

Views 1606 Votes 0 2016.07.02 21: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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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위

 

나는 주로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에 걸쳐서 설교를 준비한다. 그 설교문을 들고 주일 강단에 선다. 평생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다. 설교가 학교 선생의 강의와 비슷한 거 같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다. 학교 학생들은 몇 년 후에 졸업하지만 신자들에게는 졸업이 없다. 그리고 학생들은 나이나 실력이 비슷하지만 신자들은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신자들에게 수년, 수십 년 설교하는 설교자의 운명은 둘 중의 하나다. 돌팔이 약장수가 되든지 진리를 향한 구도자가 되든지.

설교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하나다. 예수에게 일어난 사건을 전하는 것이다. 그걸 케리그마(kerygma)라고 한다. 그의 오심, 그의 고난과 십자가,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이라는 사건과 그 신학적 의미를 신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신약은 일단 다 케리그마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그걸 잘 따라가면 되지만, 구약은 좀 다르다. 내일 설교하게 될 엘리사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는 기원전 9세기 북이스라엘에 있었던 선지자 전승에 속한다. 그걸 드라마틱하게 전할 수는 있다. 다윗과 솔로몬 이야기를 그렇게 전하듯이 말이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엘리사 선지자 같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신자들도 기꺼이 은혜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말하지 않으면 기독교 설교로서는 충분하지 못한 거다.

그건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사건을 매 주일 전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신자들이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면 성경 내용도 대충 파악하고, 교리도 어느 정도 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 그가 십자가에 처형당함으로써 인류가 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 그의 부활로 인해서 종말의 궁극적인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대충은 안다. 이런 내용을 그들에게 매번 새롭게 전한다는 것은 일단 불가능하다. 그러나 설교자 스스로 새롭게 깨닫는 게 있다면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설교자의 길은 구도적이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신자들의 일상이 기독교 신앙과는 평소에 거리가 너무 멀다는 사실이다. 일주일 내도록 세상에서 돈벌이와 경쟁과 자식 걱정에 파묻혀 살던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에 귀를 기울이기는 힘들다. 그들에게 예수 이야기는 낯설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설교자들은 세상살이에 힘들어하는 이들의 귀에 편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로 설교를 채운다. 통속 드라마 수준의 이야기라면 잘 들리지 않겠는가. 이틀에 걸쳐서 엘리사와 나아만 장군 이야기를 설교로 작성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이런 매일묵상을 쓰게 했다.


staytrue

2016.07.03 00:13:38

ㅎㅎㅎ 정말 극한직업이네요.
저라면 좀 오래 신앙한 신자들에게는
설교를 시킬것 같습니다. 준비해서 해보라고 ...
목사님이 같이 봐주면서 토론하고 ...
이런 시도 함 해보심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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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7.03 21:45:29

좋은 아이디어군요.

고려해보겠습니다.

내가 편하기는 할 텐데,

그러면 사례비도 삭감해야 할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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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7.03 21:29:17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약장사는 참 대단한것 같아요.

한개의 설교는 나이와 사회적분포가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각각이 알아서 듣리도록 만드는 대단한 능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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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7.03 21: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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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장사, 음

내게 말문이 확 트이면

그걸 좀 흉내내볼 텐데...

신학공부

2016.07.03 22:16:22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빠질 수 없는 건 맞는데

궁극적으로 설교가 지향해야 할 것은 하나님나라라고 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으라!"

이 마가복음 1장 15절이 모든 기독교 설교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성경구절은 예수님이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이지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전우주적 통치와 역사의 종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인간의 회개와 믿음이 모든 설교의 공통된 주제와 내용이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하나님나라 사건의 중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자체가 하나님나라의 사건화이니까요.

 

한국 교회는 설교를 기술적으로 잘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데 신경쓰지 말고

이런 설교의 신학과 내용에 보다 더 신경을 쓰고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 목사님은 모범적인 설교자로 한국 교회사에 길이 남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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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7.04 14:07:32

설교의 내용과 전달 기술(또는 능력)이

잘 겸비된 설교가 되는 게 최선인데,

쉬운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그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게 아닐는지요.

좋은 하루!

주안

2016.07.05 00:44:12

제가 아는 목사도

목회중 제일 힘든 것은 주일설교 라하더군요.


언변은 타고나더라도

해석은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부분 노력 없이 약장수 처럼 교인들 듣기 좋은 말만 하고

교회 성장에만 관심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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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7.05 21:46:35

예배에서 설교의 비중을 낮추든지

아니면 다른 목사의 좋은 설교문을 읽는 게

되지도 않는 자기 설교를 하는 거보다는 나아보입니다.

가톨릭교회 미사에서 강론의 비중을

개신교회 예배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게 다 일리가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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