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 나라> 89-92쪽
목사님! 오늘은 분위기가 활기차고 목소리에
생기가 넘치십니다.
처음에 풀벌레소리 많이 들렸고, 닭울음소리, 새소리
나중엔 멍멍이 까지... 배경소리들로 인해서
여기가 무슨 무릉도원인가? 싶습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과거나 현재들이 해체되는것은
아니므로 인습적인 사고방식이 미래의힘과 양립한다
하시는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판넨베르크신학이 철저히 기독론적이지만 폐쇄적이거나
교리적이 아니라 역사철학에서 단초를 찾으려는
보편사적 신학이라는 설명 잘 알아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생명을 하나님나라의 임박함에서 발견했다 하시는군요.
그 임박한 하나님나라는 죽음을 직면할때
하나님과의 교통이 일어나는것으로 경험될수 있는것이고요.
그렇습니다. 그앞에서 체면이나 유행이나 봉사나 의미가 없습니다.
유한한 미래에 들어감으로써 피조물들이
더 큰 실재에 참여할것을 허락하십니다.
정말 안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게되었습니다.
사랑은 왜 무가 아니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하는
하이데거의 아포리즘이 교회안에서만 통용되는 사랑이 아닌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것이네요.
진정한 사랑의 창조성이 현재와 과거를 극복한
미래의 힘이다.____ 이런 명제들은 아직 무슨의미인지 모르겠지만요...
정성이 넘친 오늘 강해 감사합니다!! ^^
강의하는 나는 듣지 못한 소리를
녹음기가 다 잡아냈군요.
에스더 님이 정말 경청했나보군요.
어떤 나이든 여자 목소리도 끼어들었지요?
판넨베르크의 글을 강해하면서
나도 다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사랑이 낭만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미래의 힘으로서
오늘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 안에
우연성으로 참여하는 능력이라고 하네요.
이 강해를 마치고 나면
기독교 2천년 교리사를 다루는
폴 틸리히 책을 읽을까 생각 중입니다.
이게 너무 까다로우면
좀더 무난한 책을 찾아보지요.
구원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사랑의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고,
창조신학이 하나님의 사랑의 일하심이며,
사랑은 새로운 실재의 창조적 해방으로서
보다 큰 실재인 미래에 참여하게 한다니
놀랍고 고맙습니다.
더 반가운 것은 여성 가족의 목소리 였습니다.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분위기가 활기차고 목소리에
생기가 넘치십니다.
처음에 풀벌레소리 많이 들렸고, 닭울음소리, 새소리
나중엔 멍멍이 까지... 배경소리들로 인해서
여기가 무슨 무릉도원인가? 싶습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과거나 현재들이 해체되는것은
아니므로 인습적인 사고방식이 미래의힘과 양립한다
하시는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판넨베르크신학이 철저히 기독론적이지만 폐쇄적이거나
교리적이 아니라 역사철학에서 단초를 찾으려는
보편사적 신학이라는 설명 잘 알아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생명을 하나님나라의 임박함에서 발견했다 하시는군요.
그 임박한 하나님나라는 죽음을 직면할때
하나님과의 교통이 일어나는것으로 경험될수 있는것이고요.
그렇습니다. 그앞에서 체면이나 유행이나 봉사나 의미가 없습니다.
유한한 미래에 들어감으로써 피조물들이
더 큰 실재에 참여할것을 허락하십니다.
정말 안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게되었습니다.
사랑은 왜 무가 아니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하는
하이데거의 아포리즘이 교회안에서만 통용되는 사랑이 아닌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것이네요.
진정한 사랑의 창조성이 현재와 과거를 극복한
미래의 힘이다.____ 이런 명제들은 아직 무슨의미인지 모르겠지만요...
정성이 넘친 오늘 강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