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5일
골로새 교회(5)
골 1:14절은 이렇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기독교인들이 잘 알고 있는 구절이다. 이걸 단순히 구호로만 알고 있으면 말씀의 능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죄 사함이 무언지 알려면 죄가 무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은 인간의 저주스러운 운명이 다 죄 탓이라고 보았다. 가난, 질병, 사고, 죽음이 모두 죄 때문이다. 선악과 설화는 그건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해서 인류는 출산과 노동과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졸지에 재산과 가족과 건강을 잃은 욥을 향해서 친구들은 회개하라고 다그친다. 오늘 상당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산다. ‘당신들은 다 죄인이야.’ 하는 식으로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거꾸로 구원파 유의 교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의 피로 죄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주술적인 차원으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훨씬 근원적인 것이다. 내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죄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삶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강요와 유혹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염려는 다 여기서 나온다. 이런 염려로 인해서 과도하게 소유하려고 하고, 다른 이들을 파괴하고, 뻔뻔스러운 행동을 하고, 때로는 자기에게 절망한다. 이게 개인적으로도 나타나고, 국가적으로도 나타난다. 이런 염려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죄 사함이다.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우리가 실제로 모든 염려를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 그리고 벗어날 수 없다면 ‘왜’ 그런지 각자 답을 찾아보자.
목사님
골로새서 1장 14절은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구속을 받았습니다. 곧 죄들이 용서받았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죄들의 용서가 바로 구속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죄의 용서, 곧 죄 사함라고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죄와 죄들은 다릅니다. 로마서 5장 11절까지에서는 죄들이 다루어집니다. 5장 12절부터는 죄가 다루어집니다. 5장부터 8장까지에서 죄는 인격화되었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죄는 다만 하나의 행위가 아니다. 죄는 들어오고(롬 5;12), 왕 노릇하며(롬 5;21), 사람들을 지배하고(롬 6:14), 사람들을 속이며 죽이고(롬 7:11), 사람들 안에 거하며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하는(롬 7:17, 20) 하나의 인격과 같다. 죄는 살아 있고(롬 7:9), 대단히 활동적이다. 그러므로 죄는 악한 자 사탄의 악한 본성인 것이 분명하다. 사탄은 아담의 타락을 통해 자신을 사람 속에 주입한 후에 이제는 타락한 사람 안에 거하고 활동하고 일하는 바로 그 죄의 본성이 되었다. 이 내주하며 인격화된 죄의 본성은 밖의 모든 죄악이 가득한 행위들, 곧 죄들의 뿌리이다.
구속은 모든 죄악이 가득한 행위들, 곧 죄들의 용서입니다. 죄의 용서가 아닙니다. 혹시 그런 것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