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6일
기도 냉소주의
지난 설교 시간에 기도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 현대 지성인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믿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 시대가 그렇게 만든다. 지금 이 시대는 가파르게 과학 실증주의로 치닫고 있다. 과학적으로 실증이 되지 않는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 인공지능만 해도 그렇다. 현대 지성인들은 인공지능이 현실화되는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면 하나님은 자리에서 밀려날 것이다.
굳이 인공지능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다. 현대 지성인들은 자신의 운명에 하나님이 개입하지 못(안)한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유무신론 논쟁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교육철학 자체가 철저하게 유물론적이다. 돈과 권력이 삶의 최종적 목표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얼마 전에 교육부 고위 관리가 국민을 개, 돼지로 봐야 한다고 말해서 곤욕을 치렀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한두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 돼지를 면하기 위해서 상층부로 올라 가는 것이 삶의 최종 목표로 생각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드릴 생각을 하겠는가.
약간 노골적으로 말해보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일상에 개입하실까? 기도하는 사람의 기업체는 성공하고, 병도 낫고, 자식들도 다 잘될까? 물론 그런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기도해야 하나? 그냥 기독교의 교양이고, 품위인가? 이런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기도는 우리의 삶에서 멀어질 것이다.
내 소원을 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때의 제소원은 내가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땅에서 잘살기 위한것들 이었죠..
자녀가 원하는것은 아버지도 원한다고 배웠기에..
하나님은 저와 같은마음, 같은 뜻이라 생각한거죠..
새롭게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이 나와 완전히 다름을 알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신앙했던 양반은 과연 누구였나? 싶습니다.
한동안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몰라서 예전처럼의 기도는 할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기도라는것.. 조심스럽게 하게 됐는데요..
기도를 왜 하는가? 의 질문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금의 기도는..하나님이 알고 싶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가도록 나의 생각과 영을 모두 열어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모든 상황과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하나님 뜻과는 무관한 경쟁과 자기성취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삶의 과정안에서 공평과 정의로 살아야할 우리는 어떤 모습과 어떤태도로 살아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지혜를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끊임없이 내중심으로 살고 싶은데..
이 욕심이 바뀌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일상에 개입하실까? 기도하는 사람의 기업체는 성공하고, 병도 낫고, 자식들도 다 잘될까?
모태 신앙에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저희 아버지는 20년이상 질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금전적으로 어렵고,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항상 어릴 적부터 아버징의 쾌유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가? 나의 일상에 개입하시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해 예배를 쉬고, 그냥 시간을 보냈고, 반항 아닌 반항을 한다고 교회에 안 나갔고요.
그리고 언제부턴가 일상의 일은 우리에게 맡기신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면서 기도를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내용도 제 염려로 인한 간구가 대부분이라, 매번 "하나님, 상황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 주세요. 일상을 잘 해결할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라는 내용이라 하나님을 도구화 시키는 내용이라서요. 글을 쓰다보니, '주기도문'이 생각나네요. 대부분의 기도는 대부분 자기에게 집중 되어 있기때문에,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주신 걸까요? 기도의 내용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내용으로 채우는게 맞는 걸까요?
전 신학 지식도 없지만 몇자 댓글 달아봅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지 않게 기도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전 그게 불가능 하리라고 보아 집니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냇가에 자리잡는 이유....집을 남향을 향하게 짓는 이유....남쪽으로 큰 창을 내는 이유...
등등이 자기유익을 찾기 위함입니다.
또 재앙으로 부터 보호 받을려는 심리가 종교가 태생한 것 아닌지요?
우리가 세상에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처한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잘못된 기도 일까요?
자녀가 잘 되기를 빌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
이것들은 잘못된 기도라면....솔직하지 못하고 알맹이는 없는 공허한 기도가 되지 않을까요?
내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기도가 가능할까요?
위 알아야, 센트로, 은나라 님의 생각이 다 옳습니다.
특히 은나라 님의 생각이 기도의 중심을 뚫고 있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일상의 여러가지 일을 간구할 수 있지요.
당연히 간구해야 합니다.
저도 주일 예배 시 중보기도 순서에서
교인들의 일상을 위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다만 하나님의 개입하는 방식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다는 걸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철없는 자식들의 요청에 대한 부모들의 응답이
자식들의 기대와 다르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사실 뭐가 우리에게 좋은 건지를 모르거든요.
예전에 김영삼 대통령을 당선시킨 "우리가 남이가?" 주역들이
나중에 모두 김영삼 대통령 정부의 주요 요직에 임명되었습니다.
개 돼지 발언을 한 고위 공직자도 지금은 욕을 먹지만
나중에 그는 제대로 한 자리 해먹을 것입니다.
권력자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셈입니다.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댓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