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0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눅 11:9절은 아주 매력적인 말씀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걸 무조건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방식으로 매달리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으면 고단한 현실을 뚫고나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하나님이 기계적으로 응답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교(성서) 신앙은 자기가 욕망하는 것을 신의 도움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다. 자식들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데 취업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집도 주시고, 건강과 장수도 허락해달라는 것은 기도라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나열하는 것뿐이다. 이런 요구들은 이 세상에서 서로 충돌한다. 대학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드시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모두 똑같이 기도했다면 결국 한쪽은 실망하고 만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이미 받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제 묵상에서 ‘일용할 양식’을 설명했다. 그런 기도를 드린 사람은 이미 응답받은 것이다.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하듯이, 먹을거리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눈다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는 사실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일용할 양식이 조금 부족해도 불만하지 않고, 조금 넘쳐도 교만해하지 않는다. 운명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여기서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1)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 자체가 = 바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하나님 통치 안에 산다는 것이 이런 뜻이군요. 교회 안에서 교육 된 개념이나, 누군가의 간증으로 전해진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나라, 그 나라를 깨닫고, 그 나라를 구하며 사는 것, 그게 하나님 통치 안에 사는 것이네요. . 그 나라를 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를 받은 것이라니.... 저에게는참 새로운 해석입니다.
2) '욕망의 나열'에서 부분에서 뜨끔합니다. 성서 공부를 계속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기복 신앙으로 회귀 할 것 같아서요.
3) 운명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여기서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