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
바알숭배
성서기자들이 말하는 북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는 바알숭배였다. 이것은 북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남유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바알숭배가 다산과 풍요 이데올로기라고 설교 시간에 말했다. 바알숭배는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숙명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게 바로 죄의 본질인 셈이다.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처음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상해보자. 가나안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성경은 일곱 부족이 있었다고 말한다. 가나안은 인근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생활 조건이 좋았다. 일찍이 철기문명이 발달했다고 한다. 철로 농기구를 만들면 경쟁력이 높아진다. 무기도 그렇다. 놋으로 만든 무기와 철로 만든 무기는 성능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인이라서 상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다르게 말했다. 비록 그들이 엄청난 전투력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이 도우시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어찌어찌 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조금씩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의 세부적인 이야기를 성경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전투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할 때 일어났다. 예루살렘은 천연 요새라고 이스라엘이 정복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었다.
가나안의 문명과 바알숭배는 단단히 묶여 있었다. 광야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문명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면 축제를 열었다. 당시 축제는 당연히 바알 숭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많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축제 기간에는 성적인 자유도 보장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가나안 문명은 발전했다. 오늘도 가나안의 바알숭배는 반복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현대 문명을 거부해야 옳은가,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게 옳은가, 그냥 들어가도 되는가. 로마 문명 앞에 선 초기 기독교의 운명과 가나안 문명 앞에 선 고대 이스라엘의 운명이 비슷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운명에 마주섰다. 이에 관해서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들은 리처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를 참조하기 바란다.
오타 (마지막 문단 두번째 줄) : 광야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문면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0살 때, 동아리에서 '그리스도와 문화'를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나요. ㅠㅠ 책장을 뒤져봐야겠네요.
남편이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하곤 하는데...... 우리 운명도 수 천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 초대교인과 다르지 않네요. 묵상에 나오는 질문은 항상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