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일
어리석은 부자
지난 설교에서 바알숭배 문제를 거론하다가 제3 독서인 눅 12:13-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끌어들였다. 이 비유에는 두 가지 입장이 충돌한다. 한 가지는 소유를 통해서 삶을 확인하려는 입장이고, 다른 한 가지는 소유를 통해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각각의 입장에서 많은 논리를 더 많이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쟁은 끝없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크게 잘못한 사람이 아니다. 남의 것을 강탈한 것도 아니고, 고리대금을 한 것도 아니다. 악한 사람이 아니다. 농사를 잘 지어서 풍년이 들었으니,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곡식창고를 더 크게 짓는 것도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현대인들 역시 다 이 사람처럼 돈을 쌓아놓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방식으로 산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으로 살지 않는가.
이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부자라거나 부도덕하거나 인색하다는 사실에 있는 게 아니라 위에서 짚은 것처럼 재물로 자기 삶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는 데에 있다. 좋은 집에서 맛있는 거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매일 진수성찬을 먹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먹는 기쁨을 아는 게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맛을 잃는 순간이 온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늘 건강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무조건 기쁜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잠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그런 삶이 반복되면 공허와 허무에 빠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이것이 곧 호세아가 말하는 바알숭배의 실체다. 인간이 바알숭배를 완전히 떠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또 다른 문제다.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로 자기 삶을 실현할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이든 그것으로 자기삶을 실현할수 있다고 확신하는것은 모두 바알 숭배라는 거네요..
잠정적일 수밖에 없는것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그것이 어리석음이라는 거구요..
우린 모두 바알숭배와 어리석음속에 사는것 아닌가? 생각해요.. 어쩔수없이..
문명속에 사니까 더 많이 어리석을수 있고,
또 문명속에 살지 않는 사람도 인간의 근본욕심(죄의 근성)에서 해방될수는 없다고 봐요..
이 어리석음에서 해방과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야겠지요.
우리를 구원하실분은 예수그리스도시니까..그분께 집중하면서 그분이 선포한 오고있는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면서..
또 하나님나라를 매순간 살아내야 겠지요?
요약) 바알숭배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가나안 사람들 & 로마인들: 소유를 통해서 삶을 확인
=현대인(기독교인): 돈을 쌓아놓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 바알 숭배가 어리석은 이유 : 재물로 자기 삶의 실현 확신
= 잠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에 자신의 운명 둠
-> 결과(바알 숭배의 실체): 공허와 허무에 빠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음
어떻게 보면 인간은 재물이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냐? 라는 이분법 속에서 결정을 할 운명에
처해진것 같습니다. 고대 사회나 초대 교회 시대나 현대 사회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작동 원리는
재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네요. 성령님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네요.
또한 어리석은 부자는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의
의미를 모르고 실천을 못한 것도 있다고 봅니다.
나만을 생각하고 우리를 돌아보지 못한 잘못이 있는 거지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우리 이웃도 사랑해야겠지요.
우리 모두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않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