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번역

Views 3399 Votes 0 2016.08.08 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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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

 

지난 설교 본문의 한 구절인 히 11:3절은 이렇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앞 대목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뒤 대목은 이해하기 어렵다.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는 게 무슨 말인가? 공동번역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고 했다. 루터는 무에서 나왔다.’고 했다. 공동번역은 말이 되게 번역했고, 루터는 신학적으로 번역했다. 개역개정은 초보자 수준에 벗어나지 못했다.

12:19절은 이렇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들레다.’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사전을 찾아보니 큰 소리를 지른다는 뜻의 순수 우리말이다. 웃기는 번역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우리말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대중이 잘 쓰지 않는 단어를 끌어들이는 건 문제다. 다른 구절에도 종종 이렇게 순수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몰라도, 이렇게 갑자기 끌어들이는 건 번역의 일관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11:1절에 나오는 실상과 증거라는 단어도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건 설교에서 짚었다.

내가 보기에 한국교회는 성경을 번역할 능력이 부족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학자들을 키우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성경 번역이 수익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찬송가도 마찬가지다.


주안

2016.08.08 22:43:37

그런 점에서는 천주교가 잘 되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주로 천주교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어플도요.


히11: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마12: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소텔리온

2016.08.09 07:06:48

정목사님~^^
단어의 번역에만 문제가 있는건 아니죠

예를 들자면 하나님 또는 하느님 이란 번역도 억지죠^^

여호와라는 분명한 이름과 표호를 두고 느닷없이 왠 하나님?

십자가란 단어도 사실 원어엔 없잔아요^^
그냥 나무를 왜 크로스라고 해서 헷갈리게 했을까요^^

지옥이란 말도 히브리어엔 찾아볼 수 없는 말이고요

너무 많죠

엉터리로 번역한 자들~~~

정목사님 지적처럼~~~수익사업에 눈먼 도둑놈들이 이지경을 만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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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09 07:40:20

웨스트코트와 호트의 성서번역이 더 좋다는 이야기인가요?

소텔리온

2016.08.10 06:22:33

웃음님^^
어떤 번역판이 더 좋으냐? 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바르게 번역해야 한다는 거죠.

제도적 교단 교파 교회라는게 만들어지는 바람에 마치 정당정치 처럼 자기가 소속한 교단 교파의 교리를 위해 억지로 번역하는...불손한 의도를 저는 지적하는 거랍니다^^

예를 들어 무슨 KJV 가 오류가 없는 우수한 번역성경이라는등...
말보횐지 먼지 지가 번역헌것이 진짜 성경이고
다른 성경은 사탄의 성경이라는 헛소릴 지껄이면서 책 장사에 눈 먼 늠들도 판을 치잔아요?

사사로운 이익에 치우치지 말고 가감없이 번역을 하는게 합당하지요^^

모르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던지...

사실 기독교에서 소위 십자가신앙? 십자가 영성? 십자가 신학등...십자가 십자가만 평생 외치며 어주 십자가 없으면 모든것이 끝장나듯 나불대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기독교안에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사실 성경에 십자가로 번역한것은
정말 신의 한수? 였네요^^

정목사님도 익히 아시겠지만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나무였어요

일자로된 긴 나무 기둥에 못박혔지요

에스더서에 보면 악한 하만이 모르두게를 죽이려고 마당에 긴 나무기둥을 세웠잔아요?

십자가는 초기 사도님들이 생존하던 당시에도 전혀 없었던것이 나중에 스며 들어와서 마치 원래 성경에 있었던 것처럼 되어버렸다네요...

기가막힌것은 신학을 공부했을 유명한 목사들조차 이 십자가에대한 진실을 묻어? 두고...신자들을 기만했다는 거죠...

사실 예수님께서 나무기둥에 죽으셨어도 그 대속의 큰 은혜와 능력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거든요^^

그냥 그렇다는거죠모...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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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11 07:56:25

네.. 그렇게 말씀하셨군요?

날씨가 상당히 덥습니다.

건강은 주의하고 계신거죠? 


사실 성경을 번역하신분들이 쓰신 책을 보면 성경번역이 그리 쉬운문제는 아닙니다.

어쩌면 번역을 하는 즉시 반역이 될지도 모릅니다.

성경왜곡의 역사라는 책에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우리는 성경을 읽는 즉시 이미 왜곡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속에서 자신에게 맞도록 이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정용섭목사님이 말씀하신 성경번역의 왜곡은 신학적인 부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님께서는 단어 하나에 매달리는 형태네요.

성경의 단어를 직역할수가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잡으로 제사장들이 데리고 온 하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하인이 아랫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원문의 뜻을 보면 배의 맨 아랫칸에서 노를 젓는 사람을 의미하지요.  만약 직역해서 제사장들이 배의 아래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를 잡으로 왔다고 번역해 놓으면 우린 헷갈리겠지요?

신약의 사본이 6000개쯤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단 하나도 같은것이 없다고 합니다.  어디 한곳은 서로 다르지요. 그걸 전문용어로 이문이라고 합니다.   성서를 번역하던 사람들 말고, 성서를 필사하던 사람들도 고민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자기들이 필사하다가 실수를 한것도 있지만, 자신들이 이해가 안되면 수정도 했습니다. 수정하고 각주를 달아 놓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수정해버리고 아무말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지요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 쉽게 나무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일자형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고고학적인 발견이 여러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내용은 십자가입니다. 이는 케리그마의 한 형태로 보시기 바랍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자면 성서는 번역이 불가하며,(쿠란은 그래서 번역을 못합니다. 번역한것은 쿠란이 아니지요)  원문 그대로 뜻을 모르고 암송하는것이 그나마 제일 낫게 된다는 쪽으로 흐르게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서 성서에는 게마트리아나 노타리콘 테무라등의 기법이 사용된곳이 있습니다. 그런것은 절대로 번역하면 나올수 없는 것들이지요.   일예로 예레미야 애가서의 경우 두음자시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건 번역하는 순간 그 맛이 다 사라져버리지요. 


또한 성서의 시들이 운율이 있었던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서가 글로 기록되는 순간 그 운율들은 사라졌지요.


십자가는 예수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나무라고 원문에 되어 있지만 고고학물에 의해서 십자가형태의 형틀도 있었고요.


이송오목사라는 사람의 킹제임스버전 찬양의 말씀보존학회를 말하는것 같은데,  아마도 책 장사라기 보다는 맹신에 가까운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킹제임스파들은 구원파와 그 맥을 같이 하더군요


제 생각에는 성서를 번역하신분들이 쓰신 책을 보시면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실것이고 성서를 보는 눈이 더 밝아질듯 합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이 번역하고서 쓴 책들이 좀 있습니다. 오래되어서 구할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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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8.11 11:11:48

웃음 님의 설명이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읽기의 내공이 대단하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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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12 02:48:31

존경하는 정목사님의 칭찬에 으쓱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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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16.08.11 15:50:22

웃음님, 술술 잘 읽혀지는 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웃음님의 글쓰기가 점점 더 편안해지네요.

그래서 더 잘 읽혀지나 봅니다.

소텔리온님께도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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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12 02:49:49

라라누님의 댓글이 저를 기쁘게 해줍니다..

잘 지내시지요?

언제 한번 뵈어요^^ 

소텔리온

2016.08.14 04:11:25

요즘 찜통 더위라 답글이 늦었네요^^

웃음님은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셨군요^^

다른 언어를 또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하는건 불가능하지요^^

우리나라의 좋은 시를 영어로 아무리 잘 번역 해도 영어권 문화에 익숙한 이들을 만족시키긴 어렵죠^^

그래서 노벨문학상이 우리나라에서 나오기 어렵다고 갠적으로 생각합니다

성경번역을 완벽하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단어 하나에 치우친다고 걱정하시는데요...
사실 단어 하나에 목멘것은 기독교의 신학자들이라 봅니다^^

기독교 2000 년 역사에서 무수히 치룬 전쟁으 교리전쟁이지요^^

저는 솔직히 신학자들이 오히려 성경을 읽는데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해요

기독교라는 종교와 상과없이 차라리 언어학자들 중심으로 성경을 번역했더라면...
특정교리에 치우치지 않고 아무런 사심없이 번역을 했다면 싶습니다^^

쓸데없는 교리논쟁을 유발시킨건 각자 주장하는 신학적 논리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생존하던 당시에 무슨 신학적 이론과 교리로 피터지게 싸울일이 있었을까요?

나중에 플라톤의 제자들...이들은 기독교에서 존경하는 교부신학자들이지요...이 교부들로부터 촉발된 각종 교리싸움때문에 어마무시한 사람들이 죽음을 강요당했었답니다

님도 아시는 중세 유럽을 통치했던 로마 카톨릭의 교황주의자들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온갖 종류의 교리를 수호 한다는 미명하에 저질러졌었던 종교재판,마녀사냥...

예수님과 사도들께서 피 흘리시면서도 전혀 행한바 없는 몹쓸 짓들을 성경 교리지킨다는 말도안되는 논리와 기독교적 소명? 으로 신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만행들의 배후에는 교리와 신학이 지배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기독교에서 여전히 위용을 과시하는 삼대 전통적 교리를 기준삼아서 여전히 그 교리에 반하면 이단 사이비가되어 배척을 하지요


기독교역사에서 교리를 만들고 콘스탄틴이라는 이방 황제가 주도하는 종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선포되는 각종 교리와 신조들...

성경을 빙자하지만 사실 성경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오히려 성경적이다 라고 광포했었고...그 효력은 여전히 지금 이 시대의 기독교를 통해 여전히 살아 진행되고 있고..

기독교의 교리를 위하여 단어를 변경해야했고 그 단어 하나때문에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은 의도와 메시지가 가려졌습니다

그 대표적은 것들이 영혼불멸사상, 지옥교리, 삼위일체교리임은 말할것도 없고요^^

거기에 여호와의 고유한 이름이 하나님? 으로 둔갑하고 ...
스올이나 게헨나가 불타는 고통의 지옥이라는 교리가 만들어지고...
천국아니면 지옥이란 교리때문에 사라진 왕국과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이 사라지게 되죠

참다운 성경적 복음은 심판! 이죠.

이 진정한 복음이 예천불지에 의하여 가려져버리죠^^

기독교에 복음 복음은 노래 부르지만...실제 참다운 복음이 이미 실종된체 오로지 각자의 교리들만 살아 큰소릴 칩니다^^

기독교의 믿음이란 실상 플라톤의 사상에 포로된 교리일 뿐이죠

이 기독교의 교리를 빼면 기독교의 믿음은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냥 저의 소신이 이렇답니다

교리라는 누룩에 취하게 되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지요

많이 덥지요^^

그냥 소설한번 썼습니다

웃음님 감사합니다. 심심한데 이렇게 관종에게 관심도 주시고...복받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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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15 00:54:52

즐거운 연휴라도 너무 더워서 그냥 책이나 읽고 있는것이 상책이네요.

저녁때 잠시 나가서 일본영화 한편 보고 왔습니다.

좋네요... 제가 어른이 되었는지 아직 부족한 어른인지... 암튼 영화가 그런 내용입니다.


신학무용론을 말씀하시는군요.

정목사님께서 종종 경계하시는건데....ㅠㅠ


님의 글을 보노라면. 님의 주장이 정말 신학적인 근거를 따라서 나온것이 아니고.. 유행을 따르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믿음을 따라 주고 받던 이야기속에서나 전개되던 그런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호와의 증인이신가요? 


교부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어렵고 난해하고 힘들더군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짧게 읽어봤는데 우리가 그냥 대충 그들의 신학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운운할만큼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삼위일체 논쟁도 그렇습니다.  서로 토론한 내용의 일부라도 보면 쉽게 님과 같은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번역도 그렇습니다.

나채운박사의 우리말성경연구 라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우리가 성경을 번역할때 님의 말씀대로 신학자들이 몇이 모여서 앉아서 지들끼리 싸우면서 지들 교리대로 번역한것처럼 누가 말했다면 그 사람 진짜 무식한 사람입니다. 

민영진 구 성서공회총무님이 쓰신 책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저는 솔직히 신학자들이 오히려 성경을 읽는데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해요

기독교라는 종교와 상과없이 차라리 언어학자들 중심으로 성경을 번역했더라면...
특정교리에 치우치지 않고 아무런 사심없이 번역을 했다면 싶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진짜로 성경번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하신 말씀이며, 아마도 무식한 목사들이 아무 생각없이 설교에서 떠들던 그런 근거없는 모함에서 나온 이야기를 재탕하신듯 하네요.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아시죠?  유진 피터슨이 쓰신 '그 책을 먹으라' 에 그러한 내용이 나오더군요

성서 원문이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정확한것이 아닙니다. 성서의 저자들은 지금의 글쓰기 보다 훨씬 실력이 달렸습니다. 그래서 신약성서중 너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접속사들이 있거나, 문법에 안맞는 문장이 있거나 하답니다.  그런 성경의 단어와 문장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그러면서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 문장들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번역의 역사가 한결 쉽게 해주고 있지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아 그러니까.. 성서의 여러부분들이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듯 그러니까.. 정확하게 의사전달이 그러니까 되는거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위의 말처럼요...  언어학자들이 번역을 잘 할것 같습니까?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영감을 따라 기록된 성서를 그 저자의 영감을 따라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제대로 된 번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성서가 그냥 신학자들만 참여 했다고 생각하나요? 국어학자들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는걸 모르시나요?


약간 제대로 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랑그와 파롤 시니피앙 시니피에에 대해서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랑그는 언어활동의 사회적인 부분으로 말하는 사람 개인이 반드시 따라야 할 '체계'이며, 파롤은 랑그가 개인에 따라 자유롭게 실현되는 '현상'이다.'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기호란 분리가능한 두 개의 요소, 즉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기호 속의 발음을 시니피앙, 그 발음에 의해서 생기는 관념적 내용을 시니피에로 간주하였다. '


위의 단어들은 다 소쉬르의 개발품들이고요


하나 더 말할것은 데리다의 차연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개'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복날에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고, 다른 사람은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무서운 동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개라는 단어로 생각하는 느낌이 다르지만 (위에서 말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설명)  데리다는 우리가 서로 알아 듣는것은 차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언어학을 전공한것이 아니라서 더 깊게 설명할 수 없지만

성서의 번역에서는 위의 것들이 상당히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마태공동체를 위해서 기록한 마태의 복음에서 마태가 사용한 단어와 마가가의 공동체를 위해서 마가가 쓴 마가의 복음의 단어가 비록 같다고 할찌라도  그 두사람은 분명 다른 개념의 단어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Q복음서의 인용을 따랐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주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시니피앙은 같았다고 하더라도 시니피에는 달랐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서가 사본들마다 차이가 있는것으로 추측합니다.

또한 성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고 사본들만 존재합니다.  그 사본들이 다 차이가 있습니다.  님의 주장대로 언어학자들이 성서를 번역한다고 한다면, 어떤 사본을 근거로 번역을 해야 할까요?  즉, 번역을 해야할 대상 사본이 특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성서번역할때 사용한 주요 사본은 무엇일까요?  물론 이것은 있습니다만, 결국 우리나라 성서를 번역할때 참고하는 수많은 다른 언어들의 성서가 있습니다. 영어성서 중국어성서등 다 참고가 되지요.


히브리성서가 딱 하나였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소라학자들이 조금 자기들이 정리를 했습니다만 현재 그래도 가장 권위 있는 사본은 뭐다 하는식으로 학자마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서 성경과 헬라어성경인 70인역은 그 내용에서 상당한 오차가 있습니다. 숫자같은것은 수시로 달라집니다.  


또한 히브리 성경이 어느 정도 원본과 유사한것으로 새롭게 정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실로가 오시기까지에서 그 실로가 무슨 말인지 현대인들이 모릅니다.  비파와 수금을 기록한 히브리 성서는 항상 비파와 수금을 동시에 말하였기에 사실 무엇이 비파이고 무엇이 수금인지 현대인들은 모릅니다.


모세가 애굽을 탈출할때(히브리성서에는 애굽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미쯔라임이라는 나라였지요) 광야에서 만든 성막의 모형이 대부분 이집트의 신전과 유사하게 생겼으며, 그 단어들이 이집트쪽에서 온 단어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고대 근동의 외래어들이 수없이 많이 히브리어와 관련이 있으며, 실제로 히브리어 자체가 외래어로 된것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여호와라는 단어가 없으며,  무슬림들이 있는곳에서 성서를 번역할때는 하나님을 알라라고 번역을 합니다. 또한 성서에서조차 하나님을 바알이라고 표현한 곳도 있습니다.

스올이나 게헨나의 변천사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다투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 설명해 보겠습니다.

토착화를 종교의 변질로 볼것이냐? 아니면 흐름으로 볼것이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그대로 유대종교의 틀을 완벽하게 유지하는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한국식으로 토착화 하는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중간에 어느 정도의 기준선이 있을까요? 기준선이 있다면 그것은 또 시대가 흐르면서 변할터인데 그 시대에 맞게 또 변화를 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한번 정한대로 유지해야 할 것일까요?


구약성서의 지옥의 개념과 신약성서의 지옥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개념도 달라지고요.


유대인들이 믿던 신화적인 배경의 기독교가 그대로 유지되는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는 우주론의 배경을 가진 기독교로 바뀌는것이 옳을까요?


예전에 제가 다비아에 쓴 글이 하나 있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릴께요

제가 여호와의 증인이 피가 들어 있는 선짓국을 먹지 않길래 그 사람에게 유대인들은 소고기를 먹더라도 소고기속의 빨강부분인 피를 완전히 제거한 음식 (코셔, 혹은 코셰르)을 먹습니다. (일명 할랄음식과 같은 개념입니다.)   탈수기가 세탁물에서 물을 빼듯이 유대인들은 소고기같은곳에서 피가 완전히 제거될수 있도록 탈혈기같은것으로 피를 제거하지요.  근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은 피를 먹지 않는다면서 선짓국은 안먹으면서 고기속에 포함된 피는 다 그냥 먹더군요.  또한 이스라엘은 혈액원이 있어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헌혈도 하고 수혈도 하고 삽니다.

그렇다면 고대 유대인들이 생각할때 피를 안먹는것은 코셰르음식을 먹는건데 그들이 보기에 여호와의 증인은 다 피를 먹고 있으면서 자기들은 안먹는다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성경해석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통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방식의 성경해석과 번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정통성도 없는 새로운 창작방식의 주장을 하면서 그것이 가장 근원적인 주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님께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더라고 이 예를 들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모세오경은 모세가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를 예수께서도 증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되찾기 위해서 단까지 쫓아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단이 어디입니까?  아브라함의 손자의 아들들중 단이 그 후손들을 낳아서 단 지파라고 하고 그 단지파가 가나안을 정복한후에 정착한곳중 저 윗쪽의 한곳을 단이라고 명명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듯 성경의 최초 구전에서는 절대로 단이라고 불렀을리 없는 그곳을 성경은 단이라고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성경의 번역은 독자의 이해를 쉽게 돕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으며, 이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전에 쓴 댓글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기독교는 플라톤의 영향만 받은것이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교부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요. 그가 누구냐고요? 아퀴나스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요.  사실 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님께서 플라톤을 자꾸 강조하셔서 한마디 한 것입니다.


결국 그렇습니다.

아까 말씀드린것처럼 기독교의 토착화냐? 아니면 기독교원형보존이냐? 부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토착화가 맞다고 생각하시면 플라톤의 영향을 받는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원형을 보존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하신다면,  문명을 버리시고 아미쉬(아미시)처럼 공동체를 만드셔서 그 안에서  사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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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15 15:18:47

'쓸데없는 교리논쟁을 유발시킨건 각자 주장하는 신학적 논리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생존하던 당시에 무슨 신학적 이론과 교리로 피터지게 싸울일이 있었을까요?'


라고 소텔리온님께서 댓글에서 이야기를 하셨네요


예수께서는 제사장들과 바리새파나 사두개파들과 분명히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논쟁을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그런 교리문제로 목숨을 걸고 피터지게 싸운거고요...

심지어는 사도들끼리 신학적인 입장이 달라서 서로 나뉘어지고 다툰것을 정녕 모른단 말입니까?


우린 논쟁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논쟁을 통해서 싸움이 일어나고 목숨을 잃는다면 안되겠지만 발전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초대교회당시에 사도들은 분명 자신의 주장에 목숨을 걸었고, 정통유대교와 정면으로 대립하였습니다. 


더위가 좀 식어지려나 봅니다.

한가할때 우리 서울샘터교회에서 만나 정목사님도 뵙고,  시원한 커피라도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뭐 피터지게 안싸우면서요...웃으면서 나눠보자고요...

저도 조만간 서울샘터교회에 가서 목사님도 뵙고 싶고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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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옥답

2016.08.16 10:54:53

댓글을 통해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내공이 상당하시네요~

관련된 책도 기회되면 읽어보겠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소텔리온

2016.08.17 03:52:53

웃음님의 해박한 지식에 탄복했어요^^
정말입니다.

저는 신학이 성경의 본질을 방해하였으며 가리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성경번역이 물론 완전하기를 바라서 이러는게 아니랍니다. 번역상의 오류와 실수는 당연한겁니다.

직역만을 고집함도 아니고
의역만을 고집함도 아니죠

물론 성경번역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중에 다양한 언어학자들이 함께 했을겁니다.
제가 단순하게 표현을 좀 무식하게 해서 미안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건 아니죠.

언어학자들이 번역하면 완전할것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세상에서 사라진이후라고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사도님들의 사후에 불어닥친 박해속에서 공개적으로 더구나 유대사회에서 예수님을 믿노라 말하는 모임이 곳곳으로 흩어졌다고 봐요

새로이 기득권을 잡게되는 대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정책적으로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게 되면서 새로운 비극이 열렸잔아요?

박해받던 입장에서 완전히 신분이 상승하게 되고...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으로 개종을 하게되고...
근근히 모임을 이어가던 그리스도인모임이나 가정공동체를 밀고하여 포상을 받아 부를 누리는 기득권들이 출현하고...

교부신학자들에게 드디어 출세와 성공과 명예가 보장되는 시대가 열린것이지요.

아시겠지만 종교회의를 주도한 실세는 콘스탄틴 황제죠?

황제의 정치적 전략적 제국을 통일하고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독교를 이용하는것은 당연한것이고. 그 당시 종교회의에 참석을 했었던 주교들 대표들이 과연 자기 소신것 주장했을까요?

황제가 이미 정한 가이드라인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기 위한 거수기 노릇을 하던가 아니면 죽음! 양자택일이 뻔하잔아요?

이교의 제국 황제가 주도하고 개최했었던 수 많은 종교회의에서 각종 신학적 이론들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을 신으로 선포하기도 하고 삼위일체나 각종 신조들이 황제의 입맛에 맞도록.. 혹은 황제의 편에 서서 줄을 잘서서 권력의 맛을 보려고 환장했을 탐욕의 무리들에 의하여 성경말씀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왜곡되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아직까지도 기독교에서는 종교회의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라고 주장하는걸 본적이 없죠.

무조건 전통을 중요하게? 라는 말로 여지껏 버텨왔지요^^

설마 기독교에서 자랑해마지않는 그 종교회의가 사도행전15장에 기록된 사도들의 회의와 본질이 같다? 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죠?^^

정리를 좀 해볼께요.

제가 성경번역에 일반 사회 언어학자들이 함께 동참해야 한다는 말의 본질은 이겁니다.

누구의 영향이나 눈치를 보지말고 학자적 양심과 소신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한가지 들어보죠.

칼빈시대에 칼빈이 세운 신학대학에 카스텔리오를 학장으로 임명했었는데 성경번역에 대한 입장이 달랐지요.

칼빈의 독단적인 운영에 사사건건 반대의견을 말하자 결국 카스텔리오를 해임시켜버립니다.

나중에 칼빈의 삼위일체교리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 세르베투스라는 당대의 신학자가 등장하고 자신의 교리를 비평하는 세르베투스를 종교재판소에 밀고를 해서 결국 화형으로 정적을 제거합니다. 이때 양심의 자유를 외치며 칼빈에게 쫓겨난 카스텔리오가 준엄하게 칼빈을 꾸짖게됩니다. 칼빈의영향력으로 카스텔리오는 설 자리를 잃고 결국 병으로 죽게되었다는 이야기죠.

이 말인즉, 누군가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이 성경번역에 가담했다 하더라도 결국 의미 없이 당시 기득권과 힘을 가진 특정 교리체제에 맞도록 번역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너무 순진한지 멍청한지 모르지만....기독교의 어떠한 교리나 신학적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그런 사람들로 구성을 해서 번역을 했더라면 그 번역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적어도 오늘날 부패와 타락이 하늘을 찌르는 기독교는 아니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답니다.

웃음님은 이미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으신 분인듯 보여요. 저의 무식한 글에 단번에 신학자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대변하시는 열정을 보이시니 말이죠^^

사도들께서도 교리 때문에 치열하게 싸웠다고요?

허허~~~

혹시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요한 때문에 함께 동행하지 않고 갈라선것?

아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들과 바울과 의논한 이야기?

신학자들이 복음서를 이리저리 찣어 발겨서 논쟁화시킨건 아니고요?

마가 공동체니 마태공동체니 누가 공동체니 서로 교리적으로 대척했었다? 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신학자들끼리 만들어내 것이죠.

솔직히...목사제도를 만든것이 과연 성경일까요?

아니죠.

칼빈이 목사제도를 추진한거잔아요.
목사만이 설교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제도적으로 부흥?시킨 인물이 장로교를 출범시켰던 칼빈이지요.

성경은 사도님들이 돌아가신 이후 더이상 사도직은 계승되지 않았다고 알려줍니다.

신학이라는 괴물이 판을치면서 성경에도 없는 온갖 이즘과 이론과 교리를 창작허게 되면서 기독교라는 짐승이 탄생한거지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단순하게 신앙을 영위했습니다.

그들에겐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증인들이며 사도들이 남겨준 서신서를 통해 다시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신앙하던 믿는 무리들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만든 기독교와 믿는 무리들과는 태생부터 달라요.

교부신학자들 오리겐 어거스틴 이들에의하여 제국의 기독교 교리 체제가 만들어 졌고 이들에 의하여 성경에 전혀 없는 플라톤의 삼대 철학이 지배하게 되는 기독교는 삼위일체, 영혼불멸,지옥교리가 만들어지면서 이 교리를 반대하면 이단으로 지목하여 철저하게 죽여버립니다.

중세 기독교 교황이 득세하던 시대, 개신교로 이어지면서 루터와 칼빈 마져도 교황주의의 독제체제에 반대하는 명분으로 나왔으나 여전히 교황의 교리 카톨릭의 전통교리와 이념들을 흡수해버립니다.

구원론,성화론,삼위일체론,기독론,교회론,등등...

그리고...

교회라는 건물을 상징하는 성경번역의 꼼수까지 더해지면서 단순히 믿는 무리 혹은 회중으로 번역해야 함에도 원어에도 없는 교회...쳐치라는 신종 단어로 번역하여서 마치 제도적 조직적 건물교회가 성경적인것처럼 속여왔지요

플라톤이든 아리스토텔레스든 뭔 상관이냐고요?

성경말씀의 원저자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과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과 사상으로 말씀을 왜곡하고 변질시키고 그럼에도 괜찮다고요?

헐~~~~

십자가상이든 십자고상이든 의미가 중요하다고요?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요?

그렇다면 성경 말씀이 뭔 필요가 있나요?

작금의 기독교와 한 배를 탄 목사 신학자들의 탐욕에 의하여 말씀이 가려지고 여호와의 뜻이 심각하게 훼방을 받고 멸시를 당해도 괜찮다고요?


정말 더운 여름입니다^^

웃음님의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에 탄복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이제 말복도 지났으니 더위도 한풀 꺾이겠지요.
덕분에 참 고맙고요

웃음님 정말 복 받으실겁니다.

저같은 하찮은 관종에게도 이리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주셨으니요^^

다시한번 감사해요^^

참!
쬐끄만 모바일로 글을 작성하다보니 오자 탈자 실수가 많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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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19 08:14:33

날씨가 좀 풀려가지요?

다행입니다.

모두들 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신학과 교리가 별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님께서 지금 주장하시는 그런 주장들이 다 신학과 교리이지요.

님이 생각하기에 틀렸다고 주장하는 그런것들이 신학이며 교리이듯이 님은 그런 신학과 교리를 다른식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적입장차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논쟁등을 보면 정치적인 개입은 없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논쟁에서 승리를 한 것입니다. 물론 반대파의 많은 주장들이 현존하지 않아서 잘 모를수는 있겠지만,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주장들을 합쳐본다면 그렇습니다.


님은 약간 성서의 문자주의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미 전 댓글들에서 말씀드린부분을 회피하시는 느낌이 듭니다.


님께서 대답을 못 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한번 연구를 해 보시면 많은 도움을 얻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테오도시우스나 콘스탄티누스의 등장으로 테르툴리아누스등이 마치 정치적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기가막힌 교리적 체계를 세운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현재 소텔리온님께서 믿고 계신 많은것들이 믿음의 조상들로 인해서 축적되어온 것들입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님의 주장도 님의 믿음도 아무것도 갈피를 잡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서를 예로 들어보지요. 성서가 처음 성서가 되기까지는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결코 성서가 확립된것도 아니지요.  그 당시의 사람들의 눈에는 더욱 불확실해 보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이 성서 66권이 떡 하니 앞에 있어서 이것이 성서인가보다 또는 이것이 성사라고 배워서 성서인줄 알지.  그 논쟁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이것이 성서일까?  왜 이것을 성서라고 해야하지?  이부분은 틀린것같고 이 부분은 전체적인 맥락이 안맞는것 같고 하며 수없이 고민하고 논쟁하였습니다.


님께서는 성서의 일부가 원문가 다르다고 주장하나, 처음에 성서의 정경을 결정하는 입장들에서는 일부 문구가 중요한것이 아니고, 성경의 각 권들이 문제가 있는것처럼 주장되었습니다.


님께서 지금 성서의 원문과 번역의 문제를 인간적이고, 또한 정치적이며 교리적인 문제만으로 부각을 시킨다면 아마 정경문제를 토론했던 그들을 보신다면 똑 같은 생각을 하시기 될 것입니다. 정경도 번역보다 훨씬 더 교리적이고 자기 주장적이었거든요.  지금의 정경을 받아들인자들은 위경이나 외경을 받아들이려 했던 자들에게 승리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것이 위경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경이지요.  그런것들은 다 교부와 황제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님의 주장을 확대하자면, 교리와 신학을 부인하게 되는것이 아니고, 정경과 믿음을 부인하게 되는 연장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의 믿음은 성경안에서 성경을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없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존재를 초월해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있다고 말하거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정목사님 설교나 신학을 자세히 보십시요

하나님은 존재의 근거를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계시는분입니다.

우리는 존재의 근거가 밖에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존재에 대해서 잘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우리가 알수 없고 경험하지 못한 존재의 범위에 가둘수 없습니다.


성서도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받아 적은줄 알았습니다.

그후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한번 초월해 보십시요.  무시하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 님이 붙들고 계신 그 성경을 한번 놓아보십시요.

하나님의 생명으로 들어가 보십시요. 하나님을 경험해 보십시요.  성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가르키고 있는 손가락이 아닌가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홍새로

2016.08.19 10:10:59

와~우~!!!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하네요.

 웃음님 댓글이 살아서 춤추는것 같습니다. 

한숨에 솨라락 제 머리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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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21 03:01:45

ㅎㅎ 대단한 칭찬이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워요^^

소텔리온

2016.08.21 03:18:12

날도 더운데 저같은 관종 상대하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웃음님~~어쩔수 없죠.

사랑이란게 쉽지많은 안잔아요^^
번거롭고 귀찮고 여간 . 그렇잔아요^^
그래도 모...어쩝니까 원수를 사랑까진 못할망정... 이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는게 일종의 사랑이잔아요^^

무관심이 저는 가장 나쁜거라 본답니다^^

신학적 입장차이라~~~
뭐 꼭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모든것이 신학적이라고해도 틀린것은 아니고...그렇다고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고...그렇다고 해두죠 ㅎ ㅎ

똑같은 것을 보고도 생각이 다양하니까요...

문자주의라...것도 부인하진 않습니다^^

성경정경화 작업에대한 말씀인가봅니다만...저는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성경 목록을 정해서 이건 정경이고 저건 위경이고 또 저건 외경이고...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 단체나 기관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왜 신학이 성경을 오히려 훼방하는 짓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요. 지금 웃음님이 주장하는 신학적 그런 주장들 때문입니다.

삼위일체교리나 기독교에서 전통교리라고 주장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제가 좀 거칠게 표현을 해볼께요. 미안합니다.

소위 목사 신학자들이 얼마나 버릇이 없냐하면요

창조주의 말씀을 밥먹듯이 무시하고 우롱하는짓을 하면서도 그걸 인지를 못한다는거죠.

정경목록을 인간이 결정했다는 기독교의 주장만봐도 그렇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임과 공동체안에서는...그러니까 사도님들이 생존하던 당시부터 생각해보죠.
당시 믿는 무리들(*기독교에서 흔히 초대교회 라고 하는 그 대상들이 믿는 무리 혹은 회중입니다.) 과 공동체에서 널리 그리고 의심없이 정경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했던 구약성경이 이미 존재하였다는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님들과 예수님 사후 약 30년~50년 사이에 복음서들이 기록되었으며 당시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억하던 생존자들이 부활의 목격자들이 살아있었다는걸 기억해야 하죠.

당시 많은 위서들이 있었다해도 정확하게 복음서와 서신서를 구분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마치 자기들이 정경화 작업을 했다는듯이 자랑하지만...웃기는 헛소리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당시 유대사회속에서 진정으로 예수님의 공생애와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부활 하심을 보고 들었던 수 많은 믿는 무리들을 간과하는 대담함을 인정해야만 할겁니다.

실제적으로 이 믿는 무리들은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배재시켜버리고서는 마치 기독교가 성경 정경에 이바지한것처럼 떠벌린다는 겁니다.

얌니야공의회에서 구약성경 정경목록을 결정했다는 썰이 있기도 전에 초기 그리스도인 믿는 무리들의 모임과 공동체안에서는 이미 구약성경을 널리 수용하고 정경이라 결정한 목록의 성경을 인정 했었다는걸 기독교는 일부러 지우고싶어 환장한다는 거죠.

신약정경목록을 했다는 히포공의회도 마찬가지예요. 어차피 교부들에 의하여 자기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썰을 풀기 전에 이미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서와 서신서를 이미 수용하고 있었던것을 마치 기독교에 의하여 목록이 결정된것처럼 호들값을 떨었다는거죠.


신학적...신학적...
신학이 얼마나 버르장머리가 없느냐 하면요.

창조주의 말씀을 아주 하찮고 농담으로 치부하는 대담함을 저질러요.

창조주께서 에덴 동산에서 명하신것...정녕 죽으리라!

이 말씀을 듣고도 뱀이 하는 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요?

죽을까 하노라...

얼마나 대담한 주장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은 정녕 죽으리라 하심인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안죽을 확률이 더 높다는 주장이죠?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의 원조아닌가요?

에스겔서에는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하십니다.

창세기를 설화나 신화로 보는 자들이 누구일까요?

교부신학자들의 영향을 이어받은 신학자들입니다.

이 주장으로 기독교는 성경을 취사선택해서 이 말씀은 믿을만하니 믿어주고 저 말씀은 말도안되니 설화라고 비아냥거리죠.

이성과 지성이라는 고상한 소리로 창세기를 설화라고 단정해버림으로써...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창조주의 선언을 아주 가볍게 무시해버립니다. 누가요?

생각해보세요. 누구겠어요!?

창세기부터 이미 신화나 설화로 봐야한다는 신학적 주장을 하는 것이 불교일까요 ? 아님 무슬림인가요?

기독교가 앞장서서 주장하는거죠.
이 주장으로 얼마든지 신학자들 입맛에 맡게 창조주의 말씀은 얼마든지 무시되며 조롱당하게 된것이고 기독교 2000년 역사동안에 충분히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멸시한 유대인들의 역사를 보세요.
기독교라고 다를거 같아요?

기독교에서 자랑해대는 믿음의 조상들이요? 사도님들 이후에 등장한 속사도? 교부들? 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흩어졌습니다.

기독교에서 정경목록을 결정한것과 상관없이 믿는 무리들은 성경을 사랑하며 다시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이들은 제도적 교회안에 머문적도 없으며 신학적 사변논리에 끼어든적도 없었으며 순수한 마음과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님들의 서신서를 함께 읽고 그 교훈안에 거한 삶을 살았던겁니다.

신학적 사상과 온갖 교리에 의한 예전이나 예배의식과 각종 절기나 교회력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지극히 단순하지만 말씀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웃음님이 아미쉬공동체를 잠간 언급하셨는데...어쩌면 그들의 피 흘린 역사가 오히려 기독교의 반성경적인 독선적인 역사보다 더 존경할만 하다봅니다.

기독교의 교리수호에 의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열매들이 어떻게 사도님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비교할 수가 있나요?

기독교는 스스로 성경이 창조주의 말씀임을 부정하는 사악한 종교임을 인정하지 않아요.

예수님의 말씀에...그 열매로 알리라!

도대체 그동안 기독교에서 맺은 열매들을 보세요.

예수님과 사도님들과 그 분을 따랐던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과 비슷한 열매가 어디 있나요?

결국 돈과명예와 권력뿐 더 있나요?

성경말씀을 온갖 신학자들의 허망한 논리로 이리저리 찣어발겨서 도무지 원형을 볼 수 없도록 말씀하신 경고를 들을 수 없도록 훼방한 짓거리 외에 뭘 잘한게 있나요?

신학이론이나 학설이 여러분의 믿음을 성경을 온전하게 믿도록 도와 줍디까?

그 요상한 궤술의 온갖 잡스런 교리들로 인하여 창조주의 말씀조차 농담으로 생각하도록 여러분을 속인것을 정녕 모르십니까?

참다운 복음을 감추고 평생 신학 이론이나 뒤적거리다가 결국 생을 마치고 예수님앞에 설 때~ 그 때에도 교리나 사상을 들고 대답하실 작정인가요?

이 싸이트에 산적한 신학자료들만 평생 들여다보다가....어쩌시려고요?

한 문장가지고 신구약66권 보다 더 많은 썰들을 풀어재끼는 논문따위에 감동하다가 정말 후회할 때가 닥치면 어쩌시려고요?

그들의 달콤한 교리와 주장들이 여러분을 구원할거라 믿나요?

저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사람인지라 자격은 없지만 창조주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신학 교리는 정말 백해 무익하다는 것만 전합니다.

제가 단순무식해서 신학적으로 우수한 여러분에게 이런 주장 해봤자 소용 없다는걸 잘 알지만~~~
그냥 안타까움에 소설 한번 써봤습니다.

웃음님~~ 고맙고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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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2016.08.21 08:15:41

재미난 소설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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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22 00:21:43

요즘 많이 바쁘네요...

정말 님께 대답하기 위한 시간을 내는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창세기의 신화는 일반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의 뜻으로 신화라는 단어가 사용되는것은 아니고,  조상들로부터 집단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신화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또 창조 둘째날에 씨맺는 나무들을 창조하셨는데, 아쉽게도 하나님께서 깜빡하셨는지 셋째날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지 뭡니까?  이 글을 그대로 읽으면 둘째날과 세째날이 뒤바뀐것으로 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순차적으로 표현한 진술이 아니기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는 당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영감으로 알게된 시인이 지은 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 진술이라면 저걸 어떻게 설명할수 있나요? 하나님이니까 그렇게 하실수 있다고 말할것인가요?


교회사와 기독교사상사에는 승자의 자료들만 즐비합니다. 대부분의 패자들의 자료들은 사라졌기 때문에 님의 주장대로 정경이 대부분의 신자들에게서 이미 정해진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아닐것입니다.  정경과 위경등이 함께 공존했습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여러말씀이 구약성서에 안나오고 신약성서의 여러가지 내용들중 구약외경을 인용한것들이 많다는것을 아시는지요?  예수님께서도 아마도 구약 정경을 그대로 믿으신것은 아닌듯 하네요...


성서는 화석이 아닙니다. 성서는 생명이 있지요. 그리고 성서는 흐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히브리서는 시편 110편의 미드라쉬라고 표현을 합니다.   구약성서의 일부분이 신약성서를 통해서 더욱 커졌고, 성장했습니다.  또한 성서시대의 사람들의 생각과 표현이 우리와 달랐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를 문자로 그대로 유지하는것은 옳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를 유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자신들을 합리화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서의 점하는 자를 죽이라거나 신약성서의 네 오른손이 범죄하거든 찍어 버리라는 말씀은 자신들에게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새로운 해석을 해서 자신들을 정당화 하지요. 그러면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절은 그대로 적용하여 성서대로 산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신학은 님의 말씀대로 창조주의 말씀을 좀더 체계적으로 설명하는것 이외에 별다른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말씀인 성서의 틀린부분은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절대로 문자주의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요.


정목사님의 설교나 신학을 주의깊게 들어보시면 많은것을 배우실 것입니다. 최근 정목사님께서 어떤 질문에 답변을 하셨는데 직접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서시대의 사람들의 글쓰기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은 우리와 달른점이 많았지요.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부분은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서에 대해서 다시 말씀 드립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님 우수하시고 대단하신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한글의 단점이 하나 있네요. 그것은 한글에서 명사중 성별구분이 없는것입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명사가 성별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나 그런것은 여성명사지요.  유럽쪽의 나라들은 대부분 이렇게 글씨자체에 성별구분이 되는 표시가 들어갑니다.  예수는 남성명사이고 예루살렘은 여성명사인데 이걸 번역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예수가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부분을 님께서 번역하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리고도 아마 여성명사일것입니다. 도시나 산은 대부분 여성명사거든요.


우리의 성서는 이미 많이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글성서로 많은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이것은 비단 언어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상황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신학을 해야 합니다.


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제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믿을만한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저나 정용섭목사님은 진화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가 하나님안에서 옳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흙에서 그냥 빚어진것이 아니고, 진화되었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며, 성서는 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님이 옳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님께서 이곳에 들어오셔서 님의 주장을 펼치시기 위해서 정목사님의 설교비평을 인용하시면서 님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건달들이나 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서 착한 기독교인들에게 삥을 뜯기 위해서 양아치가 기독교인들의 성서를 들먹이면서,  성서구절을 인용하며 구하는자에게 주라 거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로 돈을 뺏어 가는 행위와 같습니다.  진실한 사랑과 뜻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숨긴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상대의 선량한 마음과 주장을 이용하는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님이 그토록 성서의 문자를 주장하고 그것을 믿는다고 강조하는것을 제가 역 이용하여서 성서의 말씀대로 제가 님께 달라고 하면 님은 오십보 갈것을 백보 가주겠습니까?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을 주시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훌륭한 성서의 말씀을 듣는 분이시라면 창조주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분이라면 님의 통장에 있는 모든 돈을 저에게 송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송금하신다고 하면 제 계좌번호를 올리겠습니다.


즐거운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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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16.08.22 00:31:18

웃음님, 신의 한수, 명불허전입니다.

끝구절 읽다가 뒤로 넘어갈뻔 했어요. ^^



소텔리온

2016.08.22 03:31:27

웃음님도 참~~~^^
아직도 저에게 사랑을 나눠주시려고요?

참 고상하게 저를 엿을 먹이시니 님 맘이 좀 즐거워지셨나요^^
그런식으로 저를 이기면 별거인가요^^

님이 믿는 믿음의 조상들이 과연 로마 카톨릭의 교황과 그 추종자들과 교부들이 맞나요?

교리와 신학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단 정죄하고 종교제판소를 설치하여 반대자들을 지들 맘대로 마녀사냥식 재판과 고문과 살인을 행한 그 기독교의 만행들이 정당하다 이말이군요?

믿음의 조상들이 어디까지인지조차 알지 못하면서.. 기독교의 역사가 마치 신약성경과 이어지는 것처럼 세뇌당한 것이 바로 신학의 영향이랍니다.

문자주의로 저를 몰아가면서 허허^^
제미나네요^^

제가 언제 성경번역의 완전성을 주장하던가요?

모르는 부분은 그냥 원어 그대로 남겨두고 이 부분은 번역이 불가하다고 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그걸 마치 번역헌거처럼 속인자들이 문제라니까요?

왜곡을 불사하면서 말이죠.

신학의 도움을 받아야만 성경이 이해가 된다고요?

틴테일이 번역의 목적이 빈부귀천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오히려 신학이 그 본질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이 오히려 신학의 시녀노릇을 하고 있는 시대죠.

아직 제 말이 님에게 전달이 안되는 이유가 안타깝네요...

창조주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신학의 도움으로 20고개 숨바꼭질 하듯이 창조주를 찾아야 헌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들었던 분들의 증언이 후세를 위하여 문자와 언어로 기록되고 보존 되었다는 것을 단순하게 믿으면 바보가 되는건가요?

님에게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 혹시 알고 계시다면 간단하게 알려 주실수 있나요?

도대체 성경은 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평생을 신학자들의 글과 주장을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다고 하던가요?

웃음님!

그렇다면 저는 신학 전혀 모르니까 게시판을 옮겨서 저에게 성경을 통해 알게된 것을 전달해 주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복음을 좀 전해보세요

기꺼이 경청할 준비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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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22 17:52:56

소텔리온님!

오늘은 오전과 오후만 바뻤고, 지금은 그래도 한가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가지 일만 해 버리면 바쁜것은 없네요


제 말에 많이 섭섭하셨지요?

약간 섭섭하시라고 그렇게 썼습니다.

이유는 소텔리온님께서 다비아에 들어오셨을때 제가 소텔리온님을 공격했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제가 같은 방법으로 한번 해봤습니다. 


게시판을 옮겨서 토론하자는말도 예의는 아닐듯 합니다.

사랑채는 누구나 무슨말이나 다 쓸수 있다고 했고, 토론방도 있고 질문방도 있으니 우리 그곳에서 토론하자? 아니면 알려달라?   이것도 무례한 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걸 구분 못하시지는 않지요?  우리는 전체 다비안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구심점인 정목사님의 가르침의 범위내에서 크게 벗어나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님께서 정 저에게 배우시고 싶다면 이곳이 아니고, 님이 네이버에 만든 카페에서 하시지요.   제가 소텔리온이 무슨뜻인가 해서 네이버에서 검색해봤거든요. 그랬더니 님께서 개설하신 카페를 봤습니다. 그곳의 글을 이곳에 퍼 나르고 계시더군요.


신학에게 성경이 시녀노릇을 한다고 문장을 만든분께서는 아마 소텔리온님이 인용하심을 후회하지 않을까요?


유대전쟁사를 읽어보면 거기에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서에는 바리새파나 사두개파가 무엇인지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리새파나 사두개파가 뭔지 대충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를 통해서 그 단어들의 신학용어들이 정착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그것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의 축적된 신학에 의한 우리의 지식이 마치 그냥 알게 된 것인양 속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님께서 왜 교회사나 헬레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책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님의 말씀을 보면 님은 그냥 성서만 보아야 할 것처럼 주장하시거든요.   님의 주장이 성서적주장이 아니고, 님의 주장이 바로 플라톤의 사상이나 비성서적 주장등에 반동하는 주장이다보니 님께서도 결국 반플라톤사상의 서적이나 반비성서적 주장의 신학에 빠져 있다는 증거가 되는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에게 배울 의향이 있으시다면 다비아에서 말고, 님이 사용하고 계시는 네이버카페로 옮길수 있도록 배려햐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cafe.naver.com/churchisnotfrombible/


이곳 말입니다.



소텔리온

2016.08.23 01:55:50

웃음님~^^
글로서 소통하려니 아무래도 이해보다는 단어 하나 문장이나 문맥때문에 오해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제가 마치 다비아를 공격하는 것으로 비출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다른 의견일 뿐인데 말이죠...
물론 웃음님의 반론역시 다른의견인데 제가 민감하게 반응했네요^^

네이버카페는 거의 방치상태입니다^^
다음카페도 마찬가지고요

누구나 공개게시판 글 열람 가능합니다

제가 게시판을 옮기자고 말한것은...원문이 정목사님의 묵상코너라 그랬던겁니다^^
별다른 오해는 없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저와 님과는 성경을 보는 입장차이가 매우 분명하네요^^

님은 신학적입장을 견지하고 저는 신학을 빼자는 입장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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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8.23 21:05:00

님이 신학을 빼고자 하신다면 성경구절이외에 단 한마디도 쓰시면 안됩니다.

성경말씀 이외의 모든것이 다 신학이고 교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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