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6일
예수의 십자가
설교 앞 단락에서 절간 대웅전의 부처상과 예배당의 십자가를 비교했다. 부처상의 부처 표정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반면에 십자가로 표현되는 예수상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십자가에 달려죽은 이를 메시아로 믿는다는 건 당시에 언어도단이었다. 이를 바울은 고전 1:23절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한 종교의 상징물로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종교적 욕구와는 상반되기 때문이다. 종교적 욕구는 절대자를 믿음으로써 복을 받아 편안히 사는 것이다. 삶의 허무와 고독을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십자가가 가리키는 삶은 오히려 반대다.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의 고난을 비틀어서 받아들인다. 예수의 십자가 덕분으로 자신은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십자가는 값싼 은혜의 수단이 되고 말았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당한 고난을 슬퍼하고,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자기는 전혀 십자가의 삶을 살지 않는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허락받았고 생각한다. 속된 표현으로 얌체로 산다. 세상에서 챙길 것은 다 챙기고, 십자가만 붙들고 있으면 얼마든지 구원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곧 자기도 자기의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이다. 십자가는 거짓평화에 저항하는 사람이 당하게 될 운명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각 사람에 따라 다르다. 판넨베르크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에서 인간 존엄의 진보적 모범이 되는 것’이다.(신학과 하나님 나라, 138쪽).
예수따름도 우리의 원함으로 견인해가는 우리들에게 제대로된 말씀을 주셨네요.
"십자가는~
거짓 평화에 저항하는 사람이 당하게 될 운명"
이런 운명에 처해지는 삶에 감사하며 살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