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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0일
위선
지난 설교 본문 눅 12:56절은 다음과 같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이 구절에 근거해서 나는 거짓 평화를 분간하지 못하는 이유가 외식, 즉 위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위선(僞善)은 겉으로만 선한 체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나는 ‘자신을 실체 그 이상으로 높이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라고 규정했다.
이슬람 포비아는 이슬람을 악으로, 그리고 자신을 선으로 전제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이다. 북한 포비아, 동성애 포비아도 마찬가지다. 사탄이나 마귀로 표상되는 악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것과의 투쟁은 무조건 선한 것이기 때문에 폭력적이어도 된다. 위선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악과 폭력이 다시 발생한다.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정의를 확보한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율법을 연구하고 그걸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정의였다. 그들의 눈에 율법적으로 살지 않(못하)는 사람들은 의롭지 못했다. 예수도 그들에게는 그런 인물로 비쳤다. 안식일에 장애인을 고치는 건 안식일 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정의에서 벗어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예수는 죽었다.
정말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묵상입니다.
외식을 위선으로 바꾸니,, 좀 더 이해도 쉽구요.
여기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예로 들으셨지만, 실제로 우리삶을 들여다 본다면 거의 모든이가 저를 비롯해서 다 외식하는 자들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행위부터 또 그런일들을 통해 자신을 은근 드러내는 것까지.. 우리는 매순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아는것이 다가 아니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라는 기준을 세운다면..
위선에서 좀 벗어날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