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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
신앙과 교양
지난 설교의 성경 본문인 눅 14:1, 7-14절에는 읽기에 따라서 상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두 편 나온다. 하나는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낮은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이야기다. 그 대목을 설명하면서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교양과 처세로 읽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설교 시간에 자녀를 지혜롭게 키우는 법이나 부부가 화목하게 사는 법에 대해서 말하는 설교자들이 있다. 몇몇 교육학 이론이나 상담 이론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논리를 펼친다. 이런 것들은 교양과 처세에 속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삶의 요소들이다. 이런 교양과 기독교 신앙을 동일시하면 곤란하다. 교양은 삶의 형식이고 신앙의 삶의 내용이다. 삶의 형식은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못 된다. 더구나 삶의 형식은 상황에 따라서 가변적이다.
교양을 종교적으로 말하면 율법이다. 율법은 필요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다. 거기에 목숨을 건 바리새인들은 예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예수는 율법이라는 외피 안에 들어 있는 신앙의 본질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 경험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모든 종교 전문가가 실제로 종교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철학 교수들이 실제로 철학하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율법에 철저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는 연인입니다!
주님을 사모하며 애타게 기다리는 신부들이죠?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주님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우리는]이라는 노랫말도 괜찮죠.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기나긴 헛 세월을 기다리려 우리는 만났다
천둥치는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오 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만났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우리는 바람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잡은 손끝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춤지 않는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연인 수없이 많은 날들을 우리는 다함께 지냈다
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함께 지녔다
오 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 다비안들은 정목사님과 함께
서로 연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