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하나님과의 관계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는 경구가 가리키는 핵심은 인간의 삶과 운명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말이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다. 설교 시간에 대충 말했지만 여기서 보충하겠다.
이 문제도 결국은 하나님 경험과 연결된다.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지, 자기 삶에서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와 관계된다.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경험하는가에 따라서 그 관계가 결정되는 거와 같다. 그런데 하나님 인식과 경험이라는 것이 아득한 것이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게 어떤 사태인지, 바람을 생각해보라. 바람은 늘 변화한다. 바람이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다. 강할 때도 있지만 늘 강한 것도 아니다. 바람이 느껴질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바람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느끼지 못한다. 소리 경험도 마찬가지다. 풀벌레 소리나 고양이 소리를 어떤 사람은 듣고 어떤 사람은 듣지 못한다. 하나님 경험과 이와 비슷하다.
예수 당시를 보라. 예수의 출현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았지만 어떤 사람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일개 선지자로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목수 요셉의 아들로 간주했다. 예수의 부활을 모든 사람들이 다 경험한 것도 아니다. 평소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앞으로 그의 제자로 살 사람들만 경험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경험하고, 그의 부활을 믿을 수 있나? 구약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이런 경험과 인식은 은총으로만 가능하다. 은총을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복된 사람이다. 예수 사건을 통해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이 곧 하나님 경험이다. 은총이 아니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은총을 은총으로 받아 들일수 있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들이다..
오늘은 이 글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많은것을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셨는데..
우리는 그 은총들을 은총으로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거 같습니다.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기에.. 때로는 고난으로, 때로는 스침으로, 때로는 당연함으로, 때로는 감사함으로..
때에 따라, 감정에 따라, 의지에 따라.. 그 은총들을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거 같아요..
목사님의 해바라기 사진글을 보며..
많은 다이아몬드 같은 은총들을 놓치고 사는구나 ~ 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먹는 밥알 하나에도 우주가 있고, 물을 마시며..
그 물을 한모금씩 넘길때, 그물이 내게 오기까지의 세계를 생각해 봅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총속에 사는 우리는 정말 행복한 인간들 같습니다.
오늘 아침.
엘지와 강가를 나갔습니다. 바람이 제법 불었습니다.
바람이 강물을 흔들고, 갈대를 흔들어 댔습니다. 스르륵 쏴아아 휘이잉.....
내 얼굴과 피부를 스치는 느낌도 아주 좋았습니다.
견공도 바람을 코끝으로 느끼고
우린 거기 그렇게 앉아 한참이나 바람에 취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배움이 없는 할미라면 가슴이 싸아 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책 쬐금 읽은 나는 이것이 누미노제 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