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
민폐
지난 설교 본문 눅 14:14절은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하는 내용이다. 갚은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하면서, 그것이 오히려 복되다는 것이다. 세상의 작동 원리와 위배되는 가르침이다. 이런 식의 말씀은 도덕군자나 극단적인 휴머니스트에게나 가능하지 일반 사람들에게는 거리가 멀다. 난민, 탈북자, 동남아 노동자, 극빈자, 노숙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테레사 수녀 등에서 보듯이 그런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이들은 드물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민폐와 비슷한 수준의 요소들이 우리 내부에 숨어 있다. 인격적이고, 평화롭고, 자주적이고, 관용적인 품격만 있는 게 아니라 제거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이기심과 탐욕과 갈망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요소들을 몽땅 없앨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사람이 아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없을 수 없는 것처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고상한 인격과 신앙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들만 모인다면, 그건 실제의 교회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교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도 교회의 구성원으로 자리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민폐 끼치는 이들을 교회가 얼마나 잘 품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어제 판넨베르크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랑은 때때로 하나님의 눈으로써 타인의 잠재적 완전성을 예견해야 한다. 그러한 예견이 타자의 무능력이 드러남으로써, 또는 삶의 가능성을 마비시키는 비극적 환경에 좌절되는 것 같이 보일 때라도 그렇다.”(신학과 하나님 나라, 158쪽). 기독교 윤리학에서, 민폐 끼치는 이들의 삶도 하나님의 미래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미리 내다보고 사는 것, 동시에 하나님의 미래가 오기 전에는 어느 누구의 삶도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모두 다 불완전하니까요.
주님 오실 그날 까지는
서로 받아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격려해 줄 때에
아름다운 공동체(교회 등)를 이루어 갈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