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을 치우며...

Views 1525 Votes 0 2016.09.06 21: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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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을 치우며...

 

며칠 전 920일까지 정화조 청소하라는 공문 엽서를 영천시 위생과로부터 받았다. 온라인 천지에서 엽서를 받으니 정겨웠다. 어제(95) 오전에 거기 적힌 대행 회사에 전화를 했다. 전화 받는 태도가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독점 사업이라 그런가, 하고 그냥 용건만 말했다.


오늘 오후에 정화조 청소 됩니까?

오늘은 안 됩니다.

그럼 내일 와주세요.

거기 주소를 대세요.

북안면 대원당길 111입니다. 그런데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내일 오전 9시 지난 시간에 와주세요.

알았심다.

 

9시 이후를 말한 이유는 그렇게 일러두지 않으면 꼭두새벽에 오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오늘(6) 12시에 똥차가 왔다. 기사를 보니 몇 번 본 얼굴이다. 정화조 뚜껑을 열었다. 하루살인지 뭔지 아주 작은 날파리가 득실거린다. 자기들 세계가 침입 받았으니 놀라지 않겠는가. ‘양이 좀 많네요.’ 한다. ‘그래요? 일 년 만에 그렇게 찼어요?’ 공기압축 방식으로 똥을 수거하는 동안에 나는 옆에서 잡풀을 뽑았다. ‘이제 다 됐습니다.’ 얼마죠? 3만원입니다. , 여기 있습니다. 여기 주소 도로명으로 불러주세요. '대원당길 백십일입니다. 영수증 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대부분의 집에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거기서 큰일 처리하는 것도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똥 푸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동네에 들어와서 똥 퍼요!’ 하고 외쳤다. 긴 막대에 달린 바가지로 일일이 퍼서 큰 통에 담아 지게로 지고 갔다. 똥물이 마당과 동네 길에 조금씩 흔적을 남기는 건 당연했다. 고운 치마를 입은 아낙네들은 질겁했다.

당시에 똥은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제 똥은 우리의 삶에서 은폐되고 말았다. 먹는 건 그렇게 알뜰살뜰 살피면서 똥은 외면한다. 죽음을 외면하듯이.


은나라

2016.09.06 22:32:46

ㅎㅎㅎㅎ

참 재밌는 일상입니다.

똥물 풀때 냄새가 징하게 났을텐데.. 어떻게 그 옆에서 태연하게 잡풀을 뽑을수가 있어요?

요즘엔 압축방식으로 해서 냄새가 나지 않는가요? ㅎㅎ

죄송, 읽으면서 넘 웃겨서 배꼽잡고 웃었어요..ㅋㅋ

일년에 한번 저희는 이 일상을 읽을수 있는 거네요? ㅎ

웃다가 마지막 글에서 웃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옛날에는 똥이 우리의 현실이었는데, 지금은 우리 삶에서 외면 당하는 똥!

그런데 사실 저는 똥을 외면하진 않아요. 가족들 똥을 다 검사를 하죠.

왜냐면 건강의 증표니까요..

아이들과 전화할때, 종종 똥의 색깔이나 굵기 모양등을 묻기도 해요..

아이들은 귀챦아 하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곤 하죠.ㅋ

제가 목사님 글의 겉만 본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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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9.07 09:16:07

제 글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제 있었던 작은 일을 전한 것뿐입니다.

근데 은나라 님은 가족들 똥을 다 검사하신다니

도가 통한 분이네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똥을 눠야 한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알 수 있지요?

이거야 말로 '개똥철학' 비슷한 말이군요.

staytrue

2016.09.07 11:59:09

저는 똥통에 빠진적 있습니다.

늪처럼 빠져들어가는 걸 

할아버지가 구원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런가 .....

더러운 것에 대해 

별 선입견이 없습니다.

더럽다는 생각이 더러울 뿐이라는 ....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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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9.07 22:25:41

우리 시절에는 실제로 똥통 빠져 죽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스테이 님의 시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정말 특이한 방식으로 구원을 경험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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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2016.09.07 13:31:08

저에게 똥통은 아버지 똥통 지게를 생각나게 하네요. 양쪽에 매달린 양동이가 출렁거리면서 변소 주변에 흘리면 저는 재나 흙으로 덮었어요. 냄새가 심했지만 그일이 싫진 않았던 것 같아요. 똥푼 날은 방에서도 냄새 났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그려려니 했는데 요새는 왜케 민감해졌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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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9.07 22:28:41

'똥푼 날'이라,

뭔가 시상이 떠오를 거 같군요. ㅎㅎ

로마, 파리, 런던 같은 오래된 대도시는

4,5백년 전쯤에 똥을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하네요.

하수도 문제도 심각했을 거 같네요.

중세기 흑사병은 그런 위생문제로 발생한 거 아닐까요?

그냥 상상해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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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2016.09.08 21:26:29

저는 고등학교 똥통고등학교라

잘 못걸리면 똥바가지로 똥 푸는 벌을 받았었답니다.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던 군사정권 시절이니...

주안

2016.09.09 19:08:47

어릴 땐

똥과 여러가지로 친근했지요.

길 가다가, 논밭 길에서 밟기도하고

냇가에서 헤엄치다가 물속에서 만나기도하고,

아이들 키울 땐 치우고 닦아주느라 등등...

요즈음에 보면 반가울 거 같아욯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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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7.09.19 23:53:43

오늘 낮 12시 쪼금 넘어서 정화조 청소를 했습니다.

일년에 한번은 꼭 하도록 법이 강제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왔던 분이 이번에도 오셨네요.

작년에는 3만원이었는데 올해는 3만5천원입니다.

똥 푸는 때만 되면 참 일년 동안 열심히 먹고 쌌구나,

하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듭니다.

묘할 거까지도 없지요.

그게 우리의 실존이니까요.

내년 똥 푸는 때를 기다리면서

앞으로 일년 동안 또 열심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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