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
잃은 양의 비유
지난 주일의 설교 성경 본문인 눅 15:1-10절에는 두 가지 비유가 나온다. 하나는 잃은 양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다.
이 비유의 가장 전형적인 해석은 우리 자신을 길 잃은 양으로 보고 양치기인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러 오신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부흥회 유의 해석이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와서 대형집회를 연 빌리 그래함 목사의 핵심 설교는 눅 15장 후반에 나오는 소위 ‘탕자의 비유’를 본문으로 한다. 길 잃은 양이나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나 모두 죄인이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설교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언급되는 죄가 도덕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교를 듣는 청중들은 눈물 흘리면서 자기의 죄를 낱낱이 열거하면서 뉘우친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죄를 종이에 기록하고 그 종이를 불에 태우는 세리모니를 펼친다.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비유의 또 다른 해석은 우리가 길 잃은 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더 나가서 예수 믿게 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도 틀린 주장은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벌어진다. 하나는 죄인을 대상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성의 결여다. 여기서 현실성의 결여는 이 비유를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잃은 양의 비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다음에 이어지는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를 좀더 자세하게 검토하면서 답을 찾아보자.
죄인의 대상화와 현실성의 결여,
새롭게 들립니다.
많은 재난과 사고에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불행이 없겠지라는 오만함이죠.
안전 불감증 같은..
그런 것 보다는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여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