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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죄인과 의인
눅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쪽에는 세리와 죄인이, 다른 한쪽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있다. 이들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양극단을 대표한다. 전자는 비주류이고, 후자는 주류다. 비주류는 죄인이고, 주류는 의인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비주류인 죄인들과 가까이 지냈다. 죄인들과 먹고 마시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예수의 제자 중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하나도 없다. 산헤드린 회원 중에서 예수를 지지하던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예수의 편을 들지는 않았다. 예수는 당시 스스로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도 말했다. 오늘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나는 죄인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상투적인 경우가 많다.
예수가 죄인들과 가깝게 지낸 이유는 단순히 약자 편을 든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자기 말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데에 있다. 세상은 죄인과 의인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만이 아니라 의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도 역시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상호 대립적이라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영혼으로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죄인과 의인의 구별이 없어진다. 모두가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람이라는 사실에만 마음이 쏠린다.
하나님 나라를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죄인과 의인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영성 신학자 안셀름 그린 신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에서도
우리의 그림자 부분인 무의식의 측면을 살펴 보지 않으면
우리는 거부된 상처, 나약함으로 인해 매몰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하지요.
의인이라고 자초하는 자들,
그들의 내면 가운데 거부된 죄인들의 모습이 싫어서 까마득히 잊고 편히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예수라는 자가 나타나서 자꾸 들쑤셔 되니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ㅎㅎㅎ
의인의 길은 오히려 잘못된 길, 돌아서 가는 우회로, 실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실망 들을 통해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이런 열등한 것들을 끌어 안으시고 , 위로 하시고 함께 하시네요.
그런데.....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좀 이해가 되네요. 저도 그럴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렬 땐 제 자신이 너무 싫어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