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6일
하늘의 기쁨
잃은 양의 비유나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모두 결론은 하늘의 기쁨이다. 하늘의 기쁨은 문학적 수사다. 기쁨의 절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 기쁨이 곧 우리가 추구해야 해서 맛봐야 삶의 목표다.
그걸 우리는 보통 구원의 기쁨이라고 한다. 죄 용서 받고 의롭다 인정받았다는 사실에서 구원의 기쁨을 경험한다. 구원받았다는 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니 구원받으려면 당연히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구원받는 게 다른 게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구원이다.
이런 기쁨이 꾸준히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순전히 교회생활에 적응할 뿐이지 하나님을 만난다거나 구원을 경험한다는 것에는 별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건 어쩔 수 없다. 테니스도 실력이 꾸준하게 늘어야만 즐거움을 느끼지 실력이 제 자리에 머물면 승부욕에만 치우친다. 신앙의 성장이 없다면 그는 신앙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신앙의 성장은 드라크마를 찾는 거룩한 열정과 드라크마를 찾아내는 순간을 경험해야만 가능하다.
이런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신자들이 교회 활동을 다채롭게 하는 것에 매달린다. 그런 것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새로운 즐거움이 늘어나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활동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삶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게 핵심이다. 그걸 아는 사람은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서 맛 보아야 할 삶의 목표가 하늘의 기쁨이군요.
그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드라크마 하나를 찾는 열정과
찾아내는 경험을 통한 신앙의 성장이 필요한것 이고요.
기쁨의 절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는다는
목사님 말씀이 마음에 닿습니다.
가을비가 공원 수목들을 충분히 적셔주고 있네요.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고 어두운 구름은 안개처럼 희뿌옇게 깔려있습니다.
결코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닌 유일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