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서 올려주신 강의 동영상을 따라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와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올려주신 목사님의 수고에 신학생인 제가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강의 중 28-29페이지에 등장하는 틸리히가 말한 '붉은 보'라는 수사적 장치에 관해 제가 이해한 건 이렇습니다. 맞는지 모르겠네요.
현대에서 교회가 내세우는 교리는 '황소의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보자기'처럼 현대인들의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예컨데 '예수만인 유일한 길이다'라는 교리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매우 편협하고 배타적인 교리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죠. 그렇다면 원래 도그마란 (인간의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그런 것인가? 틸리히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해서 제가 읽기로는, 틸리히는 '교의 개념의 역사적 배경'을 톺아보는 것을 통해 일종의 도그마에 대한 변증(또는 변명)을 머리말에서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도그마' 개념 발전의 첫 단계에서는 오늘날처럼 도그마가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또 꼭 필요한 것으로 도그마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그의 요지인 것 같습니다. 초기그리스도교의 도그마를 받아들이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 또는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행위로까지 여겨졌으니까요. 이 때까지(도그마 개념 발전의 첫 단계)는 도그마가 적어도 오늘날처럼 현대인들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보'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거 같네요. 도그마는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개인적인 신앙 이론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것 곧 교회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요.
그래서 머리말의 논지가 '도그마는 결코 폐기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도그마를 그냥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된다'로 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붉은 보'에 관해 이해한 부분은 여기까지 입니다.
개인적으로 얼마전 노회고시에서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 인권이냐 아니냐?' '예, 아니오로 답해라'는 식의 질문을 받아 답하지 않았습니다. 못한건지 안한건지 아직은 저조차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틸리히 글이 더 확 와닿습니다.
목사님의 강의 덕분에 한 단어, 한 문장, 한 단락씩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도그마는 그리스철학에서 유래한 추상적 형식을 갖는 개념이라고 할지라도,
교회밖에 있는적 이교와 유대교에 맞선 생사의 싸움에서도
교회 자체의 내부에 있는적 이단에 대한 싸움에서도
교회의 삶과 현실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도그마는 폐기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군요, 도그마없이 현대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수 있을까요?
다만 거기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