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관련링크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p;sid1=001 |
---|
여기저기에서 만난 글에서 느낀 점들이 있어서 올립니다.
1. 또 하나 흥미로운 경우는 매리 셸리의 경우다. 퍼시 셸리의 아내, <프랑켄슈타인>을 쓴 그 셸리 말이다. 이 양반은 열여덟 살 나이에 그 작품을 썼는데,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고 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의 어머니 매리 월스톤크래프트가 매리를 낳고 나서 불과 열흘 만에 사망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매리 셸리는 어머니가 남긴 흔적만 가지고,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어머니의 뜻에 맞는 인간으로 키워나간 셈이다.
> 자신이 태어난지 열흘만에 사망한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고
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표현에 주목하였습니다.
어찌보면 기이하다고 할 정도로 생소한 표현이지만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2000년 전에 계셨던, 지금도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정 이러한 표현이 적절한 관계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 글쓴이를 통하여 또다른 시각으로 생소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머니 또한 페미니스트이자 사상가였음)
2. 자네, “하레세”가 무슨 뜻인지 아니? 고대 아랍에서 쓰던 말이지. 탐욕, 욕심, 야심, 게걸스러움, 이런 종류의 말들의 뿌리에 놓여 있는 말일세. 그게 바로 “하레세”야. 낙타를 일컬어 사막의 배라고 하지않나? 이 축복받은 짐승은 워낙 강인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몇 주 동안이고 사막을 걸어갈 수 있지. 그런데 이놈들은 모래 속에서 자라는 한 가지 특정한 종류의 엉겅퀴를 아주 좋아해. 그래서 이걸 만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는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그걸 씹는 동안 억센 가시가 입안을 온통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놓게 되지. 이때 입 속에서 흐르는 피의 찝찔한 맛이 엉겅퀴의 맛과 섞이게 되는데, 낙타는 바로 이 맛을 너무나 좋아한다네. 낙타는 씹으면서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면서도 씹지. 낙타는 이거라면 한도끝도 없이 먹으려 들어. 억지로 멈춰주지 않는다면, 아마 과다출혈로 죽을 때까지 계속 먹을 거야. 이게 바로 “하레세”라네. 이미 말했지만, 탐욕, 욕심, 게걸스러움을 일컫는 우리 말의 뿌리지. 그리고 이게 바로, 이보게, 중동이 걸어왔고 가고 있는 길일세.
> 터키 작가의 글입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죄의 삯은 사망이다' 라는 구절에서
'A는 B다' 라고 하니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만
저 A와 B사이에는 무한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읽으면서 A와 B의 유기적인 관계가 그려집니다.
어쩌면 무엇이 죄인가라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싶다면
이 장면에 대입을 하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366&aid=0000340034&sid1=001
> 여기의 인터뷰 글에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경건'에 대한 것입니다.
평생 경건한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에 묻기도 하지만
경건에 이르려는 때가 있었다는 답이 있네요.
누미노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일방적인 때라면
경건은 늘 때를 기다리는 우리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때 김형석 교수님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인터뷰가 좋으네요.
와, 유니스 님은 그동안 뭐 하느라
이제야 따뜻한 향기 나는 글을 올리셨는지요.
이런저런 일로 바뻤지요?
인용해준 세 편의 글들이 각각 고유하게 마음을 울리는군요.
김형석 선생님 왈,
60은 되야 생각이 성숙해진다고 하니
나도 늙었다 생각하지 말고 이제 출발이야 생각해야겠습니다.
종교개혁 행사에 한번 오세요.
<매일묵상>-눈 밝은 그대에게-라는 졸저를 받을 수 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