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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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돌이켜보면 저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엿장수였던 아빠가 그날 들어온 고물 중에 특별히 그림이 많이 그려진 책을 골라서 읽으라고(보라고) 주셨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책은 알 수 없는 글씨가 세로로 씌여져 있고(아마도 한문) 울긋불긋 원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그림책입니다. 그런데 남자어른 여자어른 둘이 딱 붙어 막 싸우는데 옷도 다 찢어져 없고 얼굴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입으로 막 무는지 입도 딱 붙어 있고 몸도 서로 딱 붙어있는 그림이 그려진 책입니다.
“아빠 이 어른들은 왜 싸워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아무 말도 안하시고 슬그머니 그 책을 가져가시던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 생각해 보니 중국 화교의 집에서 가져온 춘화(春畵)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면 오늘은 어떤 책을 가져오실지 은근히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입니다. 글씨를 배우고 나서는 책 읽는 것이 너무 좋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주로 동네 만화방을 전전하며 만화책을 섭렵하고 학교 도서실에 있는 책을 다 떼고 교무실에 선생님 책꽂이에 있는 ‘학습지도방법론’같은 책까지 다 읽었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그냥 읽었죠.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월간<샘터>를 ‘금강당’이라는 서점에서 100원씩 주고 매달 사서 읽었습니다. 그걸 지금까지 매월 사서 보고 있으니 한 40년 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산 샘터를 한 권도 잃어버리지 않
고 지금 다 가지고 있는데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 제 책꽂이 위쪽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군요. 한 500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계림문고’, ‘크로버문고’를 1번부터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월간지들은 거의 매달 빠지지 않고 사서 읽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삼중당문고’ 480권을 1번 그리이스로마 신화 부터 순서대로 다 읽어내렸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탔는데 배 안에 약 2천권의 장서가 있는 도서방이 있는 거에요. 우왁! 거기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대망’ 32권을 단숨에 독파했습니다. 그때 도서방에 ‘인간시장’, ‘꼬방동네 사람들’ 같은 책들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기독교 주간 신문사에서 기자도 해 보고, 학교에서 학보도 만들어 보고, 문서선교회를 조직하여 여러 가지 문서들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분들이 쓴 원고를 읽으면서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제가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로 월간지나 주간 신문에 닥치는 대로 글을 썼습니다. 한 10년 동안 1천편 정도 쓴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pc통신 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종이 위에 글을 쓰다가 처음으로 자판을 두들기며 화면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게시판에 글을 썼습니다. 기독교문학동호회방도 만들어서 활동을 했습니다.(go si를 치면 바로 접속이 되어 일명 ‘고시방’이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하이텔 ‘큰마을’게시판에 어떤 글 하나가 떠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파워 블러거’가 된 것입니다. 그때 하이텔에서 만연필, 다이어리, 가방 같은 선물을 특별관리 차원에서 저에게 막 보내주곤 했었습니다. 하이텔에서 만드는 월간지에 제 인터뷰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신문을 보는데 제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에 ‘이규태 코너’가 3000호를 넘겼다는 기사였습니다. ‘한 사람이 매일 한편씩 3000편의 글을 쓴 전후무후한 사건’ 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저를 자극했습니다.
“내가 그 기록을 깨 주게~쓰!!!” 하고 그때부터 하루 한 편씩 10000편 글쓰기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날이 1995.8.12.일입니다. 우선은 하이텔 플라자(큰마을)과 여러 기독 동아리에 ‘햇볕같은이야기’ 라는 타이틀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저는 재빨리 인터넷으로 건너와 홈페이지(http://cyw.pe.kr)를 만들고 이-메일로 글을 발송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햇볕같은이야기 아침편지’가 20년 만인 2014년 8월 2일 5000호를 발송하면서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평생에 7000호를 목표로 달리던 ‘이규태 코너’는 6701호(2006.2.11)에 선생님이 돌아가심으로 22년11개월의 마라톤을 마쳤습니다. 선생님은 50대에 시작했고 저는 30대에 시작했으니 제가 중간에 죽지 않는 이상 ‘이규태 코너’의 기록을 넘어 충분히 10000호를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햇볕같은이야기 아침편지는 극동방송에 매일 한편씩 읽어주는 방송을 4년 동안 했었고, 기독교 주간 신문에 10년 동안 연재되기도 했었고, 여러 출판사에서 단행본 책이 발행되었습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글쓴이 이름은 사라지고 없어도 제가 쓴 글들은 수없이 많이 복사되어 퍼져 있습니다. 지금은 교보문고에서 모두 18권의 책이 되어 나와있고 다음주에 19번째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6000!
2월 6일 드디어 6000번째 글을 띄웠습니다. 다른 분들 눈에는 6천원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매우 가슴 벅찬 숫자이군요. 이 숫자를 쓰기까지 22년이 걸렸습니다. 5000호를 발행했을 때는 교회에서 무슨 기념패 같은것을 만들어 줘서 되게 쑥쓰러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쨋든 그냥 혼자 기분이 좋아져서 어디라도 막 이야기 하고 싶어져서 여기에 주저리주저리....늘어놓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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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000번째 쪽지!
□수양과 수도
이름을 남긴 유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힘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이름을 남긴 장수들도 많고, 뛰어난 학문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 음악 미술 문학작품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도 많습니다. 그 중에 수양과 수도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도 그 영향력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성인군자라고 합니다.
수양(修養)은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자신의 품성과 지식, 윤리 도덕적 삶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플라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입니다. 스스로의 사색과 방법으로 경지에 올라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온 인류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군자(君子)라고 합니다.
수도(修道)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삶과 생각의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울, 어거스틴, 안토니오, 루터, 크롬웰 등등 수많은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수양이 자신과 인간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면 수도는 창조주인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들을 성인(聖人)이라고 합니다.
주로 카톨릭에 ‘수도원’이 많기 때문에 수도라고 하면 수도원이 떠오르지만, 수도는 꼭 수도원에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모든 행위가 다 수도입니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기도도 수도의 좋은 방법입니다.
수양의 끝은 언제나 ‘허무하다 허무하다 모든 것이 무(無)이라’하고 끝납니다. 그러나 수도의 끝은 언제나 ‘영광 영광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하고 끝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수양을 하는 군자가 아니라, 수도하는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최용우
♥2018.2.6. 불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더 많은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