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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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6101번째 쪽지!
□하나님이 숨어 계신 곳 -어둠
우리 집에 가끔 오는 꼬리 짧은 노란 길고양이는 순하기는 한데 겁쟁이입니다. 인기척이 나면 숨는다는 게 몸통은 다 드러낸 채화분 뒤에 머리를 숨기거나 상추밭에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야! 다 보인다 다 보여. 네가 닭이냐?”
오! 주여, 제가 목마른 사슴처럼 밤낮으로 주를 찾나이다. 주님은 어디에 숨어 계시나이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데 제 눈에 ‘숨어 계신 하나님’이 문득 보였습니다. 아하... 주님 거기 계셨군요. 들키셨어요. 어서 그냥 나오셔요.
<그가 흑암(어둠)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시18:11)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을 두루마기처럼 두르시고 그 가운데 계십니다. 또한 구름 옷으로 자신을 가리고 계십니다. 여기서 구름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cloud)이 아닌 임재(臨在 presence)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눈을 감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둠’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눈을 감음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기도할 때 불을 끄는 것도 어둠속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보려면 눈을 감고 불을 꺼야 합니다.
우리는 ‘어둠’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까만색의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을 환하게 켜 놓고는 영화를 볼 수 없습니다. 영화를 보려면 불을 꺼야 합니다. 캄캄할수록 영화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눈을 감아야 보입니다.
눈 똑바로 뜨고 하나님을 찾아봤자 못 찾습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숨어 계시다고요? ‘어둠 속’ 이라니깐요.
□ 하나님이 숨어계신 곳 -임재
제가 그동안 170번이나 오른 동네 뒷산 비학산 어디쯤에 의자가 하나 있고 가끔 제가 드러누워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노는 곳이 있습니다. 요즘엔 어떤 아주머니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어서 그냥 내려오는 날이 많네요.
어떤 군인이 말을 타고 가다가 “오 신이시여. 저에게 당신의 얼굴을 보여 주시오. 제발..” 하고 기도하는데 사진을 찍으라는 감동이 와서 들판 아무데나 사진을 찍었답니다. 나중에 사진을 인화해 보니 눈이 쌓인 곳과 녹은 곳이 절묘하게 어울려 예수님 얼굴 모양이 찍혔다는 예화가 있습니다.
저도 구름을 바라보며 “오 신이시여. 저에게 당신의 얼굴을 보여 주시오. 제발..” 혹시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시18:11)자신을 가리고 계신 예수님이 살짝이라도 얼굴을 보여 주시면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늘을 찰칵! 찰칵!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 계신다고 하는 표현은 하늘의 구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눈을 감고 어둠 가운데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계속 그분을 부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신비로운’ 상태를 자아도취에 빠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도 하고, 한 가지 사물에 마음이나 시선을 집중하면 어느 순간 보이는 ‘황홀경’ 같은 신비주의라고도 하고 암튼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臨齋)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어느 순간 알아집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 아주 평안해 집니다. 마치 아내와 함께 침대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무장해제 된 평화로움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름이라 슬리퍼를 사러 이-마트에 갔습니다. 신발 고르는 곳에 10여명의 여인들이 모여 이것저것 신발을 만져보며 고릅니다. 다들 어찌 그리 이쁜지... 요즘 여자들은 잘 먹고 잘 가꾸기 때문에 다 이쁜 것 같아요.(물론 아... 안 이쁜 여자도 가끔 있지만) 하지만 아무리 이쁘면 뭐합니까. 저에게는 다 모르는 여인들일 뿐입니다. 저는 그 중에 딱 한 여인 아내만 압니다.
저는 ‘알음다운 그녀’에 대해 장모님도 잘 모르는 것 까지 속속들이 다 압니다. 슬리퍼를 고르는 아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씩- 썩은 미소(썩소)를 날려 줍니다. 아내가 메롱을 합니다. 우쒸
기도하는 중에 어느 순간 하나님의 임재는 그렇게 ‘아내를 아는 것’ 같은 ‘하나님을 앎’이 느껴지면서 그냥 하나님과 함께 오래오래 가만히 그대로 있고 싶어집니다. 말(언어)이 필요 없습니다. 구름 위에 둥둥 뜬 것 같은 달콤한 시간이 막 흘러갑니다. 한 시간 두 시간...
누구든지 한번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하기만 하면 평생 그것을 사모하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임재 가운데 숨어 계십니다. 음 하하하 ⓒ최용우
♥2018.6.15. 쇠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