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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공화국
내 딸이 다니는 대학교는, 물론 다른 대학교도 비슷하겠지만, 봄가을로 축제를 여는 것 같다.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하니까 총학에서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각종 이벤트를 끌어들이기에 정신이 없다.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날 밤에 열리는 전체 모임이다. 노래와 춤, 장기대회 등등, 흥겨운 여흥으로 진행되는 그 모임에는 반드시 유명 연예인이 초청된다.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는 가수라든지 아니면 유명 MC가 온다. 그들을 초청하는데, 수천만 원이 든다는 말도 있던데, 그건 과장된 것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지불되기는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재기발랄한 대학생들이 스스로 사회를 보면서 재미있게 놀 수는 없을까? 늘 등록금 투쟁이다, 뭐다 하면서 자신들은 축제 한번 여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날 밤은 대개 불꽃놀이로 마감하는 걸 보면, 학생회가 돈이 많기는 많은가보다.
며칠 전 집사람이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 동창회에 다녀왔다. 아마 10년 단위로 그런 행사를 하는가보다. 대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터불고 호텔 컨벤션 홀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날도 예의 전문 MC와 백댄서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오십이 다 된 회원들에게 게임을 시키고,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렇게 한바탕 놀았다. 사람이 놀 줄 알아야겠지. 그러나 스스로는 놀 줄도 모른다. 전문 연예 기획사를 불러와야 만 놀 수 있다면, 이건 노는 것도 아니다.
티브이 공중파 방송은 초저녁부터 심야까지 연예 중심으로 진행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든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든지 연예인이나 아니면 연예인 못지않은 일반인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흡사 초등학생들의 소풍날과 비슷한 게임과 춤솜씨를 흉내내고 있다. 또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드라마 천국이다. 이런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더 이상 다른 방식으로 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돼서도 노래방 말고는 어디 가서 신명나게 놀 줄 모르게 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연예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원래 옛날부터 풍류와 가무를 즐기던 민족이니까 그런 기질을 버릴 수도 없고, 어떤 점에서는 그걸 꼭 비난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노는 것도 앞뒤 좀 재야 할 거 아닌가 말이다. 하기야 삶을 가장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종교마저 이런 연예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마당이니 세상 문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요즘 미션 스쿨마다 학생들의 채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기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채플 자체를 흥미 위주로 꾸미다보니 여기에 동원되는 이들도 역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안성맞춤인 이들로 집중된다. 그리스도인 탤런트, 가수, 그리고 개그맨까지 대중동원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는다. 예배는 주로 청소년 취향의 노래, 춤, 간증 등으로 진행된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학생들에게 강제로 예배에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그건 그렇다 치고,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배를 이렇듯 연예 프로그램처럼 운용한다는 건 아무리 선교목적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좀 심한 게 아닐까 모르겠다.
앞으로 신학교에서는 연예인을 키우듯이 목사를 교육시키는 게 훨씬 바람직할지 모르겠다. 가능한 수려한 외모에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스피치 기술을 확보하기만 하면 청중을 얼마든지 설득해나갈 수 있다. 오늘의 시대는 교회청중들도 더 이상 말씀과 역사의 영성이 아니라 개인의 종교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심리적 영성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 집회는 말할 것도 없고, 장년들 집회도 역시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의 종교적 여흥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대사조에 맞은 목회자는 엔터테인먼트를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신학교는 하루라도 빨리 연예 기획사 전문가를 강사로 세워야 한다. 필자가 이렇게 조언하지 않아도 이미 신학교에서는 이와 비슷한 커리큘럼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교회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필자는 그걸 단정할만한 입장이 아니다. 다만 야훼 하나님이 미래의 주인이라는 신학적 고백이 진리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종교적 흥미에 치우치는 교회는 결국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구약시대부터 말씀으로 계시하시는 야훼 하나님은 가시적인 방식으로 청중들의 흥미를 끌어내려고 했던 우상과 선명하게 투쟁하셨다. 야훼 하나님은 ‘쉐마’, 즉 ‘들으라!’는 말씀으로 인간을 만나셨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예언하게 하셨고, 이 역사에 정의와 평화를 세워나가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반해 풍요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근동의 신들은 화려한 의상과 춤과 노래와 먹거리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신들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복지와 문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시적으로 경험시키려고 했다. 오늘의 교회가 말씀과 역사의 깊이는 상실하고 경박한 리듬과 감성적 음률의 복음찬송, 율동, 프로젝터 등 시청각 재료에 치우친다는 건 결국 하나님과의 심층적 만남보다는 사람들끼리의 감정에 매달린다는 증거이다. 이런 신앙은 시간이 흐를수록 영적으로 소진될 것이며, 여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영적인 갈증에 시달릴 것이다. (2006년 4월30일)
내 딸이 다니는 대학교는, 물론 다른 대학교도 비슷하겠지만, 봄가을로 축제를 여는 것 같다.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하니까 총학에서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각종 이벤트를 끌어들이기에 정신이 없다.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날 밤에 열리는 전체 모임이다. 노래와 춤, 장기대회 등등, 흥겨운 여흥으로 진행되는 그 모임에는 반드시 유명 연예인이 초청된다.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는 가수라든지 아니면 유명 MC가 온다. 그들을 초청하는데, 수천만 원이 든다는 말도 있던데, 그건 과장된 것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지불되기는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재기발랄한 대학생들이 스스로 사회를 보면서 재미있게 놀 수는 없을까? 늘 등록금 투쟁이다, 뭐다 하면서 자신들은 축제 한번 여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날 밤은 대개 불꽃놀이로 마감하는 걸 보면, 학생회가 돈이 많기는 많은가보다.
며칠 전 집사람이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 동창회에 다녀왔다. 아마 10년 단위로 그런 행사를 하는가보다. 대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터불고 호텔 컨벤션 홀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날도 예의 전문 MC와 백댄서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오십이 다 된 회원들에게 게임을 시키고,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렇게 한바탕 놀았다. 사람이 놀 줄 알아야겠지. 그러나 스스로는 놀 줄도 모른다. 전문 연예 기획사를 불러와야 만 놀 수 있다면, 이건 노는 것도 아니다.
티브이 공중파 방송은 초저녁부터 심야까지 연예 중심으로 진행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든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든지 연예인이나 아니면 연예인 못지않은 일반인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흡사 초등학생들의 소풍날과 비슷한 게임과 춤솜씨를 흉내내고 있다. 또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드라마 천국이다. 이런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더 이상 다른 방식으로 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돼서도 노래방 말고는 어디 가서 신명나게 놀 줄 모르게 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연예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원래 옛날부터 풍류와 가무를 즐기던 민족이니까 그런 기질을 버릴 수도 없고, 어떤 점에서는 그걸 꼭 비난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노는 것도 앞뒤 좀 재야 할 거 아닌가 말이다. 하기야 삶을 가장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종교마저 이런 연예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마당이니 세상 문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요즘 미션 스쿨마다 학생들의 채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기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채플 자체를 흥미 위주로 꾸미다보니 여기에 동원되는 이들도 역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안성맞춤인 이들로 집중된다. 그리스도인 탤런트, 가수, 그리고 개그맨까지 대중동원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는다. 예배는 주로 청소년 취향의 노래, 춤, 간증 등으로 진행된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학생들에게 강제로 예배에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그건 그렇다 치고,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배를 이렇듯 연예 프로그램처럼 운용한다는 건 아무리 선교목적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좀 심한 게 아닐까 모르겠다.
앞으로 신학교에서는 연예인을 키우듯이 목사를 교육시키는 게 훨씬 바람직할지 모르겠다. 가능한 수려한 외모에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스피치 기술을 확보하기만 하면 청중을 얼마든지 설득해나갈 수 있다. 오늘의 시대는 교회청중들도 더 이상 말씀과 역사의 영성이 아니라 개인의 종교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심리적 영성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 집회는 말할 것도 없고, 장년들 집회도 역시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의 종교적 여흥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대사조에 맞은 목회자는 엔터테인먼트를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신학교는 하루라도 빨리 연예 기획사 전문가를 강사로 세워야 한다. 필자가 이렇게 조언하지 않아도 이미 신학교에서는 이와 비슷한 커리큘럼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교회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필자는 그걸 단정할만한 입장이 아니다. 다만 야훼 하나님이 미래의 주인이라는 신학적 고백이 진리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종교적 흥미에 치우치는 교회는 결국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구약시대부터 말씀으로 계시하시는 야훼 하나님은 가시적인 방식으로 청중들의 흥미를 끌어내려고 했던 우상과 선명하게 투쟁하셨다. 야훼 하나님은 ‘쉐마’, 즉 ‘들으라!’는 말씀으로 인간을 만나셨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예언하게 하셨고, 이 역사에 정의와 평화를 세워나가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반해 풍요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근동의 신들은 화려한 의상과 춤과 노래와 먹거리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신들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복지와 문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시적으로 경험시키려고 했다. 오늘의 교회가 말씀과 역사의 깊이는 상실하고 경박한 리듬과 감성적 음률의 복음찬송, 율동, 프로젝터 등 시청각 재료에 치우친다는 건 결국 하나님과의 심층적 만남보다는 사람들끼리의 감정에 매달린다는 증거이다. 이런 신앙은 시간이 흐를수록 영적으로 소진될 것이며, 여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영적인 갈증에 시달릴 것이다. (2006년 4월30일)
2006.07.04 03:35:23
이와 관련하여 A.W.Tozer 의 글을 소개합니다.
- 위티즈 접근법 -
위티즈(wheaties-원레는 콘프레이크같은 씨리얼을 일컬음) 접근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야구선수가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위티즈는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저 권투선수가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그것은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가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그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이 거물 정치인과 이 위원회의 의장이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그것은 좋은 것이다".
바로 이런 방식이 위티즈 접근법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에서 유행하고 있다. 일반 잡지나 종교잡지에서는 기독교는 화제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이 연예인이 예수를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임에 틀림없다. 이 정치인이 그리스도를 믿는데, 당신은 왜 그분을 영접하지 않느냐? 그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가 기도하는데, 당신도 기도하지 않겠느냐?, 이 바람둥이가 그분을 영접했다. 당신도 그분을 영접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위티즈 접근법이다. 이 방법의 의미를 아는가? 다름 아닌 그리스도가 이 세상 유명세에 편승하도록 만들고 있다. 세상을 예수와 비교하는 것이다.
영적 능력없이 영적인 일을 할수 있다는 착각인 것이다.
위티즈에 빠진 영화인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과거에 성령님에 의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 영적 기름부음 없이도 종교영화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할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신은 그가 파멸시키기 원하는 사람이 있을때, 우선 그를 미치게 만든다"라는 속담이 딱 어울린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접근법을 문제삼는 그리스도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A.W.토져 -
- 위티즈 접근법 -
위티즈(wheaties-원레는 콘프레이크같은 씨리얼을 일컬음) 접근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야구선수가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위티즈는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저 권투선수가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그것은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가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그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이 거물 정치인과 이 위원회의 의장이 위티즈를 좋아하니까, 그것은 좋은 것이다".
바로 이런 방식이 위티즈 접근법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에서 유행하고 있다. 일반 잡지나 종교잡지에서는 기독교는 화제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이 연예인이 예수를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임에 틀림없다. 이 정치인이 그리스도를 믿는데, 당신은 왜 그분을 영접하지 않느냐? 그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가 기도하는데, 당신도 기도하지 않겠느냐?, 이 바람둥이가 그분을 영접했다. 당신도 그분을 영접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위티즈 접근법이다. 이 방법의 의미를 아는가? 다름 아닌 그리스도가 이 세상 유명세에 편승하도록 만들고 있다. 세상을 예수와 비교하는 것이다.
영적 능력없이 영적인 일을 할수 있다는 착각인 것이다.
위티즈에 빠진 영화인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과거에 성령님에 의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 영적 기름부음 없이도 종교영화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할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신은 그가 파멸시키기 원하는 사람이 있을때, 우선 그를 미치게 만든다"라는 속담이 딱 어울린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접근법을 문제삼는 그리스도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A.W.토져 -
그런데 저는 요즘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청구고등학교에 매주 목요일마다 체플을 인도하러 갑니다. 벌써 2년이 되었네요. 이 학교는 이상한 학교입니다. 소위말해서 미션 스쿨이 아닙니다. 수업시간에 따로 채플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신우회를 조직해서 학생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학생들이 점심을 다먹고 쉴 시간에 지하 음악실(환경이 별로...)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약 100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에 매주 약 200명, 지난 부활절 예배 같은 경우는 약 300이 모여 예배드린다는 것입니다. 자리도 없어서 통로에 앉고, 그것도 없어면 뒤에 줄을 서서 머리만 내밀고.....이들속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약 70% 되는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는데...
전 이들을 보며 희망을 갖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이런 데가 있는 것으로 위안이 안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