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가을비 [5]
11월18일, 금 안개, 가을비 오늘 아침 평소처럼 7시에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리집 식당은 거실 겸해서 가족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실이 우리집에는 없다. 한 마디로 우리집 구조는 해괴하다.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카페도 아닌 것이, 일반 주택도 아니고, 연구소도 아닌 것이, 수도원도 아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순서 없이 짓다보다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나름으로 운치도 있다. 몇 군데 리모델링을 마음먹고 있는데, 집사람과 의견이 달라서 시작을 못하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2]
11월17일, 목 새 하늘과 새 땅 지난 주일의 설교 성경본문인 사 65:7절에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표현을 상투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이겠지, 뭔가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거겠지, 천당이 준비되어 있다는 거겠지 하는 정도로 여긴다. 이런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좀더 실질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지구다. 지구에는 온갖 종류의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박테리아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종의 다양성은 우리의 상상...
바에즈와 밥 딜런 [10]
11월16일, 수 바에즈와 밥 딜런 바에즈와 밥 딜런이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이미 포크 계에서 잘 나가던 바에즈가 무명의 밥 딜런을 자기 무대에 자주 세워주었고, 이를 계기로 밥 딜런은 일약 스타가 된다. 그들이 연인이자 동료 가수로 함께 활동하던 시절은 그들의 나이 20대 초였다. 몇 년 그렇게 좋은 시절을 보내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바에즈는 자기 노래 활동을 세계 변혁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반면에 밥 딜런은 그런 데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대하려고 하다 보니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알려진 이유다. 그러나 실...
STARBUCKS에서 [11]
11월15일 STARBUCKS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2016년 11월14일(월) 오전 10시다. 여기는 이름도 거창한 스타벅스 ‘여의도 의사당점’이다. 이런 유명 카페에 들어와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이 있어서 어제 인근 호텔에서 잤고, 점심 약속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 커피 한 잔 하러 둘러보다가 눈에 띄어 여기에 들어왔다. 이런 카페는 분위기가 다 비슷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삶의 ‘바이브레이션’을 연주한다는 기분으로 이 ‘순간’ 내 감각에 들어오는 몇 장면을 스케치해보겠다. 카운터- 뭐 드릴까요? (미소가...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11월13일) [3]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1월13일, 창조절 열한번째 주일 1) 오늘도 예배를 은혜롭게 잘 드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교회 교인들의 예배 출석률은 높은 편입니다. 장기 결석자들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예배에 빠지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성수주일’을 강조하지 않는데도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이유는 모두들 예배의 영성이 각별하기 때문이겠지요. 옛날 사람들이야 주일을 지켜야 복 받는다는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예배가 예배답게 드려지면 참석하라 마라 말을 하기 전에 기꺼이 참석하게 되겠지요. ...
바에즈의 목소리 [13]
11월12일 바에즈의 목소리 사람마다 손바닥 지문이 다르고 얼굴 표정도 다르듯이 목소리도 다르다.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아주 미세하게는 차이가 난다. 각자 좋아하는 목소리도 다를 것이다. 투명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허스키 목소리를 좋아하기도 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마음이 가기도 하고,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마음이 가기도 한다. 찢어지는 락 가수의 목소리를 좋아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발성하는 폴크송 가수의 목소리를 좋아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
베아트리체 바에즈 [16]
11월11일, 금 베아트리체 바에즈 단테가 9세 때 보고 첫 눈에 반해서 죽을 때까지 사랑했다는 여자의 이름이 베아트리체다. 어제 다비아 사랑채에 닉네임 푸른별 님이 쓴 글에 이 이름이 나와서 잠간 생각했다. 천재들은 사랑도 일찍 하나보다. 대개는 죽을 때까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다. 아무개와 연애하고 결혼한다고 해서 다 사랑을 경험하는 건 아니다. 연애감정과 결혼생활 자체가 사랑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랑 없이 사는 것도 가능하며,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 경험 없이 사는 것도 가능하며, 그걸 그...
젊은 조안 바에즈 [14]
11월10일, 목 젊은 조안 바에즈 요즘 대중음악이 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튜브에 들어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처음 유튜브를 알게 된 건 구 아무개 집사 덕분이다. 그 이전부터 유튜브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 관심 밖이었다가 구 아무개 집사가 다비아에 유튜브 음악을 올리면서 유튜브 메커니즘을 알려주는 바람에 접속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에게 그것의 순 기능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유튜브를 통해서 조안 바...
공공 신학자의 길 [3]
11월9일 공공 신학자의 길 신학이 밥 먹여주나, 하는 말이 가능하다. 목회자에게도 그렇고, 일반 신자들에게도 그렇다. 목회자에게 밥은 교회 성장과 직결된다. 교회 성장은 신자 수와 헌금 액수에 달려 있다. 신자 수를 늘리려면 신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생존에 허덕이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위로와 힐링이다. 이를 위해서 목사는 심리학이나 상담학 등에서 그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그것은 다 인간학에 속한다. 인간학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니, 오해 말기를. 노래도 기본적으로 인간학이다. 인간의 슬픔과 기쁨과 허...
유기적 지식인(3) [2]
11월8일 유기적 지식인(3)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 의미는 명료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달달 외우고 마는 지식인이 아니라 전체 진리와 연결해서 생각할 줄 아는 지식인이라는 뜻이다. 지식을 정보로만 아는 게 아니라 기독교 신앙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해내는 사람이다. 케빈 밴후저의 말을 더 들어보자. 목회자-신학자는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며, 그들은 성서가 그들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이것을 안다. 성서의 학교에서 성령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랬듯이 “예수와 함께” 있...
정채봉의 시 [3]
11월7일 정채봉의 시 ‘외우고 싶은 명시 50편’ 카드에 담긴 시를 빈 시간에 읽고 있다. 앞에서 두 편에 대한 나의 짧은 느낌을 올렸다. 이제 세 번째 올리는 시는 정채봉의 ‘오늘’이다. 시 평론가도 아니면서 어쭙잖은 글을 쓰는 게 부끄러워서 그만 둬야겠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좀 길게 쓰겠다. 오늘 정채봉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꽃밭- 모든 존재하는 것에...
주간일지, 대구샘터교회 11월6일 [3]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1월6일, 창조절 열번째 주일 1) 요즘 대한민국 국내 정치 상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나라라고 한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순실이라 이름 하는 여자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국정을 농락했습니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예배 후 식사 자리에서 오랜 만에 방문한 아무개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에 이 사태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글로 올려주지 않는...
나태주의 시 [9]
11월5일 나태주의 시 여기 아주 짧은 시 한편을 소개한다. 이 시도 ‘외우고 싶은 명시 50편’에 담겨 있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다. 아주 소박하지만 진실된 행복에 대한 노래다. 행복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저녁때- 시인들은 아침보다 저녁을 주목한다.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저녁을 특별한 순간으로 주목하지 않는다. 저녁 이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저녁의 어스름과 어둠을 ...
장석주의 시 [9]
11월4일 장석주의 시 어제 나는 대구성서아카데미 회원으로부터 ‘외우고 싶은 명시 50편’을 고리로 묶은 시 카드를 받았다. 교우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만큼 많은 부수다. 고맙다. 기회가 되는대로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이 기회에 나도 시를 외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목은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장석주 땅거미 내릴 무렵 광대한 저수지 건너편 외딴 함석지붕 밑 굴뚝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흩어진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오, 저것이야!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느림! 땅거미 내릴 무렵- ...
유기적 지식인(2) [2]
11월3일 유기적 지식인(2) 케빈은 목회자가 기본적으로 신학자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호칭 자체를 목회자-신학자라고 부른다. 이를 다른 말로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천재(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있는, 자신만의 독창적 사상을 지닌 사상가)나 지식인 엘리트가 아니다. 오히려 유기적 지식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의 필요와 신념, 갈망을 명확히 표현해낸다. 유기적 지식인은 공동체의 가르침과 바람을 말로 표현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아이비리그가 아니라 말하자면 고향에 있는 농장의 산물이다. 가...
예수 예배 [3]
11월2일 예수 예배 지난봄에 구입한 책 제임스 던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박규태 번역, 좋은씨앗)를 며칠 전에 다 읽었다. 소득이 컸다. 제목이 가리키듯이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약성경에 나오는 첫 기독교인들이 과연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여겼느냐, 하는 질문에 집중한다. 지금이야 당연히 예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겠지만 초기 기독교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제임스 던이 서론에서 제시한 이 책의 연구 방향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1. 우선 오직 하나님께만 ‘예...
유기적 지식인 [3]
11월1일 유기적 지식인 나의 고등학교 시절 프랑스어 교사인 스탠리 우드워스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가르침의 기쁨은 학생들에 대한 열정, 심지어는 주제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학생에게 주제를 소개하고자 하는 열정을 통해서 누릴 수 있다.” 이 말이 프랑스어나 화학, 역사에 적용된다면 목회자의 열정에는 얼마나 더 잘 적용되겠는가? 목회자의 열정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특별한 ...
신학지수 [7]
10월31일 신학지수 우리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목회자는 신학자이며 언제나 그래왔다. 둘째, 어떤 의미에서 모든 신학자는 공공신학자, 특별한 종류의 지식인, 특수한 유형의 보편적 지식인이다. 우리 주장의 토대를 이루는 확신은 지식인이 되기 위해 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목회자-신학자는 지능지수(IQ)가 높은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신학지수(TQ, theology quotient)가 높아야 한다. 셋째, 목회자-신학자가 공적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안에 든든히 서게 ...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0월30일 [2]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0월30일, 창조절 아홉 번째 주일,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주일 1) 오늘은 10월30일입니다. 10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10월도 다 갔고, 두 달만 더 가면 2016년이 끝납니다. 세월이라는 게 좀 우습지요? 느낌에 따라서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합니다. 이틀 후에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면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질 것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면 너무 빠르게 느껴질 겁니다. 2016년의 남은 두 달을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 시간이라는 심정으로 살아봅시다. 이 두 달 사이에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
원당일기(67) 걷기 [6]
오랜 만에 오늘 늦은 오후에 원당을 걸었다. 원당이 내 고향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마음으로나마 고향으로 생각하면서 걸었다. 앞으로 얼마나 내 삶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십중팔구 나는 여기서 죽을 것이다. 내 시체를 재활용할 건 하고 나머지는 재로 만들어 원당에 뿌려주면 좋겠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정 목사에게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으면 염려하지 말기 바란다. 이런 생각이야 누구나 하는 거고, 늘상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난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 산책을 자주 못 나갔고, 지난 한달 독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