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70년 [4]
4월4일 기원후 70년 4월3일 설교 앞 대목에서 ‘기원후 70년’에 일어난 한 사건이 초기 기독교의 운명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짚었다. 그것은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건이다. 만약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독교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어느 한 사건만으로 역사가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함락이 유대교의 성격을 바꾸었고, 그 바뀐 유대교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하지만 기독교의 운명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라 다른 지정학...
생명충만감
4월2일 생명충만감 부활 경험은 본질적으로 죄와 죽음의 극복 경험이라고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말했다. 죄와 죽음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죄와 죽음의 극복을 다른 말로 하면 생명충만감이다. 그것이 아직 마지막이 오지 않았으나 은폐의 방식으로 이미 지금 여기서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1) 생명충만감은 순간의 깊이에서 주어진다. 하이데거 표현으로 순간(Augenblick)은 우리가 생명충만감에 이르는 통로다. 순간에는 무진장한 깊이가 숨어 있다. 그 깊이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
그리스도 강림과 부활
4월1일 그리스도 강림과 부활 바울은 고전 15:23절에서 부활의 순서를 말한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절에서는 그 뒤로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의 완성이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종말에 일어날 것으로 말했다. 이런 표현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막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라니, 그때가 구체적으로 언제인가? 일단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는 세상의 종말론적 완...
21세기 영지주의
3월31일 21세기 영지주의 설교에서 나는 21세기 영지주의가 대표적으로 자본주의와 자연과학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다 해서 자본주의와 자연과학 자체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건 아니다. 선과 악은 칼로 무를 자르듯이 구분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 교차된다.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선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건 아니다. 인간과 삶은 우리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다 따라잡을 수 없는 심연에서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럼...
영혼불멸과 부활
3월30일 영혼불멸과 부활 설교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문구가 고린도교회 영지주의 신자들과의 신학적 논쟁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육체는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악한 육체의 부활은 의미가 없고, 선한 영의 부활만이 의미가 있다. 이 영은 영원하기 때문에 결국 이들에게 부활은 없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는 몸의 부활을 말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죽은 자의 부활이다. 여기서 말하는 몸은 단백질로 구성된 질료 자체를 말하는 게 아...
부활 목격자 목록 [2]
3월29일 부활 목격자 목록 고전 15:5-8절에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사람들의 목록이 나온다. 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이 그들이다. 여기서 게바는 베드로이고,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열두 제자와 모든 사도가 겹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에 사도는 열두 제자만이 아니라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백여 형제 앞에 부활의 예수님이 일시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예수의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서 모임을 시작한 사람들의 숫자가 120명이라는 ...
마음 비우기 [9]
3월28일 마음 비우기 우리집 옆 마당에 자그마한 텃밭이 있다. 몇 년 동안 그곳에 채소를 심어서 그런대로 싱싱한 먹을거리를 거둬들이는 재미를 보았다. 시행착오도 몇 번 거치니까 이제는 어떻게 재배해야 하는지 감이 약간 잡힌다. 진작 밭을 정리해야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작정하고 텃밭으로 나갔다. 이 모습이다. 흉하다. 특히 저 검은 비닐이 그렇다. 저게 없으면 매일 김매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텃밭이라도 비닐을 깔아야 한다. 저건 한번 쓰고 더 이상 못 쓴다. 걷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주에 한번 밭에 ...
생명, 최초의 30억년
3월26일 생명, 최초의 30억년(14, 끝) 광대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생명체가 우주에서 가장 출현할 가능성이 없는 생명형태라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주생물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속하는 ‘지구 생명의 어떤 점이 생명의 보편적인 특징이며, 어떤 점이 우리의 역사를 만든 우리만의 특징일까’를 해결하는 일을 가로막고,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화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유로파의 얼음이나 바다에서 생물을 찾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
알파고와 영혼 [4]
3월25일 알파고와 영혼 설교에서 영혼 문제를 말하다가 알파고까지 언급했다. 인간 영혼도 언젠가는 과학에 의해서 극복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내가 직접 왈가왈부하긴 어렵다. 그들의 과학 언어를 내가 충분히 아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의 방식으로 인간 영혼까지 과학이 지배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창조 능력은 훼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는 세상을 무(無)로부터 창조했다. 창세기의 창조설화가 가리키는 대목이다. 창조는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
엄청난 힘 [2]
3월24일 엄청난 힘 어제 언급한 충만(充滿)이라는 말이 관념적이어서 실제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도 크다. 충만은 하나님 경험이라고 해도 좋다. 어떤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할 때 그 어떤 것은 하나님 외에는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리 열정적이라고 해도 충만에 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충만은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비밀한 방식으로 내 삶을 가득 채운다는 뜻이다.’ 여기서 엄청난 힘은 곧 하나님이다. 틸리히의 용...
충만과 결핍 [2]
3월23일 충만과 결핍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느낀다는 의미라고 설교에서 말했다. 친밀성과 신뢰성이 아버지 호칭의 핵심이다.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친밀하게 느낀다는 것일까? 이 대답은 이미 설교에서 어느 정도 제시했으니 여기서는 한 마디만 하고, 설교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보충하겠다.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낀다는 것은 생명 충만감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생명 창조주이시니 이런 말은 당연하다. 문제는 어떻게 생명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느냐다. 자연 안에서 충만감을 느낄 ...
수난설화
3월22일 수난설화 지난 설교 앞부분에 나온 신학용어 ‘수난설화’를 보충 설명해야겠다. 일단 설화라는 용어가 일반 신자들에게는 낯설거나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꾸며진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설화는 전승이라는 말로 바꿔도 된다. 어느 공동체에 전해진 이야기를 가리켜 설화, 또는 전승이라고 한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요즘처럼 기자들이 따라다니면서 작성한 문서로 남은 게 아니다. 구전(口傳)이다. 구전은 처음부터 완벽한 형식을 갖춘 게 아니다. 전승되면서 내용이 약간씩 달...
광케이블 [6]
3월21일 광케이블 언제부터인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인터넷이 불안정하게 작동된 게 제법 되었다. 그래도 시골이니 어쩔 수 없다 하면서 지냈다. 그 이전부터도 인터넷 속도는 느렸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상황이 더 나빠졌다. 몇 분마다 인터넷이 끊겼다. 오후 늦은 시간에 설교 파일을 약속한 분들에게 보내지 못해서 가까운 지구대를 찾아가볼까 생각하다가 잠시 연결되는 순간에 메일은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끊겼다. 주일 아침에 들어가 보니 다시 연결되었는데, 교회에서 돌아와 보니 본격적으로 먹통이 되어버렸다. 케...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3월19일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설교 마지막 두 문장은 아래와 같다. ‘예수님에게 영적으로 몰입하는 우리의 선택은 예수님에 의해서 보장받았으니 굳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생명을 주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져도 좋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가던 길을 계속 가십시오.’ 세상으로부터의 자유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으면서 산다. 자유가 아니라 예속이다. 세상이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땅에 두 발...
Agnus Dei [2]
3월18일 Agnus Dei 설교에서 간단하게 설명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양을 잡는다. 출애굽 당시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유월절 양 잡는 전통을 예수의 죽음과 연결해서 받아들였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예수는 Agnus Dei(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인간 역사에서 벌어지는 온갖 재난과 재앙과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카인』의 표지 그림이 바로 그 어린양이다. 네 다리가 하나로 묶여 있다. 곧 목숨이 끊길 운명에 처한 것이다. 기독교는 예...
파종 [10]
게으른 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지난 가을부터 간수해두었던 씨를 꽃밭에 뿌렸습니다. 파종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일단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돌이나 잡동사니를 골라내야 합니다. 오랜 만에 삽을 든 탓인지 조금만 움직였는데도 발목과 허리가 시큰거리네요. 우리집 마당 흙은 진흙과 돌이 뒤덤벅 상태라서 아무리 마사토를 뿌리고 퇴비를 뿌려도 별로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작은 돌맹이가 한없이 나와서 대충 항복하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래도 겉으로 볼 때는 괜찮을 겁니다. 오른쪽 위에 풍접화, 아래...
거룩한 낭비 [2]
3월16일 거룩한 낭비 노동자의 일 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은 마리아의 행위는(요 12:1-8)는 파격적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걸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게 낫다는 유다의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 향유가 혼수품이라면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설교에서 나는 마리아의 행위를 거룩한 낭비라고 표현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현대인들이 혐오하는 낭비지만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거룩한 낭비다. 이런 게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교회에서 모든 불합리한 것들을 믿음이라는 말로 처리하...
생명, 최초의 30억년(13)
3월15일 생명, 최초의 30억년(13) 피터 워드와 도널드 브라운리는 그들의 저서 『진귀한 지구』에서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아주 드물다고 주장하면서, 지구에서 우리와 같은 복잡한 신경이 진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천체 환경과 지질구조상의 조건들이 기여했는지를 나열했다. 더 일찍이 햅 맥스윈은 그의 멋진 저서 『지구에 보내는 찬가』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지능이 진화하려면 모든 것이 안성맞춤이어야 한다고 해서 종종 ‘골디락스’ 가설이라고 풍자되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진화를 일으킨 조건이 특별하기 때문에 우...
생명, 최초의 30억년(12)
3월14일 생명, 최초의 30억년(12) 외계행성의 생물은 DNA와 단백질을 합성할까? 그들은 단세포 생물일까, 다세포 생물일까? 물속에 살까, 땅 위에 살까? 이 문제들은 하루이튼 사이에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머나먼 행성에 만일 생물이 많고 적당한 물질대사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환경에 끼친 영향을 통해 생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광년 너머에 존재하는 행성에 이르면 ‘지구형행성탐사계획’조차 소용이 없을지 모른다. 먼 은하에 있는 행성은 너무 희미하고 멀어서 이런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
탕자와 예수
3월12일 탕자와 예수 지난 설교 중에 나는 위험한 말을 했다. ‘예수는 탕자입니다.’ 탕자도 버림받은 운명이고, 예수도 버림받은 운명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운명이었다. 당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탕자의 버림받음은 자신의 잘못이니 어쩔 수 없지만 예수의 버림받음은 자신의 잘못이 전혀 아니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욥의 재앙도 욥의 책임은 아니었다. 욥이 하나님께 거칠게 항의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하나님을 부정하기 마련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