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4]
1월25일 혹한 어제가 음력으로 12월15일 보름이었다. 늦은 밤 마당에 나가보니 둥근달에서 쏟아지는 달빛이 마당과 마을 전체를 밝히고 있었다. 별빛이 힘을 읽을 정도로 달빛이 밝았다. 이런 장면은 고혹적이다. 내가 다른 행성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둠 반, 밝음 반이다. 사물들이 어둠에 숨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드러난 것도 아니다.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다. 마당에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그리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추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요즘 추위가 극성이다. 24일 서울은 영하 18...
세례와 삶
1월23일 세례와 삶 지난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과 하나 되었습니다. ... 저의 인생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예수와 더 긴밀히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세례 사건이 내 삶의 토대라는 뜻이다. 세례 받았으니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세례는 죽음과 삶에 대한 종교 의식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산다는 뜻이다. 종교 의식은 단순한 형식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내용을 담는다. 죽음과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례가 아무런 의...
하나님의 우주론적 구원 드라마 [2]
1월22일 하나님의 우주론적 구원 드라마 거룩한 자존감을 우주와의 관계에서 간단히 설명했다. 내용을 여기서 반복하지 않겠다. 핵심은 140억년에 이르는 우주 안에 내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내 거룩한 자존감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주와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40억년이라는 세월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에 몰두해서 살아간다. 어쩔 수 없다. 당장 먹고 사는 걸 포기할 수 없고, 이왕이면 좀더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니 수고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런 일들이 대충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
거룩한 자존감
1월21일 거룩한 자존감 설교 후반부에서 ‘거룩한 자존감’이라는 말을 했다. 보통 자존감이라는 말은 힐링이나 멘토링 등등의 일상에서도 흔히들 한다. 자신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존귀하게 여기자는 말이다. 다 좋은 이야기다. 다만 자칫하면 자기 집착에 떨어질 수도 있다. 설교에서 언급된 거룩한 자존감은 세상이 말하는 자존감과 동일한 게 아니다. 그것은 거룩함과의 관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거룩함은 보통 세속과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속 이원론적인 차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명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날 수 있...
축제 [9]
1월20일 축제 지난 설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예쁜 짓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눅 15:11-32)를 예로 들었다. 이 본문은 무디나 빌리 그레함 등, 미국의 부흥사들에 의해서 단골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달하면 부모의 속을 썩이던 사람들, 부부 싸움을 자주하던 이들, 깡패와 사기꾼들, 이런저런 양심에 가책 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은 눈물콧물 흘리면서 은혜를 ...
기원전 538년 [4]
1월19일 기원전 538년 유대의 기원전 538년은 우리의 1945년과 같다. 양쪽 모두 해방의 순간이다. 그때 유대는 50년간의 바벨론 식민시대에서 벗어났고, 한민족은 36년간의 일제 식민시대에서 벗어났다.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으나 실제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기원전 538년의 바벨론 포로귀환은 유대인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역사가 아니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서 패망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당시 유대는 해방을 맞아 나라를 세울만한 능력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다. 만약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유대인들을 돌려보내...
하나님의 기쁨? [6]
1월18일 하나님의 기쁨? 지난주일 설교 제목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였다. 기쁨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첫 글자인 ‘기쁠 희’에 속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슬픔, 하나님의 화, 하나님의 고통 등등의 표현들이 나온다. 하나님은 하늘에 고고한 자리에 앉아 있는 무감정(apatheia)의 존재가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삶에 기꺼이 참여하는 열정(passion)의 존재라는 말이다. 헬라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이런 열정이 너무 지나쳐서 감정적으로 인간과 다를 게 없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엄격하게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 경험 [2]
1월16일 하나님 경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자체다. 하나님 나라와 별개로 하나님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라로, 즉 통치로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하나님이 멀리 있었다는 말인가? 하나님 나라가 멀리 있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거나 외면했다고 보는 게 옳다. 이제 관건은 하나님이 누구냐, 또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지난 며칠 간의 묵상 글을 잘 따라온 분들은 이미 답을 알 것이다. 하나님은 생...
임박한 하나님 나라 [2]
1월15일 임박한 하나님 나라 제자들이 예수를 부활체로 경험했다는 것은 예수를 통해서 궁극적인 생명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부활은 단순히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궁극적인 생명, 즉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의 변화다. 또한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기에 부활 경험은 곧 예수를 하나님으로 경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활 여부를 딱 끊어서 규정하지 않고 다른 개념과 연결하는 방식의 이런 설명이 어떤 분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경험은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생명 경험의 상투성
1월14일 생명 경험의 상투성 지난 설교에서 예수 부활을 설명하면서 일단 상투적인 생명 경험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경험은 세상이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가르치고 강요하고 유혹하는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흔하게 말하듯이 점수 잘 받아 일류 대학 나오고 높은 연봉 받으며, 더 나가서 세상에서 인정받고 사는 것이 세상이 가르치는 삶의 방식이자 목표다. 이런 삶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가능하면 좋은 조건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나 세상에서 느끼는 열정과 재미를 매도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
투명한 영혼 [8]
1월13일 투명한 영혼 지난 설교에서 나는 제자들과 소수의 추종자들만 예수를 메시아로 인식하고 믿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들을 투명한 영혼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영혼이 투명하다는 건 무슨 말인가? 영혼이 혼탁하다는 말도 가능한가. 영혼이 투명하다는 말은 생명의 가장 깊은 차원을 민감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고, 영혼이 혼탁하다는 말은 생명의 비본질적인 차원, 또는 생명의 표피적인 차원에 매달린다는 뜻이다. 투명은 존재의 차원이고, 혼탁은 소유의 차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예컨대 우리가 거주하는 집을 생각해...
시편 2:7
1월12일 시편 2:7 예수 세례 당시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에서 울린 소리는 시 2:7절의 인용이라고 설교에서 말했다. 신약성서 기자들은 구약을 종종 인용한다. 직접 인용하기도 하고, 간접 인용하기도 한다. 그들이 구약을 인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이 구약의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이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성취라는 사실이다. 신약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예수도 역시 그렇다. 성경과 예수는 다 역사적인 사건이다. 역사는 때로 비약되기도 하지만...
예수의 세례 [6]
1월11일 예수의 세례 지난 설교 본문의 배경은 예수의 세례다. 예수는 당시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네 복음서가 이것을 다 전하는 걸 보면 이게 객관적인 사실인 것 같다. 예수의 세례는 뜨거운 감자다. 객관적인 사실이니 말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자칫하면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예수보다 높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례는 기본적으로 회개를 전제한다. 요한의 세례는 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회개다. 그 내용이 눅 3:7-14절에 기록되어 있다. 11절만 보면,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
우주론적 구원
1월9일 우주론적 구원 어제 묵상에 나오는 우주의 완성은 너무 거시적인 차원이라서 기독교인들이 실감하기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늘 그런 차원을 바탕에 두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일어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거룩한 상상력이다. 우주의 완성을 가리킨다. 계 21:1,2절은 다음과 같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고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런 우...
하늘과 땅의 일치
1월8일 하늘과 땅의 일치 셋째, 하나님은 마지막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할 것이다(10절). 바울은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은 만물(萬物)을 가리킨다. 만물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우주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우주의 완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태양계를 넘어서 은하계까지, 더 먼 우주까지 갈 것도 없이 일단 눈앞의 것만 보자. 산, 강, 나무, 고양이, 박테리아, 그리고 인간 등등, 수많은 생물과 무생물이 존재한다. 모든 것들은 지구 안에서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개별적으...
죄 용서
1월7일 죄 용서 둘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았다(7절). 죄라는 말을 현대인들은 극도로 싫어한다. 교회 나가기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죄 문제다. 교회에 나가면 자기의 죄를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의 느낌이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목사들은 선악과 설화를 근거로 원죄까지 거론한다. 성경이 말하는 죄 개념을 오해하는데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기서 다시 죄 개념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죄 용서를 설명하면 죄 개념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은 예수...
하나님의 아들 [1]
1월6일 하나님의 아들 엡 1:3-14절에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가 열 번이나 나온다고 설교에서 언급했다. 그 단락에서 언급되는 모든 것이 다 이 문구에 걸린다. 이렇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명하는 걸 가리켜 신학 용어로 ‘기독론’(christology)이라고 한다. 바울이 말하는 기독론적 해명에서 나는 세 가지를 짚었다. 첫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5절).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
박테리아와 인간 [5]
1월5일 박테리아와 인간 지난 설교 중에 <생명, 최초의 30억년>에 나오는 박테리아 이야기를 했다.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생명 현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처음부터 다양한 게 아니었다. 생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는 10억 년 전인 캄브리아기다. 캄브리아기 이전에는 생명의 진화 속도가 아주 느렸다. 원시 생명체가 지구에서 시작된 때는 지구가 생기고 5억년이 지난 40억 년 전이다. 그때부터 캄브리아기까지 어떤 생명 현상이 있었는지를 저자가 밝히고 있다. 그 흔적의 일부가 암석에 남아 있다. 저자는 세계...
하늘 [2]
1월4일 하늘 바울은 엡 1:3절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이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구약성경은 하늘에 대해서 자주 말한다. 주기도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예수도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다. 그리고 승천했으며, 마지막 때 다시 오신다. 나는 설교에서 성경이 말하는 하늘을 땅과 완전히 분리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하늘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고 말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하늘을 자...
일상을 예배처럼 [6]
1월2일 일상을 예배처럼 지난 설교(12월27일) 마지막 단락의 한 부분을 인용하겠다. ‘기독교인 완전’은 도덕군자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방식인 사랑의 능력에 휩싸여 일상을 구도적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일상을 예배처럼(골 3:16)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비밀한 방식으로 완전한 사람입니다. 몇 단어를 발췌하자. 도덕군자, 하나님의 존재 방식, 사랑의 능력, 일상, 구도적, 예배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비밀한 방식, 완전한 사람. 각각의 단어들이 큰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이런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