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과 양심 [1]
10월24일 의로움과 양심 어떤 사람을 의롭다고 할 때 우리는 주로 양심을 문제로 삼는다. 양심적인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본다. 착한 일을 할 때는 양심이 떳떳하고,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착한 일과 부끄러운 일은 세상의 도덕규범이나 실정법 등을 가리킨다. 종교적으로는 율법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양심적으로 살기 위해서 그런 도덕규범과 법을 지킨다. 하이데거는 양심 문제를 좀 더 근원적인 차원으로 본다. 박찬국 교수의 설명을 인용하겠다. 이렇게 양심의 부름이 현존재를 책임 있음으로 불러 세운다...
의로워짐 [2]
10월23일 의로워짐 구약의 속죄제사는 죄를 용서받는 종교의식이다.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은 의로워진다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최대 관심은 의(義)다. 율법의 정수가 바로 의다. 이런 열정이 지나쳐서 율법주의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초기 기독교가 주장한 의는 고대 이스라엘의 그것과 달랐다. 율법 실천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게 의에 이르는 길이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는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세상과 ...
거미 [2]
거미의 사는 방식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모든 동물들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 다른 개체를 잡아먹고 산다는 점에서는 인간이 가장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 그러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곤충들이 잡히길 기다리다가 걸려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포획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우리 집에도 여러 곳에 거미가 있는데 가능하면 제거하지 않고 그냥 두고 본다. 좀좀한 거미줄을 보라. 저걸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대단한 능력이다. 나는 기독교 교리를 거미줄에 비유할 때가 있다. 한쪽 줄을 ...
색깔 [2]
요즘 본격적인 단풍 계절은 아니지만 서서히 물들어가는 모습이 여간 예쁜 게 아닙니다. 원당의 숲과 산도 그렇고, 거기 한 자락 붙어 있는 우리집도 그렇습니다 남쪽 텃밭 절개지 언덕 바로 위의 색깔이 눈에 들어와 가까이서 찍었습니다. 정말 예쁜 모양과 색깔이지요? 나무 종류가 몇 개인지 맞춰보세요. 내가 이름을 아는 나무는 대나무 하나군요.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 이름은 뭔지 모르겠어요. 위 사진은 렌즈를 당겨서 찍은 장면이고, 아래는 같은 장소에서 보통 초점으로 찍은 장면입니다. 가지각색의 나무와 풀들이 뒤엉켜 있습...
영광 받으심 [2]
10월20일 영광 받으심 예수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대제사장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그의 완전성에 놓여 있다. 그 완전성은 부활 승천, 즉 들림 받음이다. 이 들림 받음이 영광 받으심이라고 설교에서 말했다. 그게 무엇일까? 영광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또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존재를 가리킨다. 이런 용어들은 관념적이어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실은 하나님이라는 용어 자체가 관념적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만났다거나 경험했다고 쉽게 말한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해의...
속죄 제사 [2]
10월19일 속죄 제사 어제 설교를 이해하는데 키워드는 속죄 제사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그걸 설교 시간에 간단히 언급했지만 보충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겉으로 나타난 파렴치하고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죄라고 생각한다. 옳은 생각이다. 그런 행위들은 생명을 파괴한다. 그러나 죄에는 더 심층적인 차원이 있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드러나는 행위의 존재론적 깊이에서 삶을 파괴하는 차원을 가리킨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
모두 죽는다(10) [9]
10월17일 모두 죽는다(10)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가는 나는 죽음 앞에서 어떤 희망을 말할 수 있나? 천국에 가서 좋은 집에 살면서 배불리 먹고 건강하게 사는 걸 희망하지 않는다. 그런 삶의 방식으로는 내 영혼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삶은 이 땅에서 누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천국에 가서 그리운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과 교우들을 만나서 옛날을 회고하면서 웃고 지내는 걸 희망하지 않는다. 내가 알던 사람과 모르던 사람을 구별하는 건, 그리고 착한 사람과 못된 사람을 구별하는 건 절대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
모두 죽는다(9) [3]
10월16일 모두 죽는다(9) 직접적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런 질문은 추상적이다. 어떤 식으로 대답해도 말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안 될 수도 있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먼저 말하는 게 옳을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죽을 준비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도 애매하다. 보통은 할 일을 다 마치는 것이 죽을 준비로 여긴다. 좁게는 자식을 키우는 일, 크게는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일, 또는 학문적이거나 예술적인 업적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걸 죽을 준비라 할 수...
모두 죽는다(8) [2]
10월15일 모두 죽는다(8)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당하게 될 육체적인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폐암이나 췌장암은 고통이 극심하다고 한다. 본인들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다. 이런 상황 앞에서는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된다. 해결 방법이 안락사다. 이게 합법화된 나라도 있다. 안락사는 몇 겹의 확인과정을 거쳐서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만 소극적으로 기회가 주어진다.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 1년 더 살기보다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행...
모두 죽는다(7) [4]
10월14일 모두 죽는다(7)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건 죽기 싫다는 욕망의 좌절에 기인하기 때문에 죽지 않으면 당연히 행복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죽어본 경험이 없어서, 또는 죽음을 넘어선 경험이 없어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실제로 죽지 않는다면 행복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비유적으로 생각해보자. 여기 대학생이 한 사람 있다. 졸업도 없이 계속 학생으로만 남게 된다면 그는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5년이나 10년이 아니라 정년 때까지 계속...
모두 죽는다(6) [4]
10월13일 모두 죽는다(6)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분명한 것은 우리 몸이 지구의 원소로 해체된다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말씀이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살, 내 피부, 내 혈관과 피가 너무 확실한 것이라서 이 모든 게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잘 안 된다. 이론과 실제의 부조화로 인해서 사람들은 몸을 가꾸는 일에 과도할 정도로 삶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확인하려는 ...
모두 죽는다(5)
10월12일 모두 죽는다(5) 사람은 ‘모두’ 죽는다. 예외가 없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나 못사는 나라 사람이 다르지 않다. 착한 사람과 못된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없다. 부자라고 해서 죽음이 피해가지 않고, 거꾸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죽음이 피해가지 않는다. 교황도 죽고, 노숙자도 죽는다.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할 수만 있다면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삶이 피곤한 사람들도 이 사실로 인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거꾸로 삶이 즐거운 사람들도 이 사실로 인해서 교만하지 않게 된다....
모두 죽는다(4) [2]
10월10일 모두 죽는다(4) 어제 말한 하이데거의 생각을 조금 더 보충하겠다. 그는 죽음에 대한 현존재의 불안을 ‘현존재가 자기의 가장 독자적이고 무연관적이며 능가할 수 없는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이다.’라고 보았다. 여기서 죽음에 대한 성격이 세 가지로 규정된다. 1) 독자성- 죽음은 혼자만 가야 하는 길이다. 혼자 가기 때문에 아무도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죽음을 아는 게 아니다. 죽음의 객관적인 현상만 볼 수 있을 뿐이다. 2) 무연관성- 죽음으로 ...
모두 죽는다(3) [5]
10월9일 모두 죽는다(3) 죽음을 생각하는 삶과 생각하지 않는 삶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일리가 있는 질문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서 삶의 문제들이 다 해결된다거나 마음이 늘 평안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골치만 아파지고, 더 심해지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으니,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지금 부산에서 속초까지 운전을 하거...
모두 죽는다(2) [2]
10월8일 모두 죽는다(2) 현대인들이 죽음을 남의 이야기처럼 여기면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이것이 가장 결정적일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문화가 죽음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두 삶에 대한 이야기만 들린다. 여기서의 삶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을 가리킨다. 모두 건강하고 예쁘고 연봉이 높고 쾌적한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일에만 몰입하게 만든다. 오늘의 이런 문화에 죽음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다른 영역은 접어두고 교회만 해도 그렇다. 죽음을 신앙과 설교의 화두로 삼는 ...
모두 죽는다(1) [14]
10월7일 모두 죽는다(1) 우리의 미래에 일어날 일들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다. 아주 갓난아이를 빼고는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죽음을 의식하더라도 거기에 일치해서 사는 사람은 더 드물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죽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끝없이 성장하고, 소유하고, 소비하는 식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뭔가? 이유를 따지자면 수도 없이 많다. 아무도 죽음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죽...
달걀을 삶으며... [3]
10월6일 달걀을 삶으며... 나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아침에 달걀을 삶는다. 2000년도에 독일에 잠시 머무는 동안 사용하던 달걀 삶는 전기도구를 지금껏 그대로 사용한다. 일곱 개의 달걀이 들어가는데, 보통 다섯 개나 여섯 개를 삶는다. 원래는 딸려 있는 계량컵으로 물을 조정하게 되어 있다. 달걀 숫자와 완숙, 반숙 수준에 따라서 물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계량컵을 잃어버린 후에는 핸폰의 스톱 워치로 시간을 잰다. 전기를 넣고 14분30초면 반숙은 아니고 완숙도 아닌, 먹기에 부드러운 정도로 익는다. 나는 무얼 먹을 때 유인원들...
욥의 아내 [3]
10월5일 욥의 아내 어제의 설교 본문에 욥의 아내가 나온다. 이름은 없다. 42장에 이르는 욥기에서 이 여자의 말은 딱 한 마디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악담이자 저주다. 욥의 아내는 기독교 역사에서 악한 여자로 간주되었다. 어거스틴은 그녀를 ‘악마의 보조자’라 했고, 칼빈은 ‘사탄의 도구’라고, 크리소스톰은 욥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자라고 했다. 과연 욥의 아내는 악처인가? 구약 <70인 역>에는 욥의 아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그의 아내가...
설교준비
10월3일 설교준비 어제와 오늘에 걸쳐 내일 주일에 전할 설교 준비를 마쳤다. 1980년 3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군목에 입대하여 8월부터 8사단 오뚜기부대 포병단 군대교회 목사로 설교를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35년 동안 설교에 모든 삶을 걸고 살았다. 이런 정도 연륜이면 특별히 설교 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30분 주일예배 설교를 청산유수로 할 때도 됐지만, 매주일 처음 설교를 하는 사람처럼 뭔가 조심스럽고 설렌다. 그래서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쳐서 설교 준비를 가능한 철저하게 한다. 설교준비를 철저하게 한다고 해서 청중들...
택배 [3]
10월2일 택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제 오후에 낯선 전화가 왔다. 보통 때는 내 폰에 입력되지 않은 번호는 받지 않는데, 어제는 무슨 느낌이 왔는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떤 젊은 여자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택배 왔는데, 집에 계시지요? 5분 안에 도착합니다. 택배 직원들은 대개 남잔데 간혹 여자들도 있다. 5분이 아니라 2분 만에 택배 짐차가 우리 집 쪽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갔다. 비도 오고 하니 가능하면 내가 차 앞에 나가서 물건을 받아올 생각이었다. 내려가면서 보니 짐칸의 문이 열렸고 여자가 문 안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