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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와 바울

  • Sep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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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8일 야고보와 바울 야고보서는 4세기까지 신약성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기독교 집필자들의 문헌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야고보서가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정경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거기에는 어떤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 저자가 예수의 동생 야고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야고보서의 저자는 누군지 모른다. 저자 문제는 너무 복잡하니까 여기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야고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겠다. 행위가 없는 믿음을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의 주장은...

성경과 신학논쟁

  • Sep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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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7일 성경과 신학논쟁 어제 설교 중에 야고보의 발언은 신앙 에세이가 아니라 신학논쟁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교리의 형성이 논쟁의 과정이고, 이런 논쟁의 과정이 문서로 자리를 잡은 게 성경이다. 성경을 바로 이해하려면 이런 논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 그렇지 않은 대목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한 구절씩만 예로 들자. 창 1: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선포한다. 이 구절은 하늘과 땅이 저절로 생겼다는 주장과의 대결에서 나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소불...

율법과 죄, 그리고 은총

  • Sep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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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율법과 죄, 그리고 은총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의 기독교는 역사에 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유대교의 한 분파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 이전에 예루살렘 초기 기독교를 주도하던 이들이 모두 유대교의 율법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과 비슷한 종교적 배경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율법주의 전통에 강력히 반기를 들었다. 이에 해당되는 한 구절이 롬 4:15절이다. 공동번역으로 소개한다. “법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마련입니다.” (...

하나님 경험과 언어의 한계 [2]

  • Sep 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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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4일 하나님 경험과 언어의 한계 어제 묵상에 이어지는 이야기다. 하나님 경험은 절대 생명에 대한 경험이다. 그걸 절대 생명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아니면 궁극적 실체라고 해야 할지,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대상은 모든 것의 궁극적인 대답이 될 수 있는 근원이다. 그런데 인간 언어는 늘 제한적이다. ‘오늘 바람이 분다.’는 말이 있다 하자. 바람이 부는 사실을 가리키는 건지, 바람이 불어서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를 저 말만 갖고는 ...

모세의 말과 하나님의 말

  • Sep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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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일 모세의 말과 하나님의 말 지난 설교에서 모세의 말과 하나님의 말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성경의 내용 중에서 실제로 모세의 말이 따로 있고, 하나님의 말이 따로 있다는 말이냐, 그걸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이건 모세 오경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성경 전체에 해당되는 문제다. 바울의 편지는 바울의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설교에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짚었다. 1)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지 않는다. 2)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인간의 언어로 담아낼 수 없다. 2번은 내일 설명하...

모세 오경 이야기

  • Sep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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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일 모세 오경 이야기 구약의 앞부분 다섯 권의 책을 보통 모세 오경이라고 한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다. 모세 오경은 율법서다. 토라라고도 부른다. 구약 39권 중에서 이 부분이 핵심이다. 창조 이야기, 인간의 타락과 노아 홍수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족장 이야기와 출애굽과 40년 광야생활 이야기가 여기에 포함된다. 고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의 역사적 사건들만이 아니라 후대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율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스라엘 종교 문헌들 중에서 ...

원초적 피조물로서의 자리 [2]

  • Sep 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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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원초적 피조물로서의 자리 요즘 대구샘터교회는 예배 처소를 새로운 곳으로 옮긴 후에 새로운 풍속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건물의 1층은 괜찮은 분위기의 카페다. 상호는 ‘카페 앤’이다. 교인들에게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2천5백원에 제공된다. 교회 모임이 끝나고 대화를 더 하고 싶은 분들은 자연스럽게 그 카페로 올라간다. 여러 가지 주제의 대화가 나온다. 신앙적인 주제도 나온다. 예배 순서에서 제일 앞에서 나오는 예배의 부름에 대한 이야기도 지난 모임에서 나왔다. 사회자가 읽은 예배의 부름은 아래와 같다. 예배를 ...

십계명 [2]

  • Aug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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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1일 십계명 어제 설교에서 율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율법은 유대인들의 종교법을 가리키지만 그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질서를 가리킨다. 유대교만이 아니라 기독교와 다른 종교도 다 자기들의 종교법이 있다. 그게 율법이다. 그리고 국가의 헌법을 기본으로 해서 모든 법률과 시행세칙들 역시 율법적인 기능을 갖는다. 그 법을 기준으로 선악, 그리고 정의와 불의가 분리된다.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다. 법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간의 삶을 법이 다 담아낼 수 없다. 오늘 우리의 실정법을 ...

산만한 영혼

  • Aug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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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 산만한 영혼 지난 주일의 설교 제목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가리키는 것은 세상을 이곳저곳 기웃거리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서 외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세상의 문제로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은 사람이다. 거꾸로 세상에 갈 곳이 많은 사람들은 영혼이 산만한 사람들이다. 영혼은 단순히 육체와 대별되는 인간의 구성 요소가 아니다. 인간 생명의 가장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능력이 곧 영혼이다. 영혼은 가장 깊은 차원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이 하나님과 돈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

양자택일

  • Aug 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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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8일 양자택일 제자들 여럿이 떠난 뒤에 예수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 곁을 떠날 거냐, 요즘 식으로 바꿔서 교회에 나오지 않을 거냐, 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미 설교에서 한번 짚었지만 이 질문은 생명과 죽음, 또는 생명과 생명 아닌 것, 또는 생명과 사이비 생명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소리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글자라고 해서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귀가 있다고 ...

스클레로스

  • Aug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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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7일 스클레로스 유대 군중들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와 그의 발언과 그에게 일어난 사건 앞에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요 6:60절에 따르면 제자들 여럿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는 예수의 말을 듣고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했다. ‘어렵다’는 단어는 헬라어 형용사 스클레로스에 해당된다. 어렵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설교에서 설명했다. 어떤 근원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지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영혼의 주파수가 이미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쪽으로 옮기기 어...

썩을 양식

  • Aug 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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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 썩을 양식 오병이어 사건을 목격한 뒤에 예수에게 메시아적 희망을 품고 찾아온 유대 군중들에게 예수는 듣는 이들에게 민망한 말을 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기분 나쁜 말로도 들릴 수 있다. 당신은 뭐 잘났다고 썩은 양식 운운하냐고, 당신은 밥 먹지 않고 이슬만 먹고 사냐고 말이다. 이건 오해다. 예수는 결코 관념적인 생각에 머문 적이 없다. 썩을 양식 운운은 인간 삶의 실체를 뚫어본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 문제는 썩을 ...

요한복음 6장 [5]

  • Aug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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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5일 요 6장 지난 7월 마지막 주일(26일)부터 어제 8월 넷째 주일(23일)까지 전체 다섯 주일 중에서 네 주일의 설교 본문이 요한복음 6장이었다. 6:1-15, 6:24-35, 6:35과 41-51, 6:56-69이 그것이다. 이렇게 내가 연속적으로 한 성경을, 더구나 한 장을 설교 본문으로 선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보통은 교회력에 따라서 주어진 세 군데의 본문 중에서 한 군데를 택하기 때문에 중복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번에는 약간의 다른 변수도 있었지만 이왕 요한복음의 중심 사상을 언급했으니 가능한 좀더 길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이렇게 ...

<이다> [2]

  • Aug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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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4일 <이다> <이다>는 2차세계대전 중 갓난아이였을 때 한 수녀원에 맡겨져 자란 유대계 한 수녀에 관한 이야기다. 이 수녀의 이름이 ‘이다’다. 이 수녀원은 폴란드의 한 지역에 있는 갈멜 수녀원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서원한 사람은 부모가 세상을 뜨는 경우 외에는 평생 수녀원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다가 서원식을 하기 전에 원장 수녀는 단 하나 남은 혈육인 이모를 한번 만나보라고 조언한다. 서원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를 확인하려는 절차로 보인다. 이모는 무슨 이유에선지 조카를 한번도 만나러 오지 않았었다. 이다...

'취함'에 대해

  • Aug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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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9일 ‘취함’에 대해 엡 5:18절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을 비교해서 설명했다. 8월16일 설교 중에 간단히 언급하긴 했지만 여기서 좀더 풀어서 설명해야겠다. 사람은 어딘가에 취해야 할 이유는 영혼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공허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대개는 알고 있을 것이다. 영혼의 공허는 인간의 피치 못한 숙명이다. 그런 영혼의 공허로 인해서 인간은 종교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명시적인 종교인이 아니라도 그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다. 많은 수의 현대인들은 아마 자본주의라는 ...

성경과 일상 [2]

  • Aug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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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1일 성경과 일상 지난 설교 앞부분에서 성경과 일상의 관계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했다. 성경에는 주로 교리와 교회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읽는다는 것이다. 성경이 삶의 실용 지침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경을 통해서 단순히 심리적 안정을 구한다거나 인간관계를 향상시켜보겠다는 생각은 오해다. 성경은 사람의 일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

<코쿠리코 언덕에서> file [5]

  • Aug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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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0일 <코쿠리코 언덕에서> 청춘 순정만화다. 16살 고2 여학생 유미와 17살 고3 남학생 슌은 같은 학교에 다닌다. 우연한 일로 서로 엮여 마음이 끌리는 사이가 되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에도 주인공은 여자다. 유미는 의학공부로 미국에 간 어머니를 대신해서 코쿠리코 언덕에 있는 하숙집을 운영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화물선을 몰다가 폭발사고로 죽었다. 딸이 하숙집을 운영하도록 내버려둔 채 어머니가 왜 혼자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해야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는 이미 결혼 전에 의학공부를 하고 있었고, 집...

조장 file [7]

  • Aug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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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실행 중인지는 몰라도 티베트 불교 승려들에게는 조장(鳥葬)이 일반적이었다. 죽은 승래의 몸을 칼로 토막내어 새(주로 독수리)의 먹이로 주는 것이다. 그런 조장과는 다른 뜻으로 나는 오늘 새를 땅에 묻었다. 어제 이른 아침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에 큰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가 쾅 하고 났다. 직감적으로 새가 부딪치는 거는 알았지만 잠시 비틀거리다가 다시 날아갈 거로 생각하고 글쓰던 작업을 계속했다. 얼마 후에 창문 밖을 내다보니 새가 죽어 있었다. 오늘 이층 발코니를 통해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

<벼랑 위의 포뇨> file [2]

  • Aug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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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 <벼랑 위의 포뇨> 여섯 살짜리 소녀와 소년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인류의 시작과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 소스케가 우연하게 바닷가에서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포뇨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물고기는 바다 속에서 살다가 육지 생활을 동경하여 도망친 것이다. 바다 속 아버지가 포뇨를 다시 끌고 가지만 우여곡절 끝에 포뇨는 다시 도망쳐서 소스케에게 온다. 이제 여섯 살 소녀의 모습이다. 그러나 다시 원래의 상태가 되어 끌려간다. 포뇨의 어머니로서 우주를 주관하는 여신이 딸의 마음을 헤아려 인간이 되게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2]

  • Aug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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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지금까지 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복잡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이 작품도 역시 나우시카라는 이름의 소녀가 주인공이다. 나우시카는 ‘바람계곡’에 사는 주민들의 공주다. 아버지 왕은 살해당한다. 군림하는 공주가 아니라 주민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공주다. 주민들이 자기 나라를 점령한 군대의 사령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여자도 공주로 불린다. ‘공주님이라고 모두 똑같은 게 아니군요. 제 손은 평생 일하느라 굳은살도 많고 못생겼어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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