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일기(58)- 이장님 [4]
이장님 작년부터 우리 동네 이장님이 가장 젊은 분으로 바뀌었다. 바로 직전의 이장님은 70대 초반인 분이었다. 우리가 짐을 다 싸서 완전히 이사 오기 3,4년 쯤 전, 주말에만 와서 설교 준비를 하기 위해 15평 조립식 건물을 지었을 때다. 아내와 함께 마을 회관에 가서 이장님께 여차여차 해서 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집을 짓기 전에 인사를 해야지 이제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여러 주민들이 들이닥쳤다. 그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원당일기(57)- 말라버린 배추
말라버린 배추 작년 늦가을에 집사람이 청소년 시절 다니던 교회 친구 집을 오랜만에 방문했다가 배추 몇 포기를 얻어왔다. 배추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온전한 걸로 먹지 못할 정도로 상했다. 그런 부분을 벗겨내고 속에 남아 있는 것만 추려내서 쌈으로 먹기도 하고, 배추 국으로 먹기도 했다. 벗겨낸 것을 멀리 음식 쓰레기 모아놓은 곳으로 가져가지 않고 일부터 식탁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마당에 던져 놓았다. 그게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결과는 물론 뻔하다. 처음에는 상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기운은 남아 있었던 것...
원당일기(56)- 새끼 고양이 [2]
원당일기(32) 며칠 전 아침에 빵을 먹기 위해서 부엌방으로 내려왔다가 창문 너머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 중에서 새끼에 속한 녀석이, 정말 귀엽게 작은 녀석인데, 어디서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한 크기의 쥐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오는 장면이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그동안 우리 집 근처에서 쥐를 본 적이 없다. 뱀은 몇 번 봤다.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이 있듯이 고양이가 쥐의 천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끼 고양이가 이미 어른으로 자란 쥐를 한 입에 물고 나타나는 장면은 신기하다 못해 ...
원당일기(55)- 토지읽기(10) [5]
토지 읽기(10) 박의사의 자살 소식으로 큰 충격을 받은 서희는 일정을 잠시 바꿔서 딸처럼 키우고 있는 양현이의 친부 집을 향한다. 그쪽과도 미묘한 관계다. 그 집을 나와서 이제 평사리로 향하는 서희를 박경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림과 같은 장면이다. 나루터에서 윤씨는 진주를 향해 돌아갔고 옷가방을 든 안자와 서희는 나룻배에 올랐다. 높고 푸른 하늘과 같이 강물도 푸르고 잔잔했다. 건너편 강가에는 가을을 타는 숲이 있었고 어디로 가는지 철새들이 높이 떠서 날아가고 있었다. 애처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원당일기(54)- 토지읽기(9)
토지 읽기(9) <토지>의 주인공이라 할 서희 이야기는 앞부분에 많이 나오고, 중반으로 넘어가면서는 크게 줄어든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서희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건 분명하다. 박경리가 서희를 묘사할 때가 모델이 있었을지가 궁금하다. 아주 독특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어릴 때부터 악착같았던 서희는 한민족의 운명과 비슷한 운명을 살았다. 그에게 조준구는 일본 제국이 아니겠는가. 서희는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사람이다. 그가 우는 걸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에게도 다른 이...
원당일기(53)- 토지읽기(8)
토지 읽기(8) 몽치의 운명은 기구했다. 그는 지금 스무 살 전후의 나이인데, 어부로 산다. 자기 배가 아니라 고용되어 고기를 잡을 뿐이다. 장가갈 때가 되었지만 자기 배를 가질 때까지는 장가가지 않겠다는 각오다. 운명이 처절했다. 몇 살 많은 누이가 있다. 그들 남매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문전걸식을 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어머니는 없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딸만 주막집에 맡겨놓고, 몽치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몽치가 산에서 지내다가 아버지가 죽었다. 어린 몽치는 그 시체...
원당일기(52)- 토지읽기(7) [6]
토지 읽기(7) 조준구는 서희가 어렸을 때 죽은 아버지 최치수의 6촌 형이다. 인간 군상 중에서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인물로 묘사된다. 평사리 주민 하나를 찍어 최치수를 살해하도록 암시했다. 일이 그렇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희 할머니가 전염병으로 죽어 어린 조카 서희만 남게 되자, 노골적으로 재산을 강탈하기 시작했다. 그는 욕망만 컸지 사업 수단이 없었다. 만석 재산을 다 잃는다. 그것은 먼 훗날 다시 서희의 손에 들어갔다. 조준구에게는 장애인 아들인 병수가 있다. 아들이 있다는 자실 자체를 조준구와 그의 아내는 ...
원당일기(51)- 토지읽기(6)
토지 읽기(6)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이 수없이 많다. 한 사람의 작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가 신기하다. 여기에 바로 작가 역량이 달려 있다. 힘이 달리는 작가는 여러 인물들을 두루뭉술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다. 그 인물들이 어떤 순간에 경험하는 것들이 박경리 작가의 세계를 보는 눈이다. 그는 루돌프 오토가 ‘누미노제’(거룩한 두려움)라 규정한 어떤 삶의 심연을 여기에 묘사하고 있다. 조찬하는 친일귀족 조병모의 둘째 아들이다. 형 용하는 요즘 식으로 소위 재벌 2세쯤의 사고방식으로 살...
원당일기(50)- 토지 읽기(5) [2]
토지 읽기(5) 지금 <토지> 16권 째를 읽고 있는데, 눈물을 자아내는 대목이 몇 군데 있었다. 주인공 서희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다. 그중의 하나가 아래다. 서희는 하인이었던 길상과 결혼한다. 아들 둘을 낳아 귀하게 키웠다. 큰 아들은 환국, 둘째는 윤국이다. 용정에서 고향 평사리(실제 살기는 진주)로 돌아왔지만 남편 길상은 간도에 그대로 남아 독립 운동을 하다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 살이를 한다. 서희는 흔들리지 않고 혼자 두 아들을 키우면서 재산을 관리한다. 윤국이는 반항 기질이 있다. 서희는 술집 심부름을 하는 ...
원당일기(49)- 나는 말한다.
나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 말한다. 가족들과 일상에 대해서 말하고, 테니스 동호회원들과 테니스에 대해서 말하고, 신학생들에게 신학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 청중들에게 설교한다. 이게 모두 말이다. 나를 표현하기도 하고, 진리를 전하기도 하고, 큰 의미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하지는 못한다. 옹알이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말의 세계를 경험한다. 물리적으로는 호흡이 있고, 성대가 작용해야 말...
원당일기(48)- 나는 마신다. [3]
나는 마신다. 집사람은 밥 먹은 뒤에 꼭 물을 마시지만 나는 마시지 않는다. 집사람은 나보고 어떻게 밥 먹고 물을 마시지 않는지 이상하다고 말하고, 나는 배부르게 먹고 또 어떻게 물을 마시냐고 대답한다. 옛날 분들은 숭늉을 입가심으로 마셨다.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내가 밥 먹은 뒤에 물을 마시기 꺼리는 이유는 아마 소화에 부담이 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언젠가 건강상식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식사 때 물을 마시는 게 소화에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위에서 나오는 소화액을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
원당일기(47)- 나는 읽는다. [6]
나는 읽는다. <나는 읽는다>는 아무개 주간지 도서 담당 기자의 책 제목이다. 나는 책읽기에서 그분의 내공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대충 흉내는 내려고 노력한다. 한글을 깨우친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비교적 많은 걸 읽으면서 살아왔다. 나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에는 읽을거리가 별로 없었다. 많은 경우에 아이들은 밥 세끼 먹으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자랐다. 읽을거리는 기껏해야 교과서다. 그것도 어떤 경우에는 청계천 헌책방에 가서 구입해야만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교과서를 ...
원당일기(46)- 나는 숨을 쉰다.
나는 숨 쉰다. 계산하기 좋게 1분에 숨을 열 번 쉰다고 하자. 한 시간에 600번이다. 하루에 14,400번, 일 년에 대략 5백20만 번이다. 심장이 뛰는 숫자는 일곱 배 이상일 것이다. 심장 운동이야 내 의식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지만 숨은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된다. 단전호흡을 하는 분들은 이런 부분에서 일정한 경지를 구가한다. 나는 그런 숨의 도(道)와는 관계없이 그냥 편안하게 습관적으로 숨을 쉬며 산다. 다만 문득문득 숨 쉬는 행위 자체가 기특하게 여겨질 뿐이다. 사람이 숨을 쉬는 이유는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숨 운동...
원당일기(45)- 나는 본다. [2]
나는 본다. 주일 저녁부터 날씨가 꾸물대더니 밤에는 비가 제법 내렸다. 어제 원당은 하루 종일 흐렸다. 오늘은 또 화창했다. 지난 주간에는 아침마다 나는 우리 집 마당만이 아니라 원당 마음 전체에 내린 서리를 볼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짜릿한 경험인지는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서리는 원래 초겨울에 많이 생긴다. 낮의 따뜻한 공기가 밤에 물기로 변했다가 새벽에 어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서나 일어나는 건 아니다. 사막에서는 불가능하다. 북극이나 남극도 안 된다. 너무 추워도 안 되고, 너무 더워도 안 된다. 독일...
원당일기(44)- 나는 듣는다.
나는 듣는다. 나는 매일 뭔가를 듣는다. 이 세상에 소리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우리 집 창호는 이중 겹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나는 웬만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빗소리도 안 들린다. 방 위치에 따라서 약간 다르긴 하다. 조립으로 지은 부분은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잘 들린다. 그러나 나중에 철근골조로 증축한 부분은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동네 어느 집에서 나는 닭소리와 개소리는 들리기는 하지만 개미소리처럼 아주 작게 들려 수면에 방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 기차소리는 제...
원당일기(43)- 나는 만진다.
나는 만진다. 오늘 아침에 나는 식당 창문의 커튼을 달았다. 2년 전 이사 올 때 달았던 커튼이 얼마 전에 고리 채 몽땅 떨어졌었다. 이제 좀 튼튼하게 달려고 슈퍼에 가서 커튼용 봉을 사온 게 있어서 그걸 달았다. 그 작업이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 봉을 장착하려면 걸이를 먼저 나사로 고정시켜야 한다. 천정이 석고보드로 되어 있어서 자칫하면 나사가 헛돌아간다. 어쨌든지 오늘 나는 커튼을 깔끔하게 달았다.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거다. 이 작업을 하면서 여러 물건을 손으로 만졌다. 봉, 봉 걸이, 나사, 드라...
원당일기(42)- 나는 똥을 눈다.
나는 똥을 눈다. 사람은 똥을 눈다. 먹는 한 배설하지 않을 수 없다. 새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메뚜기도 그렇고, 지렁이도 그렇다. 먹고 배설하는 두 행위는 절대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사람들은 주로 먹는 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지만 배설하는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요즘에는 화장실도 식당 못지않게 꾸며놓긴 했다. 밥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청결한 화장실을 만들어주겠다는 선전문구도 본 것 같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똥은 더럽다는 생각은,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뭔가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지 못한다...
원당일기(41)- 나는 걷는다.
나는 걷는다. 사람은 걷는다. 사람만이 두 발로 걷는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다. 침팬지와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호모 에렉투스, 즉 직립인이 바로 오늘 인간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뛰어나서 인간으로 진화된 게 아니라 두 발로 서서 걷게 되어서 인간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서 손이 자유로워졌고, 무거운 뇌를 소유하게 되었고, 성대가 발달하게 되었다. 어머니 자궁에서 밖으로 나온 아이는 대략 일 년 정도 되면 걷기 시작한다. 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걷게 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
원당일기(40)- 빵 [6]
빵 나는 커피 마니아가 못된다. 맛의 깊이를 잘 모른다. 그걸 즐기려면 시간과 몇몇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부족하다. 게으름이 가장 이유다. 커피를 그냥 마셔도 좋지만 빵과 곁들여 마시는 게 좋다. 나에게는 그렇다. 우선 살짝 구운 빵 위에 치즈를 바르고 다시 슬라이스 형태로 된 햄을 올려놓고 먹는다. 아주 간단하다. 맛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먹을 만하다. 그러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랴. 그걸 먹고 오늘 하루도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다른 먹을거리도 마...
원당일기(39)- 커피 [6]
커피 오늘 아침에도 나는 혼자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삶은 달걀도 하나 먹었다. 방학 중에는 아내와 딸들이 다들 아침이 늦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식사를 함께 할 때가 많았는데, 커서 각자 일이 많아지니 따로 먹을 때가 대부분이다. 밥은 함께 먹어야 맛있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혼자 먹는 게 오히려 맛있다. 심리적으로 병적인 증상처럼 보이긴 하는데, 어쩔 수 없다. 요즘은 커피를 손으로 뺀다. 우선 커피 가는 기계에 네 스푼 정도의 알 커피를 넣고 손으로 돌려 간다. 커피 가루를 커피 거름종이에 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