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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공부(124)- 역사철학 공부 [4]

  • Aug 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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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 공부 흔히 말하기를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라고 하고, 하나님을 역사적 하나님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이게 불교와의 차이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불교에는 역사 개념이 약하다. 예를 들어 윤회 사상만 해도 그렇다. 삼라만상이 돌고 돈다고 보기 때문에 거기에 역사 개념이 들어설 여지는 별로 없다. 불교가 대세인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독교는 구약부터 시작해서 신약에 이르는 구체적인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자리로 보기 때문에 그 역사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

목사공부(123)- 고미숙과 강신주 [4]

  • Aug 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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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과 강신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기독교를 비판하는 한국 철학자들에 대해서 한번 짚어야겠다. 목사들이 철학을 잘 모르면서 무조건 배척하듯이 철학자들 중에서도 신학을 잘 모르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수유너머’라는 철학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고미숙이라는 여성 철학자가 어느 공개 강연에서 자신은 기독교의 초월적 인격신을 부정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 사람의 철학자 강신주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자신이 기독교의 논리를 제압할 수 있는 책을 쓰겠다고 공언했는데, 두고 볼 일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

목사공부(122)- 창조와 세상 [2]

  • Aug 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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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세상 성서의 첫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이다. 사도신경의 첫 문장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이다. 성서와 기독교 문서의 중심에 창조 신앙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이런 창조 신앙을 근거로 진화론과 대립하는 것은 성서와 기독교 신앙을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창조 신앙은 인간을 포함한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엄중한 사태를 가리키는 것이지 어떻게 창조되었느냐 하는 것을 논증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의 문제는 자연과학의 업무다. 그 자연...

목사공부(121)- 존재와 무 [2]

  • Aug 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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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무 도대체 존재는 무엇일까? 존재 개념을 알면 종교와 철학과 신학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 주제에 매달렸는데, 그중에서 하이데거(M. Heidegger)가 대표적이다. <Sein und Zeit>(존재와 시간)를 써서 그는 젊은 나이에 세계 철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유럽 철학은 존재(Sein)가 아니라 존재자(Seiende)에만 천착했다. 여기서 존재자는 말 그대로 이 세상에 드러난 것들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더 근원적인 세계를 봐야 하는데, 그게 곧 존재다....

목사공부(120)- 시간과 영원 [2]

  • Aug 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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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영원 우리는 하나님이 사물들처럼 일시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옳은 말이다. 성경도 그렇게 말한다. 그게 피조물과 창조주의 본질적인 차이다. 문제는 우리가 영원하다고 말하는 그것 자체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보통 우리는 영원을 끝없는 것, 즉 무한(endlessness, limitlessness, infinite)이라고 말한다. 끝이 없다고 할 때, 여기서 끝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을 전제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영원을 유한이라는 상대개념으로만 말할 뿐이지 더 이상은 알 수 없다. 약간 다...

목사공부(119)- 하나님과 존재

  • Aug 2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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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존재 신학공부에서 철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제 몇 가지 구체적인 항목으로 보충하겠다. 먼저 하나님의 존재론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무신론) 존재한다는 사실(유신론)이 대전제다. 하나님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가르침은 모래 위의 집이다. 성경도 유신론을 전제한다. 그렇게 듣고 배운 탓인지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에 적대적이다.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도 그들이 무신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하나님 문제를 유무신론으로 끌고 가...

목사공부(118)- 현실적인 것에 대해

  • Aug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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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것에 대해 판넨베르크의 책에서 한 군데만 더 인용하겠다.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창조적 근원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현실적인 것들, 즉 인간과 코스모스의 유래와 연관해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유는 여전히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나님과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전체가 공속적이며 서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공허한 낱말이 되거나 아니면 사실적 바탕이 없는 빈 표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목사공부(117)- 신학과 철학 [8]

  • Aug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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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철학 판넨베르크는 뮌헨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에서 1993/94년 겨울학기를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십 수 년에 걸쳐 ‘Theologie und Philosophie’라는 과목을 개설했고, 그 강의를 1996년도에 출판했다. 2001년도에 나는 그의 책을 한들출판사를 통해서 번역 출판했다. <신학과 철학>은 신학생들과 신학과 관심이 있는 목사들에게 필독서다. 서론 부분의 몇 대목을 발췌하여 소개하겠다. 이를 통해서 신학과 철학의 역사적 관계가 얼마나 철저한지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한 역사 형태를 갖춘 기독...

목사공부(116)- 철학공부 [2]

  • Aug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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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공부 목사에게 공부는 물론 신학이다. 그런데 신학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기초는 철학이다. 철학은 신학만이 아니라 모른 학문의 기초다. 상당히 많은 신학생들과 목사들이 신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신학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먼저 전공한 다음에 신학을 공부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철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철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도 아니다. 동서양 철학자들의 연대기를 뚫어보고, 그들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설명...

목사공부(115)- 기술이냐, 도냐

  • Aug 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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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냐, 도냐 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해야 할 목사의 공부는 총체적이다. 목사 공부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공부는 총체적이다. 여기 벽돌 쌓는 훈련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걸 기술적으로만 생각하면 간단하다. 수직과 수평을 맞출 줄 알고, 벽돌과 벽돌 사이를 시멘트로 연결하는 기술을 익히면 된다. 기껏해야 한두 달이나 반년이며 충분히 배울 것이다. 그러나 그걸 단지 기술로만 다루지 않고 예술의 차원으로 여기는 사람은 생각할 게 많아서 그 일을 손에 놓을 때까지 계속 배우려고 한다. 수직과 수평을 더 완벽하게 맞추...

목사공부(114)- 시의 계시 성격 [1]

  • Aug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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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계시 성격 시인들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맞는다. 물론 실제로는 손으로 쓰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시작(詩作)의 기술도 포함된다. 그런 시는 영혼을 울리지는 못한다. 영혼을 울리는 시는 영혼에서 나와야 하는데, 영혼의 일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이데거는 <시와 철학 -횔덜린과 릴케의 시세계->에서 시의 존재론적 차원인 언어 사건에 대해서 말한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언어가 말하는’ 사건에 인간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의 언어는 언어가 말하는 것에 대한 응대에 해당된...

목사공부(113)- 상상력

  • Aug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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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시인의 상상력이 시 경험에서 핵심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현의 설명을 인용하겠다. 처음에 상상력은 채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재 속에 숨어 있는 불씨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 생각의 크기와 밝기도 미약하기 그지없다. “상상력은 대상과 밀착되고 있는 상태를 말해준다. 분석적 관찰의 결과가 아닌 종합적 직관의 결과”라는 이형기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시적 상상력은 직관 중에서도 감각적 직관의 도움을 받는다. 이문재는 감각을 일컬어 “몸과 마음의 경계”이면서 “자아와 타자 사이...

목사공부(112)- '시적인 것'의 탐색

  • Aug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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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것’의 탐색 설교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 시 관련 도서 중의 하나는 안도현의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한겨레출판)다. 2008년 5월-11월에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26편의 글이 실렸다. 머리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에 미혹되어 살아온 지 30년이다. 여전히 시는 알 수 없는 물음표이고, 도저히 알지 못할 허공의 깊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무엇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으므로 다만 ‘시적인 것’을 탐색하는 것으로 소임의 일부를 다하고자 한다. ‘시적인 것’의 탐색이야말로 시로 들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접근 방식이라 ...

목사공부(111)- 목사의 고독한 영혼 [4]

  • Aug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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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고독한 영혼 목사는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고독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목사만이 아니라 기독교인 모두가 그렇다. 죽음을 혼자 맞이해야 하듯이 하나님도 혼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공동체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경험은 개별적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한다고 해서 옆 사람도 저절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

목사공부(110)- 고독한 혼 [7]

  • Aug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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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혼 조병화는 ‘고독이라는 이름의 시인- 선생님께’라는 김대규의 편지를 받았다. 젊은 나이에 객혈까지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빴던 김대규는 “나의 이름 석 자가 내 시의 주석이 되기에 24세는 아직도 뜨거운 것인가!”라는 문장으로 편지를 맺었다. 그 편지에 큰 감동을 받은 조병화는 1964년 3월2일자 회신에서 자신의 시집 <밤의 이야기>에 나오는 연시 몇 단락을 비교적 길게 인용했다.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죽음으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지하 5미이터, 그 자리로 직행을 하고 있는 거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그 노자만큼...

목사공부(109)- 설교의 여운

  • Aug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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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여운 위에서 열거된 항목들의 중심에는 여운이 있다. 시에는 늘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목사의 설교 행위에 그대로 적용된다. 여운은 어떤 일이나 사람이 떠난 뒤에 남아 있는 느낌을 가리킨다. 그림이나 영화에도 잔상(殘像)이 있고, 연주회에도 여음(餘音)이 있다. 여운, 잔상, 여음이야말로 리얼리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에서 여운이 있는 설교를 만나기가 어렵다. 독단적인 설교가 일반적이다. 더 나가서 폭력적인 경우도 많다. 그건 설교자의 잘못 이전에 기독교의 가르침 자체가 보기에 따라서 독단적(dogmatic...

목사공부(108)- 시의 여운 [2]

  • Aug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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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여운 대규의 시는 항상 비유가 좋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비유가 성공을 하려면 언젠가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여운(餘韻)이 있어야 합니다. 감동의 진동(震動)이지요. 지성의 광휘(光輝)이지요. 인식의 희열이지요. 에즈라 파운드가 얘기했듯이 단순한 산술(算術)이 아니라 영감(靈感)을 가진 산술이지요. 그 묘미(妙味), 그 비밀, 그 매력을 시인은 모름지기 발견해 내고 체득(體得)해 내지요(143쪽). 시, 혹은 시인에 대한 조병화의 저 생각은 목사, 곧 설교자의 그것이라 해도 틀릴 게 없다. 저기 열거된 단어를 보라. 여운, 진동...

목사공부(107)- 시의 본질 추구

  • Aug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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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본질 추구 한국교회는 구조적으로 영혼의 풍요를 추구하지 못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책 상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목사는 그 절박한 상황을 온 몸으로 감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의 영혼이 살아나려면 각자도생 식으로 구도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 목사들이 많아지면 구조까지 시나브로 변하지 않겠는가.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목사의 영혼은 풍요로울 수 있으니 마땅히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런 길의 모색이 <목사공부>이며, 이 대목에서 설명하고 있는 시인...

목사공부(106)- 영혼의 거품

  • Aug 0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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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거품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아주 다이내믹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 요즘 통계는 어떤지 모르나 수년 전에 교인이 칠십만 명이었다. 교파별로 가장 큰 교회가 모두 한국에 모여 있다. 세계 10대 교회 중에 다섯 개 이상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한국교회 신자들은 유달리 헌금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극성스러울 정도로 예배에 집착한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보통이고, 매일 새벽기도회에 출석하는 이...

목사공부(105)- 영혼의 빈곤 [4]

  • Aug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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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빈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오해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영혼의 풍요로움이 우리의 삶을 실제로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근거가 있을까? 풍요롭다는 것은 실제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더 이상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유가 차고 넘친다하더라도 끊임없이 뭔가를 더 채우려고 한다면 그는 풍요로운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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