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기적
아래 글은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에 나옵니다. 오래 전 다른 세 분 신학자들과 함께 제가 공역한 책입니다. 금년 성탄 전후에 다비안들과 함께 읽어보려고 여기에 싣습니다. 성탄절의 기적 12월24일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눅 2:11). <너희에게> 오늘 구주가 나셨다고 주님의 천사가 말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높이려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자신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
대림절 단상(3) [2]
12월23일(월) 대림절 단상(3) 앞의 대림절 단상(2) 끝에서 재림의 방식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것은 재림의 시기를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도 모른다. 시기와 방법은 우리의 인식 능력 밖이다. 이것은 마치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대림절 신앙의 핵심은 그분이 온다는 사실 자체다. 예수님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고 성령으로서 이 세상을 완성하실 그분이 온다는 것은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선포하셨으며 삶 전체를 맡긴 ‘하나님 나라’와 연관된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
이사야와 아하스 [2]
12월21일(토) 이사야와 아하스 이사야는 고대 8세기 유다의 선지자이고, 아하스는 이사야 당시의 유다 왕이다. 이사야는 종교인이고 아하스는 정치인이다. 이사야는 신탁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아하스는 정치권력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대 이스라엘(유다)는 정교일치의 사회였기에 이 두 사람은 서로 협조해야 할 관계다. 정교일치라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일치되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지자는 왕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모든 선지자가 늘 비판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선지자는 권력...
대선 일 주년 [11]
12월19일 5년마다 12월19일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이다. 작년에 우리는 박근혜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가 대통령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반장 선거를 하듯이, 반장이 되었어도 학년이 달라지면 더 이상 반장이 아니듯이 대통령도 임시로 그 역할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모든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그걸 말한다.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
대림절 단상(2) [2]
12월18일(수) 대림절 단상(2) 앞에서 재림을 모르면 느낌도 없다면서, 마치 내가 뭔가 특별한 것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했다. 내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시각장애인이 코끼리의 한 부분을 만진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렇게 만진 사람들의 말들을 종합해서 코끼리의 형상을 약간은 그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게 완벽한 그림을 아니겠지만 말이다. 우선 이렇게 질문하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얼 가리킬까?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이 있다. 승천 당시에도 구름을 탔다고 한다. 설마 ...
대림절 단상(1)
12월17일(화) 대림절 단상(1) 요즘 우리는 대림절을 지나고 있다. 이런 절기가 신자들에게 별로 감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서로 골고루 나눠 먹고 사는 세상을 향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것을 등한히 여기고 하늘만 바라보라고 한다면 ‘종교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 이전, 또는 그 이후를 말해야 한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
실족 [2]
12월16일(월) 실족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냐 하는 세례 요한의 질문을 받고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와 비슷한 내용을 전한 뒤에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런 말씀은 듣기에 따라서 쉽기도 하고, 또 어렵기도 하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를 실족하는 자라고 보면 쉽지만, 실족하는 이유가 뭔지를 따지고 물으면 어렵다. 쉬운 건 그만 두고 어려운 이유만 보자. 예수님으로 인해서 실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실망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에게 호감을 갖고 찾아왔다가 ...
세례요한과 예수 [2]
12월14일(토) 세례요한과 예수 내일 대림절 셋째 주일 설교의 성경 본문은 마태복음 11:2-11절이다. 거기에 세례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례요한은 기독교에서 그 위치가 미묘하다. 복음서 기자들은 다 요한을 언급하는데 반해서 서신에는 그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사도행전에는 요한의 제자들이 잠시 언급될 뿐이다. 세례요한을 가장 자세하게 언급하는 복음서는 누가복음이다. 공관복음서 중에서도 아주 유별나다. 거기에는 요한의 출생 비밀도 나온다. 예수의 출생 비밀에 버금갈 정도로 자세하게 나온다. 더구나 요한의 어머니 엘리...
헌금(12)
헌금(12) 헌금을 주제로 하는 글이 너무 길었다. 오늘로 마무리하자. 재정의 사용처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도 각각의 교회가 처한 형편에 따라서 다르니 하나의 기준만을 절대화할 수 없다. 교회재정의 지출은 크게 세 가지다. 1) 교역자 사례비 2) 교회 운영 경비 3) 교회 밖 지출 세 가지가 아니라 크게 둘로 나누면 교회 안과 교회 밖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액수의 비중으로 보면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게 합리적이다. 내가 볼 때 세 항목의 비율은 다음이 원만하다. 사례비- 30% 교회 운영 경비- 30% 교회 밖 지출- 40% 이렇게 재정을 운...
헌금(11)
헌금(11) 도대체 월정헌금을 얼마나 하면 되나,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십일조 헌금을 할 때는 헌금 이름이 액수를 규정하고 있어서 대략 그런 기준에 따르기만 하면 되지만 월정헌금은 아무런 기준이 없으니 결국 때마다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니 모호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크게 요구되기에 헌금이 수행의 한 과정이라 해도 잘못이 아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하지 않겠는가. 내가 알고 있기로는 월정헌금을 교회의 주 수입원으로 하는 교회가 ...
헌금(10)
헌금(10) 대구(서울) 샘터교회는 헌금 종목이 아예 없으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무기명이다. 영적 노숙자의 공동체라는 정신에 따라서 헌금 부분에서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샘터 교우들은 형편에 맞도록 성실하게 헌금을 한다. 개중에는 기존의 십일조 못지않게 헌금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헌금관리에 전혀 개입하지 않기에 누가 어떻게 헌금하는지를 전혀 모른다. 헌금과 전혀 상관없이 목사 생활을 하니 편하기는 한데, 어떻게 보면 무책임할 수도 있다. 어쨌든지 목사가 헌금관리에 개입하지 않는 원칙...
헌금(9)
헌금(9) 헌금과 연관된 여러 가지 교회 구조 문제는 접어두고 개인의 헌금 행위에 대해서만 간단히 짚자. 앞에서 두 가지 원칙을 말했다. 1) 헌금의 왜곡을 넘어서야 한다. 2) 그러나 헌금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위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헌금 행위는 무엇일까? 여기서 제시되는 대답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 개인의 생각에 불과하니까 모두가 따라야 할 정답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이것을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에 이식할 필요도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에서는 시도해볼만하다. 월정헌금 제도가 최선으로...
헌금(8)
헌금(8) 앞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처럼 개교회주의가 유달리 강한 교회에서는 목사 사례비의 제도적 일원화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가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대형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나 시골의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가 큰 차이 없는 사례비를 받는다면 굳이 큰 교회로 가려고 애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이유로 도시교회를 선호하겠지만,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도시 학교를 선호하듯이, 지금처럼 과열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
헌금(7)
헌금(7) 앞에서 설교 조로 말한 내용을 어느 정도 신앙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분들에게는 잔소리처럼 들렸을 테니 용서를 바란다. 헌금의 당위를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구체적으로 헌금을 어떻게 드리는 게 좋은지를 논의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도 하고, 또 답이 없기도 하다. 나라마다 다 다르고 교파마다 다 다르고, 또 개인마다 처한 형편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참고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독일 교회의 헌금 제도는 이렇다. 그들의 주민등록 신청서에는 종교 항목이 ...
헌금(6)
헌금(6)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데 길들여졌다. 이런 게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나 그 강도가 점점 심해지는 건 분명하다. 물건을 사는 경우에도 한 푼이라도 아낀다.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 따지고 보면 연봉의 차이에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못지않게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 이런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는 돈으로 대학교를 주무른다. 대학교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더 타내려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추고 있다. 비위를 맞추는 것만...
헌금(5)
헌금(5) 앞에서 헌금의 왜곡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헌금에 참여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헌금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도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헌금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어쩔 수 없는 이들이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야 여기서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돈이 없는 사람은 헌금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헌금 냉소주의자라 할 수 있는 첫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영혼이 건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헌금(4)
헌금(4) 앞에서 글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가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지만 하나님이 직접 받을 수는 없다. 대신 사람이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다.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나 똑같다. 전업으로 성전이나 교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생활비, 성전이나 교회당 건립과 보수 유지비, 선교 활동이나 구제 등등, 두루두루 하나님의 일로 판단되는 일에 사용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바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판단한 것을 위해서 바친다.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냐에 대한 판단은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해외 선교사...
헌금(3) [4]
헌금(3) 우리는 헌금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표현한다. 샘터교회에서도 헌금을 드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 드렸다.’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런 문제를 구약의 전통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따지기 시작하면 복잡하니, 여기서는 쉽게 생각하자. 하나님은 물질적인 분이 아니라 초월적인 분이기에 우리가 돈으로 드리는 헌금이 그분과는 상관없다. 이는 마치 강이나 산을 향해서 돈을 받으라는 말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니, 즉 창조부터 종말까...
헌금(2) [4]
헌금(2) 헌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꼭 헌금을 해야 하나? 헌금 없는 교회는 가능한가? 구약의 제물과 신약의 헌금은 같은 전통인가? 헌금과 연보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왜 한국교회에만 십일조 헌금이 있나? 가톨릭교회는 왜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나? 헌금을 얼마나 내야 하나? 기명헌금이 옳은가, 무기명헌금이 옳은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돕는 것도 헌금에 속하나? 목사들도 스스로 노동해서(자비량 선교) 먹고 살면 안 되나?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는 게 최선인가? 등등... 여기서 모든 문제를 균형 있게 다 다루...
헌금(1) [2]
헌금(1)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니 그동안 바친 헌금 액수만 해도 꽤나 될게다. 어느 정도 기독교인 티를 내는 이들은 다 그렇다. 학생 때에야 돈이 없으니 헌금을 했다고 해도 액수로만 보면 별 게 아니다. 수입이 생기면서는 정기적으로 헌금했다. 헌금을 드려야 할 기회가 오죽 많은가? 매주, 매달만이 아니라 어떤 때는 거액을 드려야할 때도 있었다. 한국교회에서 헌금은 신앙생활 자체라고 봐야 할 정도로 모든 것에 붙어 다닌다. 재미있는 현상은 한국교회가 교회력을 무시하면서도 네 번의 절기는 반드시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