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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경험은 생명 경험이다 [4]

  • Oct 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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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4일(월) 어제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를 절대적 생명으로 경험하나, 하고 물었다. 이것은 설교자로서 청중들을 향한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기독교인 치고 예수가 절대 생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교회에 다닌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왜 예수가 절대 생명이냐, 하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곤란한 질문이라도 그 대답을 찾는 훈련을 하는 게 좋다. 그런 훈련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깊어질 것이다. 이 질문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일...

절대 순종 [5]

  • Oct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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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일) 오늘 설교는 사마리아 사람의 믿음이 주제였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병을 치료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예수님께 와서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이르기를 당신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소, 하셨다.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다는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굳이 엎드릴 것까지 있냐,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되지, 나병이 나았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 ... 등등, 이런저런 생각이 가능하다. 이런 생각들은 본문의 중심과는 별로...

믿음과 구원

  • Oct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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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2일(토) 내일 설교 본문은 눅 17:11-19절이다. 치료받은 나병(한센병)환자 열 명 중에 한 사람만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의 예를 갖추었다. 예수님은 몇 가지 말씀을 하신 뒤에 결론적으로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런 말씀이 간단해보여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은 무엇일까? 나병이 치료받았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인데 굳이 구원을 또 말할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닌가. 여기서는 구원이 다른 뜻이라는 게 분명하다. 믿음만 해도 그...

소명에 대해 [2]

  • Oct 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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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1일(금) 지난 주일 설교는 ‘소명’이 주제였다. 너무 흔하게 들었던 단어이기에 별로 실감 있게 전달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소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목사로의 소명, 선교사로의 소명 등등,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우선 다음의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소명 운운해도 우리의 생각과 행위는 늘 옳은 게 아니다. 올바른 일을 하기에는 우리에게 부족한 게 너무 많다. 우선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분간하지...

본다고 하는 것? [2]

  • Oct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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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0일(목) 아래 이야기도 어제 수요성경공부 시간에 나온 거다. 10장의 내용은 유대인들과의 논쟁이라는 점에서 9장과 연속된다고 할 수 있다. 요 9:41절에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과 예수님을 한 데 묶어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세의 권위에 기대서 그렇게 말했다. 모세의 권위는 율법에 있었다. 율법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영적...

불확정성 [7]

  • Oct 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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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수) 오늘 수요성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초적인 미시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잠간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질의 최소 단위는 원소다. 원소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전자다. 전자는 한편으로 파동으로 존재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입자로 인식된다고 한다. 그 어떤 경우는 사람이 볼 때를 가리킨다. 사람이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 전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기본 논리인 객관적 측정이 불가능하다. 전자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

턱관절 [4]

  • Oct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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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 지난 주말에 있었던 치과 방문은 정말 오랜 만이었다. 5년 쯤 전에 사랑니를 빼려고 동네 치과에 간 적이 있다. 그전으로는 10년 쯤 전, 또 그 전으로는 20년 쯤 전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군목으로 처음 입대한 때인 1983년 여름, 치과 군의관이 우리 부대를 방문했을 때 약간의 충치를 먹은 어금니 두 세 군데를 아말감으로 때운 적이 있다. 내가 치과를 자주 가지 않은 이유는 비교적 이 상태가 잘 유지된 탓도 있으나, 치석 제거를 위해서라도 정기적으로 가야하는데도 가지 않은 이유는 사실 턱관절 문제 때문이다. 이번에...

내 해골

  • Oct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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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7일(월) 내 해골 며칠 전 나는 내 해골을 봤다. 정확히는 두개골 상반부가 아니라 하반부를 본 것이다. 아래턱, 아래 이, 위턱, 위 이, 그리고 코언저리, 그걸 구성하고 있는 뼈다귀를 보았다. 독자들은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대충 눈치를 챘을 것이다. 지난 주말 치과에 갔었다. 어디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일반 진료를 받기 위한 거였다. 의사 선생님이 ‘우선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시죠.’ 하는 거다. 나는 속으로 사진은 무슨 사진, 그냥 눈으로 봐도 충분할 텐데, 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어...

삶(16) [3]

  • Oct 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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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16) 앞서의 묵상 마지막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를 통해서 종말론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생명을 충만하게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자칫 뜬구름 잡는 것으로 들린다. 생명은 실질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희망은 막연하게 들리니 말이다. 이 문제를 확 눈에 드러날 정도로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도 없다. 다만 거기에 조금씩 가까이 가는 것뿐이다. 희망은 막연하게 기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독교적인 희망은 궁극적으로 미래의 사건이지만 이미 이 자리에 일어난 어떤 ...

삶(15)

  • Oct 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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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4일(금) 삶(15) ‘예수 우리의 생명’이라는 문장의 두 번째 의미는 살아있을 때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누린다는 뜻이다.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표현으로는 생명에 참여한다거나 생명이 풍요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거나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죽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실수도 하고 상처 받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외로움도 느끼고 절망하기도 한다. 삶에 우여곡절이 많다. 기독교인이라 해서 늘 삶을 윤택하게 사는 ...

삶(14) [2]

  • Oct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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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일(목) 삶(14) ‘예수 우리의 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무슨 뜻인가? 원칙적으로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1) 예수 믿으면 죽어 천당에 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2) 지금 살아 있을 때 생명을 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은 천당, 혹은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만 보자. 이것보다 먼저 왜 예수를 믿어야 그게 가능한지도 대답해야 하는데, 이미 앞에서 비슷한 대답을 했으니까 여기서는 그만두고 천당, 천국, 하나님 나라에 얽힌 이야기만 하자. 죽음 이후의 어떤 생명에 대해서 말하기는 하지만 그게 무...

모세의 율법 [2]

  • Oct 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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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화) 모세의 율법 오늘 수요성경공부는 요 9장이었다. 그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선천성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서 보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단죄하려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전통에 서 있기 때문에 세상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적 권위를 인정해줄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인물이라고 보았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고 세상에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은 자신도 맹인인가 하고...

삶(13) [5]

  • Oct 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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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화) 삶(13) 우리는 보통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까? 가장 기초적인 대답을 한다면 가치가 있는 삶을 가리킨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려면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를 것이다. 부자, 사회적 지위, 명예, 학문적 업적, 정치적 야망... 또는 봉사, 구제, 인간애... 이런 일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 그런 걸 성취함으로써 삶을 의미 있게 사는 것으로 여긴다. 그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해결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

지옥 불구덩이

  • Sep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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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0일(월) 지옥 불구덩이 어제 설교 본문은 눅 16:19-31로 소위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다. 설교하는 순간에는 한 주제에만 집중하기에 본문과 연관된 다른 것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게 설교자의 고민이다. 본문을 어느 정도의 깊이와 넓이로 끌고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 욕심을 내서 너무 길게 끌고 가면 설교가 처지고 모든 걸 생략하다보다 비약되기 쉽다. 어제 설교 본문에서 생략한 부분을 오늘 잠시 짚겠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음부의 불구덩이에 떨어졌다. 사실 아브라함의 품...

부자와 거지 나사로

  • Sep 28, 2013
  • Views 4633

9월28일(토)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눅 16:19-31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오해받기 쉽다. 이걸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착각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비유다. 비유는 비유로 이해해야지 사실로 보면 안 된다. 비유는 한 가지 가르침만 지시한다. 여기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찾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죽음 이후의 운명에 대한 가르침을 찾으려고 한다. 죽으면 곧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고 말이다. 이 비유는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삶(12)

  • Sep 27, 2013
  • Views 2497

9월27일(금) 삶(12)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주인이라는 사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지금 우리의 삶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뚫어보아야 한다. 그게 없으면 저런 주제에 얽힌 기독교 교리는 관념에 떨어진다. 삶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렇게 깊은 사색이 없어도 웬만한 통찰력만 있으면 알게 되어 있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또 다시 배가 고프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여전히 외롭고, 아무리 건강식품을 챙기고 운동을 열심히 해도 병이 걸릴 사람은 병에 걸리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우리의 유한하고 잠정적인 ...

삶(11) [2]

  • Sep 26, 2013
  • Views 2518

9월26일(목) 삶(11) 어제 수요 성경공부에서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인 생명에 대해서 내가 거기 모인 분들에게 질문했다. 예수가 우리의 생명이라는 사실이 말로가 아니라 실제로 이해가 되고 느껴지시는가? 간증 류의 대답은 다 알고 있다. 예수를 알고 기쁨이 넘치게 되었다거나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거나, 또는 죽음 이후의 생명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게 틀린 대답은 아니나 그런 대답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다. 단지 교리를 외우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교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답이 필요하다. 그것...

삶(10) [2]

  • Sep 25, 2013
  • Views 2565

9월25일(수) 삶(10) 숲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잘 알려면 가까이 가서 나무를 살펴야한다는 말이 있다. 멀리서 보면 나무를 구분할 수 없지만 가까이 가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멀리 숲도 보고 가까이 나무도 보라고 한다. 삶을 이해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형이상학적으로 보는 게 숲을 보는 거라 한다면 일상적인 현실을 보는 게 나무를 보는 거다. 양쪽의 관점이 조화를 이뤄야 인간 삶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너무 일상적인 현실에 치우치면 현실주의자가 되고 너무 형이상학적인 관점에 치우치면 이상주의...

채동욱 [2]

  • Sep 2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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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4일(화) 채동욱 채동욱은 지금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검찰총장이다. 벌써 일주일 여 전에 사표를 냈으나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식물 총장인 셈이다. 좀 웃기는 시츄에이션이다. 이런 이야기는 신앙문제를 주로 다루는 매일묵상으로보다는 세상읽기나 다른 메뉴로 올리는 게 좋은데,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려니 여기에 올릴 수밖에 없다. 다비안들의 이해를 바란다. 장관이나 검찰총장 등이 사표를 내면 일반적으로 즉각 반려하든지 수리하든지 한다. 대개는 그 사람의 책임을 묻는 게 사표수리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

밥과 말씀 [6]

  • Sep 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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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3일(월) 밥과 말씀 “밥이 바로 그 사람이다.”는 말을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듣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저 밥은 쌀로 만든 그 밥만이 아니라 먹을거리 일체를 가리킨다.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채식의 사람이 되고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육식의 사람이 될 것이다. 절간의 음식은 주로 담백한 채식으로 만들어진다. 삶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음식을 먹는 게 아니겠는가. 군것질이나 편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그런 식의 청소년으로 자랄 것이다. 그가 먹는 것이 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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