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말리기 [3]
우리집에서 빨래 널기는 내 차지다. 별 거 아닌데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나는 빨래 널기를 여러번 강조했다. 아파트에서는 좁은 베란다에 있는 빨래 걸대에 너느라 이러저리 몸을 비틀면서 좀 힘들었다. 아마 빨래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이제 빨래 걸대가 데커 위에 있어서 아무런 방해 없이 빨래를 널 수 있다. 아마 빨래들도 기분이 좋으리라. 햇살을 직접 받을 뿐만 아니라 바람을 받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거기에 나비나 벌들도 옆에서 지나간다. 특히 이불빨래를 널기가 좋다. 데커 난간대가 안성맞춤이다. 이불 빨래를 ...
팔복(3) [5]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아주 광범위한 주제를 포함한다. 하나님이 누군지, 관계가 가능한지, 신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이 구구단을 외우거나, 또는 이등변삼각형의 공식을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 전체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질문이라고 해도 주변의 다른 주제와 연관해서 접근해야만 한다. 여기서는 황금률이 들어있는 본문에 한정해서만 설명하겠다. 마 7:1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
팔복(2) [2]
팔복의 본문은 마 5:1-12절이다. 정확하게는 3-10절이다. 각각의 절에 하나씩의 복이 나열되어 있다. 팔복은 그것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라 소위 산상수훈의 일부에 속한다. 산상수훈은 마 5-7장이다. 산상수훈은 복음 중의 복음이라는 타이틀로 불린다. 소위 황금률도 이 안에 들어 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팔복도 황금률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서로 다른 경우에 하신 말씀을 나름의 신학...
팔복(1)
금년 샘터교회 여름 수련회 주제를 “팔복, 깊이 읽기”로 잡았다. 팔복(八福)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기독교인은 없다.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팔복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오히려 문제다. 다 아는 것처럼 여길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팔복을 실제로 아는지, 알고 있다면 우리가 팔복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나도 이번 기회에 이 주제를 좀더 깊이 묵상하고, 해석해볼 생각이다. 나 스스로...
노무현과 인문학 [2]
오늘은 하루종일 기분이 꿀꿀했다. 국정원에 의해서 자행된 노무현 김정일 대화록 공개 사건 때문이다. 나라가 아주 천박해졌다는 느낌이다. 애국 애족 국민을 입에 달고 다니는 분들이 실제로는 무엇이 국익인지 전혀 판단을 못하는 것 같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건지 아니면 국정원장의 돌출행동인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으나 지금 청와대는 크게 당황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이 예상과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대화록이 공개되면 노무현(존칭 생략)에 대한 비난이 확인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걸 기대...
찔레꽃 [2]
요즘 우리집 주변은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아마 다른 곳에서는 한철이 지났겠지만 우리집은 기온이 좀 낮은 탓인지 모든 절기가 조금씩 늦게 갑니다. 찔레꽃은 일부러 심지 않았는데도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 마치 팝콘 터지는 것 같습니다. 그 전날밤만 해도 그냥 꽃몽오리로 있었는데 아침이 되자 활짝 피어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저 찔레꽃만 봐도 부자가 된 듯합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다비안들께 사진으로나마 선물합니다.
표적과 기사, 요한복음 묵상(42)
병든 아들을 고쳐달라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표적은 표징이나 기적으로, 그리고 기사는 놀라운 일로 번역될 수 있다. 두 단어가 비슷한 뜻이다. 고대인들은 어떤 신적인 경험을 이런 기적적인 사건에서 찾았다. 성서시대 사람들도 이런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성서에 등장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이것을 실제로 일어난 초자연적인 기적이냐, 아니냐 하는 ...
선지자의 고향, 요한복음 묵상(41) [2]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요 4:44)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실 것이라는 암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공관복음에도 나온다. 특히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언덕으로 밀어뜨려 죽이려고 했다(눅 4:16-30).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고향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을 더 정확하게 알아보아야 했던 게 아닐는지. 이런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거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계단 오르 내리기 [9]
원당리에 새로 진 집은 이층이다. 이층은 내 서재다. 거기서 책 읽고, 다비아 글 쓰고, 강의 준비도 하고, 기독교 잡지에 연재할 원고도 쓰고, 주보 초안 짜고, 설교 준비하고, 유튜브 음악도 듣는다. 내 모든 삶의 공간이다. 그리고 잠도 잔다. 하루에도 아래층으로 난 계단을 수없이 오르 내린다. 몇 번인지 카운트 해보지 않았지만 대략 스무번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래 사진은 오르는 계단이다. 전체가 열여덟 계단이다. 아직 서재가 다 정리되지 않아서 책들이 계단에 쌓여 있다. 언제 다 정리될는지... 올라갈 때는 편하지만 내려...
매실주 [3]
며칠 전 매실주를 담갔다. 진작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 뭐 하는 일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더 늦으면 곤란할 거 같아서 마트에 들린 김에 한보따리 매실을 샀다. 보통은 청매실로 담군다고 하지만 약간 익은 걸로 하는 게 향이 더 난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익은 매실로 담갔다. 익은 매실이 더 싸다는 것도 이런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매실 담구기는 워낙 간단했다. 물로 씻어 말리는 게 다였다. 다음에는 매실 1킬로에 소주1리터 비율로 병에 넣으면 끝이다. 보통은 30도 짜리 소주를 사용하는데, 이번에 들린 마트에는 과일주 용으로...
베르디의 레퀴엠! [2]
오늘 오후 늧게 베르디의 <레퀴엠>을 유튜브로 감상했다. 영국 BBC에서 녹음된 동영상이었다. 1시간 20 여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노래에 빠져들었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몇번이나 하겠는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의 희열이다. 지난 2월에도 이 곡 중에 한 대목인 ' '진노의 날'을 여기에 링크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전곡을 다 들었다. 오래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연주한 같은 곡을 DVD로 감상하고 크게 감동한 적이 있다. 아마 다비아 어느 곳엔가 그 경험에 대한 글이 있을 거다. 이번에도 그에 못지 않...
사마리아인들의 초대, 요한복음 묵상(40) [2]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를 초대했다. 이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훌륭한 랍비를 자신들의 동네로 모실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아니다. 누구를 초대하는 일은 따지고 보면 좀 귀찮다. 거처할 곳도 마련하고, 먹을 것도 마련해야 한다. 예상에 없던 손님을 접대하려면 자신의 모든 일정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웬만해서 초대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밖에서 밥 한번 먹는 것으로 때운다. 눅 8:26-39절에는 거라사 땅의 군대 귀신 들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마리아인들의 믿음, 요한복음 묵상(39)
사마리아 수가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를 직접 보러왔다가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도대체 예수의 무엇을 믿었다는 말인가?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 여자가 예수를 가리켜 ‘그리스도 아니냐?’ 하고 말한 걸 전제하면, 그리고 42절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동네 사람들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믿음이 거기까지 나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예수의 그리스도성은 그의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
와서 보라!, 요한복음 묵상(38) [2]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와의 대화 끝에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29) 이 여자가 예수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식했다는 증거는 없다. 첫 만남에서 모든 걸 알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만 자신의 중심을 뚫어본다는 사실을 놀라워한 것 같다. “와서 보라.”는 이 여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표현은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소개할 때도 했던 말이다(요 1:46). 예수를, 혹은 예수 사건을 말로 설명하기...
앵두 [9]
다음 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오늘부터 이미 그런 분위기의 날씨입니다. 저녁무렵 동네 한 바퀴 돌았습니다. 동네 모양이 마치 말발굽처럼 가운데를 평지로 해서 빙둘러 얕트막한 산들이 편안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희집은 왼편 언덕에 동향으로 서 있습니다.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도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우리집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작은 집 마당을 지나는데 놀랍게도 앵두나무에 앵두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게 보였습니다. 하나 따먹고 싶은데 주인이 보이지 않아서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 집 마당에 ...
망초!!! [6]
요즘 우리집 부근에 망초가 가득합니다. 참으로 놀랍네요.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작년에 나무를 모두 잘라낸 우리 앞집 땅을 망초가 완전히 점령해버렸습니다. 땅주인이 땅을 팔려고 큰 나무를 다 잘라내고 울퉁불퉁했던 땅도 포크레인으로 다 갈아엎어서 완전히 황토로 변했었거든요. 근데 망초 씨가 어디서 왔는지 지금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골에 산다는 건 돈을 들이지 않아도 이렇게 야생초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망초'라는 이름이 좀 거시기하게 들리는군요. 개망초라고도 불리는 것 같습니다. 컴 초기화면에서 ...
꽃밭 만들기 [8]
오늘 오전에 4시간쯤 꽃밭 만들기에 전념했다. 손바닥만한 꽃밭을 만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꽃밭 만든 저곳의 땅이 워낙 나빴다. 겉으로 보면 쑥, 토끼풀 등이 덮여 있어 잘 모르지만 조금만 파보면 곡괭이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돌투성이다. 곡괭이질을 하고, 돌 골라내고, 흙 퍼나르고 덩어리 흙 부수고, 아래쪽으로 흙 흘러내리지 말라고 돌을 받치고... 정신없이 힘을 쓰다가 허리가 삐끗하는 걸 느끼고 그때부터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요령껏 일했다. 포트에 담긴 꽃을 옮겨 심는 작업은 집사람 몫이었다. 내가 보기에 너무...
하나님은 영이시다, 요한복음 묵상(37) [2]
24절 말씀은 이렇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을 가리키는 헬라어 프뉴마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말씀에 의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프뉴마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른다. 프뉴마에 대한 이해의 깊이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달라진다. 하나님이 영이라는 말은 옳지만 영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영은 성령도 있고, 악령도 있고, 또 인간의 영적 작용도 있다. 성령은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 자체는 아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존재...
진리의 예배, 요한복음 묵상(36) [1]
참된 예배는 영만이 아니라 진리로 드려진다고 하셨다. 여기서 진리는 헬라어 알레테이아의 번역이다. 우리말로는 참된 것, 한자로는 참된 이치가 진리인데, 그것이 헬라어 알레테이아와 일치하는 건 아니다. 헬라사람들은 철학적인 민족답게 언어에 함축적인 뜻을 담아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도 아가페, 필로스, 에로스 등으로 구분한다. 알레테이아는 계시의 성격이 강하다. 어원적으로 따지만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힘이다.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인간의 종교적 욕망이나 자아의 투사, 열광적 엑스타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인 예배, 요한복음 묵상(35) [2]
사마리아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는 주제가 계속해서 변한다. 20절부터는 예배가 주제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행해지는 것이다. 영과 진리의 예배라는 표현은 이해될 듯 말 듯하다. 영은 헬라어 프뉴마다. 영이라는 뜻도 있지만 바람, 숨이라는 뜻도 있는 단어다. 고대인들의 언어를 오늘 우리의 언어로 직접 번역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머니 품안에 안겨 있는 유아의 그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했다고 하자. 그 단어를 어른들의 단어로 번역할 수는 없다. 경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