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12), 2월24일(일) [6]
뱀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본 어린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참 묘한 동물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 세상에는 묘한 동물이 많다. 그것들도 다 나름으로 존재이유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생김새도 묘하긴 마찬가지다. 행동거지도 묘하다. 발이 없어서 여행도 할 수 없다는 어린왕자의 말을 듣고 뱀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나 당신을 멀리 데려다 주는 일이라면 배 같은 건 나를 당할 수 없지.” 그리고 어린왕자의 발목을 칭칭 감았다. “내게 닿는 녀석은 누구나 그 놈이 태어난 흙으로 돌...
어린왕자(11), 2월23일(토) [2]
어린왕자가 지구에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아프리카 사막에 살고 있는 뱀이다. 뱀은 어린왕자에게 무엇 하러 지구에 왔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떤 꽃과 좀 다투어서...” 뱀은 어이없어 했다. 그깟 일로 이 먼 지구까지 오다니. 그러나 그게 진실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태어난 것은 꽃과의 다툼이라는 에피소드와 비슷한 일 때문인지 모른다. 연인들은 그런 것으로 다툰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는다. 기독교 신앙이 저런 식의 세계관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세...
어린왕자(10), 2월22일(금) [5]
어린왕자가 일곱 번째로 방문한 별이 바로 지구다. 어린왕자는 지구를 좀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어린왕자의 눈에 가로등 키는 장면이 장관이었다. 그 단락을 그대로 인용한다. 이 대집단의 움직임은 마치 오페라에서 춤추는 무희들처럼 질서정연했다. 처음에는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부들 차례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가로등에 불을 붙이고는 자러 갔다. 다음에는 중국과 시베리아의 인부들이 춤곡에 발을 맞추며 나타났다가 무대 뒤로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다음에는 러시아와 인도 차례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아프리...
어린왕자(9), 2월21일(목) [6]
여섯 번째의 별에는 지리학자가 살고 있었다. 호기심을 느낀 어린왕자는 지리학자에게 묻는다. “그런데 어기에 바다가 있어요?” 지리학자는 그런 것에 대해서 몰랐다. 산이 있느냐고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도시와 강과 사막도 있는지 몰랐다. “그러면서도 지리학자란 말이군요!” 이 지리학자는 실제로 강, 사막, 산에는 가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건 탐험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지리학자는 왕자가 살던 별에 대해서 묻는다. 기록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왕자의 대답은 이렇다. “꽃도 한 송이 ...
어린왕자(9), 2월20일(수) [11]
어린왕자가 방문한 다섯 번째 별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작았다. 가로등과 관리인만 있을 뿐이다. 관리인은 가로등을 키고 끄는 명령을 수행하느라 한숨도 못자고, 다른 아무 일도 못했다. 그는 1분마다 등불을 키고 꺼야 한다. 어린왕자는 그에게 세 발걸음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별이니까 굳이 가로등을 키고 끌 일이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늘 환한 낮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당신이 쉬고 싶을 때는 항상 걸어 봐요. 그러면 당신이 바라는 대로 낮이 계속 될 거에요.” 그러나 이 사람은 그...
어린왕자(8), 2월19일(화) [6]
네 번째 별에는 실업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숫자만 세고 있었다. 너무 바빠서 담뱃불을 불일 시간도 없었다. “야! 이로써 5억 162만 2천7백31이 되었군.” 5억이 뭐냐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대답할 시간도 없이 계속 숫자를 계산하고 있었다. 5억이 뭐냐는 어린왕자의 끈질긴 질문에 실업가는 별의 숫자라고 대답했다. 실업가는 5억 개 이상이나 되는 별을 자신이 소유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자였다. 어떤 사람이 별을 발견하면 그걸 사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실업가는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는 별의 숫자를 종이...
어린왕자(7), 2월18일(월) [4]
다음은 술고래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 나오는 그대로 인용하겠다. 다음 별에는 술고래가 살고 있었다. 어린왕자는 이 술고래를 잠깐 동안 만났지만 무척 실망했다. “당신 거기서 뭘 하세요?” 어린왕자는 술고래에게 물었다. 술고래는 빈 병과 술이 가득 찬 병들을 앞에 수북히 늘어놓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술을 마시고 있지.” 술고래는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술을 마시지요?” 어린왕자가 물었다. “잊어버리려고 그러는 거야.” 술고래가 대답했다. “무얼 잊으려고요?&r...
어린왕자(6), 2월17일(일) [6]
두 번째 별에는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찬미한다고 여긴다. 왕자는 찬미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사람이 사람을 찬미한다는 사실에 대한 개념 자체가 왕자에게는 없다는 뜻이다. 찬미가 없는 세상이 어린왕자의 세상이다. 우쭐하기를 좋아하는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찬미한다는 말은 이 별에서 내가 가장 잘 생기고, 가장 옷도 잘 입고, 제일 부자이며, 게다가 가장 지적인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자기를 찬미해달라는 이 사람의 애원을 듣고 왕자는 마지못해...
어린왕자(5), 2월16일(토)
어린왕자는 자기가 살던 별을 떠나서 지구에 오기 전에 몇 개의 별을 여행한다. 첫 번째로 찾아간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왕들에게 세상은 단순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신하로만 보면 된다. 어린왕자가 피곤해서 하품을 하자 하품 금지 명령을 내린다. 참을 수 없다고 하자 하품 할 것을 명령하다. 왕은 모든 별을 자기가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배권이 없다.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착각으로 왕 행세를 한다. 왕정 역사 이래로 수많은 군왕들이 허세를 부린다. 그들의 권력이 허세인 이유는 실제로...
어린왕자(4), 2월15일(금) [2]
이 책에 화자의 말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친구 집에 다녀온 아이가 부모에게 “장밋빛 벽돌로 지어지고 창문에는 제라늄 꽃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있는 아름다운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런 집에 대해서는 관심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2만 달러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오, 정말 굉장한 집이구나!”라고 감탄할 것이다. 요즘이야 2만 달러라고 해도 얼마 안 되겠지만 생텍쥐페리가 이 책을 쓴 20세기 초에는 수십 배 이...
어린왕자(3), 2월14일(목) [9]
불시착한 비행기에 대해서 서로 말을 나누다가 왕자는 화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당신도 하늘에서 왔군요! 어느 별에서 왔지요?” 화자는 다시 왕자에게 어느 별에서 왔냐고 묻는다. 이후로 <어린왕자>는 왕자가 살던 별과 왕자가 여행한 별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어느 별에서 왔냐는 질문은 단순히 동화적인 발상이 아니라 아주 실질적인 거다. 사람을 비롯해서 지구의 모든 것들은 다 별에서 왔다. 놀랍기도 당연하기도 하다. 우주의 먼지 구름이 별이 된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사라진다. 하늘의 수많은 ...
어린왕자(2), 2월13일(수) [8]
화자는 커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사막에 불시착했다. 비행기를 수리하다가 ‘양을 그려줘.’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상하게 생긴 꼬마였다. 그 꼬마가 이 책의 주인공인 어린왕자다. 그 아이는 다른 별에서 왔다. 어린왕자는 한번 묻거나 요구하기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양을 그려달라고 졸랐다. 화자가 그려준 양을 왕자는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결국 화자는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 몇 개 뚫은 상자를 그려주면서 네가 원하는 양이 그 안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왕자는 만족해했다. 이게 무슨 뜻...
어린왕자(1), 2월12일(화)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왕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어린왕자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어른들의 상투적 사고방식이다- 책 중의 하나다. 약간이라도 책을 읽는 사람 치고 이걸 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번 읽고 접어둘 게 아니라 대충 10년에 한 번씩은 다시 읽어도 큰 영감을 주는 책이다. 이야기는 화자(話者)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화자는 아주 어린 시절에 보아구렁이가 맹수를 삼켰다는 밀림 이야기 그림을 보고, 나름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림을 한 장 그렸다. 겉...
변화산 사건, 2월11일(월)
간질병 아이의 치료 사건은 그 앞에 있는 변화산 사건과 직결된다. 간질병 아이 사건은 변화산 사건을 부연해서 설명한 거나 다를 게 없다.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을 때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한다. 옷이 흰색으로 광채를 냈다. 이런 변화는 시내산에 올랐던 모세의 경우와 비슷하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출 34:29). 복음서 기자는 모세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이 변화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
예수와 치병, 2월10일(일)
어제 묵상인 간질병 치유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복음서에 적지 않게 나온다. 예수님은 십 수 년 된 난치병 환자도 고치시고, 시각장애인을 비롯해서 온갖 종류의 지체 장애인들을 고치신다. 심지어는 죽었던 이들을 살리기도 하셨다고 한다. 환자나 장애인들을 고치는 일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실제로 죽었던 사람이라기보다는 죽은 것으로 간주되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봐야 한다. 2천 년 전 당시에는 그렇게 오해된 경우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요즘도 그런 일들이 있긴 하다. 종교의...
귀신과 간질병, 2월9일(토) [2] [1]
내일 설교 본문은 눅 9:37-43절에 나오는 예수님이 간질병 아이를 고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도 나온다. 각각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틀에서는 똑같지만 세부적으로는 약간씩 다르다. 같은 이야기를 각각의 복음서 기자들이 다르게 전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든 이야기는 다 구전에 기초하기 때문에 복음서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본문은 간질병을 귀신의 작용으로 본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다. 간질병 아이의 발작을 보면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이 작용한 ...
北川의 물, 2월8일(금)
北川의 물, 2월8일(금) 이대흠 가장 맑은 것이 모여 북천인 게 아니라 온갖 더러움까지 다 들어 북천은 때 묻지 않는다 북천에서는 할 일 없어진 물은 물끼리 놀다 가고 나무는 나무끼리 향기는 향기끼리 섞이며 깔깔거린다 발가벗은 꽃과 알몸인 나비와 아무데나 핀 나무와 풀과 짐승들이 먹고 놀고 싸는 일만 하다가 북천으로 흘러간다 별들도 제 궤도에서 마음껏 놀다가 우수수 떨어져내리고 어떤 별은 꽃으로 몸을 바꾸고 또 어떤 별은 사랑의 입술이 된다 꽃의 말과 새의 말과 사람의 말이 구분되지 않는 북천이라서 노래하는 새의 입...
당신은 北川에서 온 사람, 2월7일(목)
당신은 北川에서 온 사람 이대흠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힘들어도 아파하지는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책읽기(8), 2월6일(수) [4]
어제의 묵상으로 책읽기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한 번 더 이야기하겠다. 책읽기가 만능이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책이 우리의 직관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먹물’의 한계가 그거다. 먹물은 책을 가까이 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책상머리에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현실을 보는 눈이 관념적일 수가 있다. 어쩌면 책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는 훈련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것이 화두를 붙드는 일일 수도 있고, 역사에 참여하는 것...
책읽기(7), 2월5일(화)
어제 묵상 마지막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만 짚고 이 묵상 시리즈를 그만둬야겠다. 너무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들려도 이해를 바란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스승을 만난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렇다. 한 사람의 스승을 만나기도 힘든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책을 통해서 수많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책 한권을 소화한다면 스승의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인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책은 세상에서 가장 싼 상품이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삶이 변화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