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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공공성(7), 1월15일(화)

  • Jan 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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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앞의 글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공공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회 내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외부의 문제다. 교회는 내부적으로 하나다. 개교회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구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게 한국교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형식적으로 노회나 총회가 있긴 하지만 교회 일치 정신은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다. 교회의 정치적인 성격만 확대된다. 총회장이나 총무 같은 교권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개방적...

교회의 공공성(6), 1월14일(월)

  • Jan 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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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에서 교회의 보편성을 이렇게 말했다. 만일 교회가 자신의 보편적 선교에 의해서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은 교회의 이러한 운동에서, 그리고 교회의 기도가 지니고 있는 세상에의 개방성에서 나타난다. 교회가 특별한 의미에서 세상에서 일어나야 할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라면 교회는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때 전체가 될 것이며, 또한 보편성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372쪽) 몰트만이 말하는 교회의 보편성도 역시 세상을 향한 개방성에 그 특성이 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

교회의 공공성(5), 1월13일(주일)

  • Jan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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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서 판넨베르크의 글을 좀더 읽어보자. 고대 교회의 신조 교리 교육은 카톨릭적이고 유니버살한 교회 개념을 4세기에 받아들였다. 이 개념은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유감스럽게도 16세기 개신교 신조문에서 교회에 대한 술어는 사도적인 전통과 니케아적인 전통의 신조를 바르게 번역하지 않고 ‘기독교적인 교회’라는 말로 비틀어서 표현했다. 이런 형식의 신조는 오늘에도 역시 여러 예배에서 사용된다. 실질적으로 교회는 오늘날 자신의 자명성을 획득하기 위한 준거로서 최소한 기독교인들만...

교회의 공공성(4), 1월12일(토)

  • Jan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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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 186쪽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교회 일치에는 교회의 보편성, 즉 카톨리시티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다. 가톨리시티라는 헬라어는 유니버설리티를 뜻한다. 교회의 유니버살리티를 개신교회도 역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의 다른 조직과 구별되어 끊임없이 개체적이고 특별한 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 조직체와 더불어 인류의 한 부분임을 주장한다. 실제로 특별하게 꾸려진 교회 조직에서 중요한 점은 그 생명 영역의 다원성 가운데서 전체 인간의 운명과 위기에 대해서 개방적이...

환갑, 1월11일(금) [2]

  • Jan 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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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 전 환갑을 보냈다. 공자는 환갑을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소리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마흔 살은 유혹에서 벗어난다는 뜻의 불혹(不惑)이고, 오십 살은 하늘의 명령을 이해한다는 지천명(知天命)이다. 내 귀가 순해졌는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경지는 멀었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내 기준으로 평가한다. 물론 내가 옳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문제까지 판단할 때가 있다. 내 귀가 순한 게 아니라 독(毒)하다는 증거다. 사...

목사 세금, 1월10일(목)

  • Jan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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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종교인 세금 건이 세간에 화제로 올랐다. 생각들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종교인들도(목사, 신부, 승려...) 마땅히 세금을 내야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각 종단의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이미 세금을 내고 있으니 더 보탤 말도 없다. 개신교회와 불교는 아직 공직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불교 쪽은 내가 잘 모른다. 개신교의 입장은 찬반으로 나뉜다. 세금을 내야 한다는 쪽은 소수다. 개신교 목사 중에서도 이미 세금을 내는 이들이 있긴 하다. 찬성하는 쪽의 입장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같다. 소득이 ...

글뤼바인, 1월9일(수) file [7]

  • Jan 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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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글뤼와인이다. 얼마 전에 선물로 받았다. 잔에 따라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마셔보니, 맛이 그럴 듯했다. 처음 혀에 닿는 맛은 달착지근했고, 마시고 난 다음의 뒷맛은 전통 포도주처럼 쌉싸름했다. 오랜 만에 옛날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1983년 성탄 즈음이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신학공부를 위해 잠시 들렸던 독일 쾰른의 노이마크트 광장에서 저 와인을 파는 포장마차를 보았다. 사람들은 입으로 호호 불어가면 저 와인을 마셨다. 구운 소시지를 가운데 넣은 길쭉한 빵을 씹으면서 말이다. 지금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다. 저 ...

서울대학교, 1월8일(화) [4]

  • Jan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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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씨가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차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오신 그분은 대표적인 강경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헌재는 지금까지도 보수적인 판결이 많았는데, 저 분이 청문회를 통과해서 소장으로 결정되면 더욱 보수적인 경향을 보일 것이다. 한국의 중요한 법 문제를 최종 결정하는 곳이 헌재다. 서울을 지방으로 옮기려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도 헌재에 의해서 좌절된 적이 있다. 그건 그렇고,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고 있는 재판관들의 출신대학교 분류가 더 재미있다. 전체 9명 중에서 7...

저녁밥, 1월7일(월) file [5]

  • Jan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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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먼 곳을 다녀오느라 저녁밥은 혼자 먹게 되었다. 젓가락을 들고 식탁을 내려다보니 너무 놀라웠다. 밥, 김치, 멸치볶음, 게맛살, 오뎅국이 거기 있었다. 저건 우주다. 내가 우주를 먹다니,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저녁밥을 먹으며 다시 절감했다. 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밥 한 그릇이면 된다는 것을. 김치가 있으면 더 좋다. 김치가 없어도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것만으로 내가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무엇이 부럽겠는가. 이건 ...

교회의 공공성(3), 1월6일(주일)

  • Jan 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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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새번역 사도신조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한다. 독어 사도신경은 이 대목을 “die heilige christliche Kirche”로, 영어 사도긴경은 “the holy universal church”로, 니키아-콘스탄티노플 사도신경은 ‘사도적’이라는 낱말을 보충해서“ecclesia una sancta, catholica et apostolica”이라고 한다. 교회의 보편성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용어는 아니다. 그런 개념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1...

교회의 공공성(2), 1월5일(토)

  • Jan 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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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공공성, 또는 보편성은 신학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교회가 퇴행적으로 자기에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이다. 교회는 자기의 주장은 보편적인 차원에서 변증해야 한다. 교회의 구원 메시지가 세상의 현실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교회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셨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상위 개념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이다. ‘타자를 위한 존재’다....

교회의 공공성(1), 1월4일(금) [2]

  • Jan 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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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조에 따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 여기에 ‘하나’라는 부정관사가 생략되어 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해야 한다. 니케아신조에는 ‘사도적’이라는 단어도 포함된다. 사도신조와 니케아신조나 똑같이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의 보편성, 즉 공공성은 교회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더 나가서 그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될까? 오늘 한국교회는 교부들의 신학적 영성에 크게 못 미치고 ...

착각, 1월3일(목) [9]

  • Jan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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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큰 딸이 대구문예회관에서 (아르바이트) 연주가 있다고 해서 지하철역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하양에서 대구문예회관에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를 운전해서 가는 거다. 밀리지 않으면 한 시간 걸린다. 다른 하나는 버스를 타는 거다. 하양에서 출발하는 518번은 대구 시내를 관통하느라 두 시간이 족히 걸린다. 세 번째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거다. 딸은 지하철을 선택했다. 지하철은 단번에 가지 않는다. 하양에서 안심역까지 버스가 차로 가야하고, 안심역에서 서부정류장까지는 지하철, 서부정류장에...

연필, 1월2일(수) file [62] [1]

  • Jan 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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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연필로 글을 썼다. 컴퓨터에 글을 쓰기 전에 글의 구도를 잡을 때 나는 연필을 자주 쓴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연필을 잡는다. 밑줄을 긋기도 하고, 중요한 대목 옆에 강조 표시도 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색연필을 사용할 때도 있다. 나는 연필을 잡을 때마다 황홀하다. 내가 무엇을 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그런 단순한 행동도 할 수 없을 때가 곧 오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연필을 잡는다는 것은 나의 전체 삶이 담겨 있는 행위다. 평생 연필을 쥐고 살았으니 말이다. 연필을 잡...

덕담 한 마디, 1월1일(화) [5]

  • Jan 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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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오늘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신생아들이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가 특별한 날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늘이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우주의 역사에는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금년 한 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긴 우주의 역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한 해와 하루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아직 까지 숨이 붙어 있는 우리는 모두 2013년을 함께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게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세상에 태어났...

마지막 날, 12월31일)월) [7]

  • Dec 3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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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시작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 순간에 마지막 날이 왔습니다. 이렇게 제 인생에도 마지막 날이 올 것입니다. 아무도 그 날을 막을 수도, 늦출 수도 없습니다. 죽음의 날인 그 순간은 도적같이 옵니다. 그 순간을 준비하며 살겠습니다. 그 준비는 곧 하나님께서 지난날과 지금 저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는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일 년 동안 저에게 숨을 허락하셨습니다. 숨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제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어디 숨뿐이겠습니까...

영적인 노래를!, 12월30일(주일)

  • Dec 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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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골로새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고 본질적인 것은 영적인 노래로 당신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영적인 노래를 가르쳐주십시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적인 노래는 하나님 당신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입니다. 당신은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영적인 노래는 생명과의 공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노래입니다. 당신은 미래의 힘이시기에 영적인 노래는 미래를 향해 영혼의 촉수를 맞추...

기도하는 사람, 12월29일(토)

  • Dec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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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금년 한 해가 이렇게 시나브로 저물어 갑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제가 주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태도로서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쌓여 산을 이루었습니다. 세월의 무게와 더불어 겉모양은 좀더 그럴듯하게 변했지만 마음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미숙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저는 세상에서 이미 살만큼 살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너무 많은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면서 살았...

예수는 빛이다, 12월28일(금)

  • Dec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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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요한복음 기자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라고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십니다. 그 빛은 바로 생명입니다. 그 빛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은 생명을 얻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요한복음 기자를 통해서 전해 듣습니다. 주님, 우리는 세상에서 거짓 빛에 속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줄 것처럼 유혹하는 소리에 혹합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리 좋은 경우라 하더라도 잠시 동안만 생명의 형식을 취할 뿐입니다. 시간과 더불어 모두 낡고 늙고...

시므온의 기도, 12월27일(목)

  • Dec 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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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늘 다시 2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 시므온이 드렸던 기도를 듣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30-32). 그가 본 구원은 곧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들을 구원할 주님이었습니다. 시므온의 기도는 바로 우리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어둠을 밝히고, 죄를 사하시고, 죽음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본질인 영광이십니다. 생명의 궁극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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