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의 선취, 12월6일(목) [1]
주님, 우리는 주의 재림을 진심으로 기다립니다. 그 때에 일어날 생명의 완성을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립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듯이 우리도 영혼의 깊이에서 그 때를 기다립니다. 주의 재림은 마지막 때 일어날 미래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일어난 현재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완성인 주의 재림은 미래이면서 동시에 현재입니다. 아직 아니면서 동시에 이미 일어났습니다. 종말은 이미 여기 와 있습니다. 그 미래를, 그 종말을, 그 재림을 지금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지금 우...
생명의 완성, 12월5일(수) [1]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창조와 종말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생명의 세계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재림은 세상의 종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상의 시작입니다. 그때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생명이 완성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생명은 잠정적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총체적으로 불완전합니다. 많은 것을 먹고 소비하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세상을 다 소유해도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건강식품을 섭취해도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
주의 재림, 12월4일(화) [1]
주님, 우리는 진심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2천 년 전 부활 승천 당시에 다시 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에 근거해서 기독교는 지난 2천년동안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오시 않으셨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려주십시오. 우리는 어리석기에 우리가 경험하는 그런 시간 개념으로만 재림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림이 너무 늦어진다고 불평을 하거나 안타까워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깊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재림의 시기는 오직 하나님의 재량에 ...
정의와 평화의 날, 12월3일(월) [1]
주님,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공의로운 이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2천5백여 년 전 나락으로 떨어진 유다의 한 선지자였던 그의 메시지가 오늘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울립니다.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근동의 헤게모니를 쥐고 흔들던 바벨론 제국의 악과 불의를 고발합니다. 바벨론은 군사력으로 주변 세계를 억압했습니다.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서 주변의 평화를 파괴했습니다. 유다는 그와 같은 국제질서에서...
주님은 다시 오신다, 12월2일(주일) [1]
언제나 신실하시며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주님의 약속은 영원토록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2천 년 전 육신을 입으시고 유대 땅에 오시어 자신과 일체이신 하나님 나라를 전체 운명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 생명을 얻으시고 은폐된 생명의 자리인 하늘에 오르셨으며, 생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시 오시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굳게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실 종말은 모든 것의 비밀이 밝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종말의 영을 우리 모두의 영혼...
12월을 시작하며, 12월1일(토) [1]
주님, 금년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았습니다. 정월을 시작한 게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마지막 달 십이월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어지럽습니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신의 위로를 허락해주십시오. 주님, 이제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당신께서 허락하신 마지막 한 달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더 이상 안타까워하지 않고,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앞에 놓인 한 달을 최선으로 살아보겠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5), 11월30일(금) [1]
주님, 교회 개혁을 위해서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사람들은 대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교회의 잘못도 언급하기 싫어하기도 하고, 그걸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알기에 남이 듣기 싫어하는 주장을 하고, 때로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로해주십시오. 교회 개혁이라는 주장이 자칫 교회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위태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도 크고 작은 실수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4), 11월29일(목) [1]
주님, 이십 년 쯤 전부터 한국교회는 해외 선교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기업이 해외 영업망을 확대해나가듯이 세계 곳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보다 기독교 역사가 깊은 러시아까지 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모든 게 선교라는 미명이었습니다. 주님, 오늘 한국교회는 지난 세기에 유럽 기독교가 보인 제국 종교적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중심으로 보고 피선교지를 대상으로 다룹니다. 자신들은 옳고 상대방은 잘못...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3), 11월28일(수) [1]
주님, 한국에 있는 교회 중에서 30%, 또는 그 이상의 교회가 미자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떼 지어 있습니다. 한국처럼 교회 사이에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재정적으로 자립이 안 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을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기는 하지만 한국의 가난한 교회와 목회자들이 감당해야 할 짐은 너무 무겁습니다. 최소한 먹고 살아야 하고, 자녀들을 교...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2), 11월27일(화) [1]
주님, 교회와 신자들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서 목사들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적지 않는 숫자의 목사들이 임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엔가 목회자의 수요 공급에서 균형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목사들끼리 자리를 찾기 위해서 경쟁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 개념처럼 괜찮은 목사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주님, 상황이 이렇다면 목사 후보생 숫자를 줄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각 교단과 신학대학교 측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입학생 숫자를 줄이지 않습니다. 목사들끼리 경쟁이 ...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1), 11월26일(월) [2]
주님, 한반도에 복음이 전파된지 로마가톨릭에서 보면 이백 수십 년, 개신교에서 보면 일백 수십 년이 흘러 이제 양 종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가톨릭 교인들의 숫자가 육백 여만 명, 개신교 교인들의 숫자가 팔백 여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지난 기독교 역사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감사합니다. 하나님. 그러나 요즘 우리 개신교회는 이 사회로부터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비난이 정당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정당한 게 더...
진리에 속한 자, 11월25일(주일) [1]
주님,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진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진리에 속하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인 곧 진리입니다. 그것만이 궁극적인 생명입니다. 주님, 우리는 어리석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작정했으면서도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예 관심도 없이 지낼 때가 많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진리 운운하면서도 실제로는 진리에...
고독한 사람을 위해서, 11월24일(토) [3]
주님,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고독의 이유를 따지기 시작하면 어디 끝이 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고독에 이유는 없습니다. 고독은 인간의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슨 방식으로도 고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막연하게만 느낍니다. 또는 이 세상의 소소한 재미로 고독을 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독의 진면목을 대면합니다. 우주에서 자신이 혼자라는 준엄한 사실을 영혼으로 경험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기도 하고 아득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절...
예수의 왕권, 11월23일(금) [1]
주님, 빌라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요 18:33)라는 말로 심문을 시작했습니다. 기껏해야 실정법 범주에서만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심문하는 장면입니다. ‘당신’은 지금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그분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고발당했습니다. 민중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았습니다. 제자들로부터도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런 ‘당신’이 왕이냐는 조롱입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거부당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마지막이 십자가 처형이었...
천국은 어디에, 11월22일(목)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지금 천국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는 바울의 고백처럼(빌 3:20) 우리는 천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의 경험을 근거로 천국을 상상합니다. 여기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복지를 천국으로 여깁니다.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아프지 않는 세상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삶의 조건으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기에 천국을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주 공간으로 생각합니다. 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1월21일(수) [2]
주님,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루가 너무 빠르고, 한달은 더 빠르고, 일년은 더더욱 빠릅니다. 이런 세월과 함께 우리는 나이를 먹고 어디론가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도 너무 빠릅니다. 시속 천 킬로미터가 넘는 자전 속도이고, 시속 십만 킬로미터가 넘는 공전 속도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서 이렇게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습니까? 주님, 우리는 사는 게 힘들어서, 또는 사는 재미에 취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습니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또...
교회 일꾼들을 위한 기도, 11월20일(화) [1]
주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으로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꾼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당신께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청지기들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영혼을 기울여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바로 하나님의 땀입니다. 주님, 교회 일꾼들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으로 인해서 마음의...
산모를 위한 기도, 11월19일(월) [1]
주님, 열 달 가까이 자신의 몸에 씨앗처럼 시작된 생명을 키우다가 막 출산한 산모를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녀의 수고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일입니다. 그 일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통해서 인류가 이 땅에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지난 열 달 동안 먹은 모든 먹을거리의 영양분은 태아의 몸에 그대로 공급되었습니다. 그녀의 피가 새 생명의 몸에 흘러들었습니다. 그녀의 호흡이 바로 새 생명의 호흡이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생각도 태아에게 그대로 ...
추수감사, 11월18일(주일) [1]
홀로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홀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금년 가을에도 농부들이 곡식과 과일을 비롯하여 수많은 먹을거리를 거둬들였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태양 빛과 탄소와 물이 결합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먹을거리들이 생산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우리가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와 찬송을 당신께 돌립니다. 이 풍요로운 먹을거리의 생산에 우리가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농사꾼도 아닌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자...
초막에 거하라, 11월17일(토) [1]
주님, 우리는 모세를 통해서 초막절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매년 칠월 십오일부터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라는 명령입니다(레 23:42). 굳이 초막에 거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레 동안이나 초막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우리는 그 명령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초막을 잊고 살았습니다. 온갖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춘 집에 익숙해졌습니다. 신용카드와 연금이 보장하는 노후설계에 우리의 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