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1월1일
하나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해라는 말이 가당치는 않으나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으니 그대로 받아주십시오. 새해가 밝았습니다. 밝음 자체이신 하나님 앞에서 밝았다는 말이 가당치는 않으나 그것밖에는 아는 게 없으니 저를 받아주십시오. 하나님, 당신은 작년에도, 작년의 작년에도, 작년의 작년의 작년에도 ... 늘 그렇게 시간을 관리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2012년은 영원한 시간과 신비한 방식으로 맺어진 창조주 당신의 귀한 선물입니다. 놀라운, 반복되지 않은, 결코 허무하지 않은, 잠시 살...
성탄절(11)
우리는 지난 열흘 간 성탄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소. 그대가 성탄절의 의미를 아는데 조금이라고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소. 이것으로 성탄절을 다 말했다는 건 아니오. 작은 부분을 말했을 뿐이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셨다는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이오. 성탄절은 말씀이 육신이 된 날이오. 그 말씀은 요한복음이 말하는 로고스요. 창조의 말씀으로서 역사 이전에 존재했소. 그 로고스는 예수를 가리키오.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예수가 어떻게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인 로고...
성탄절(10)
영생과 성탄절의 관계가 여전히 확실하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소. 예수가 세상에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오. 그런 생각은 일리가 있소.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종말의 완성자라는 게 분명하다면 2천 년 전 예수 탄생 사건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자신의 통치 아래 둘 수 있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전능이지 않겠소? 오늘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것 같소. 아니 내가 말할 수 없는 부분까지 진도를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소. 속도를 늦춰야겠소. 여기서 핵심 ...
성탄절(9)
성탄절과 영생의 연결이 좀 막연하다고 느끼시는 거요?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하겠소. 그것은 어제 인용한 요 3:16절에서만이 아니라 신구약 전체를 통 털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오. 그걸 알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아는 것이고, 그리고 천국을 아는 것이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아는 것이오. 낱말 뜻으로만 본다면 영생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오. 낱말 뜻으로 그것이 다 설명되는 건 아니오. 그대가 기독교 영성의 깊이로 들어가려면 그 낱말 뜻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야 하오. 어제 이미 말했소. 영생은 ...
성탄절(8)
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소. 신약성서에 여러 가지 대답의 시도도 있었소. 잘 알려진 구절인 요 3:16절은 이렇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에 따르면 성탄절의 의미는 영생에 있소. 영생을 잘 생각해보시오.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가 없소. 문제의 해결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오. 높은 연봉은 또 다른 욕망을 불어오오. 무병장수로 모든 문제...
성탄절(7)
예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날이 성탄절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보시오? 그가 우리에게 먹을 걸 주는 것도 아니고, 연봉 많은 직장을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고, 전쟁을 막아주는 것도 아닌데, 성탄절을 기릴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오. 이런 질문 앞에서 기독교는 입이 열이라고 할 말이 없소. 그동안 역사적인 기독교의 행태가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오. 예수가 오심으로 세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소.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도 아니...
성탄절(6)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좀더 설명해야겠소. 정확한 구절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시편 어딘가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올 거요. 구약의 다른 어딘 가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소. 여기서 ‘아들’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를 가리키오. 아들은 보이는 하나님이라면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오. 유대인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소.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절대타자요. 모세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소.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으로 경험했소. 예수는 ...
성탄절(5)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시오. 그것을 문자적으로만 생각하면 그가 어딘가 다른 데 계시다가 오셨다는 말이 되오. 그 다른 데가 하늘이라고 생각하시오? 당연히 그렇소.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오. 하나님의 아들도 역시 하늘에 계셨소. 여기서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불거지오.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는 신생아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되오. 지금 나는 정리되지 않은 몇 가지 문제를 위에서 제기했소. 성탄절과 연관해서 그대...
성탄절(4)
지금 우리는 12월25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소. 정교회는 1월6일(?)을 성탄절로 지키오. 양쪽의 날짜가 다른 이유는 양쪽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오. 날짜가 달라도 큰 문제는 아니오. 12월25일도 예수님이 탄생한 바로 그날은 아니오. 2천 년 전의 그날을 어찌 확인할 수 있단 말이오. 로마가톨릭과 개신교회가 12월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소.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보오. 예수님의 탄생 날짜를 정확하게 모르면서도 성탄절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오? 또는 성탄절 절기를 포기하는 게...
성탄절(3)
동방박사, 목자들 이야기는 기자가 현장을 확인해서 쓴 게 아니라 근원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근거해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구전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오. 일종의 민담이라 할 수 있소. 다시 말하오. 동방박사와 목자들 이야기는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중요한 사건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오.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바로 이 부분을 염두에 두어야 하오. 그렇지 못할 경우에 복음서가 헬라 로마 신화 이야기와 비슷한 차원으로 떨어지고 마오. 근원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예수가 ...
성탄절(2)
복음서는 예수님의 오신 날과 연관된 이야기를 마치 동화처럼 전하고 있소. 동방박사 이야기를 기억하실 거요. 그들이 아기 예수 앞에 보물을 바쳤다 하오. 황금, 유향, 몰약이오. 주일학교 어린이나 학생들은 동방박사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미기도 하오. 성가대는 이를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를 연주하기도 하오. 나에게도 그런 추억은 꿈과 같소. 목자들 이야기도 달콤하오. 목자들이 천사로부터 예수의 나심을 전해 듣었소. 하늘에서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퍼지오. 이런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하기는 어렵소. 마가복음과 요한복...
성탄절(1)
성탄절인 12월25일이 다가오고 있소. 그대는 이번 성탄절을 어떻게 맞고 있소? 어린 시절에는 성탄절이 달콤하기 그지없는 절기요. 청소년 시절에도 그런 낭만이 남아 있소. 그러나 그 시기만 지나면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소. 나이가 들면 성탄절만이 아니라 모든 날이 시시해지오. 자기 생일도 시시해지오. 이게 불행한 현상인지 아니면 철이 드는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소. 공연히 들떠서 사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감동 없이 사는 것도 문제요. 금년 성탄절을 감동적으로 맞이해보시오. 어떤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겠...
100년 후
나는 어릴 때부터 먼 미래를 종종 생각했소. 아마 초등학교 2,3학년쯤으로 기억되오.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소. 2000년이 되면 우리가 몇 살이 될까? 와, 50살 가까이 되는구나. 그때가 오기는 올까? 대충 이런 이야기였소. 열 살짜리에게 오십 살은 비현실이오. 그런데 벌써 그 세월이 나에게 훨씬 전에 지났소. 어마어마한 세월이 한줌처럼 지나갔소. 앞으로 100년 후에 그대와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겠소? 말장난처럼 듣지 마시오. 100년 후는 쏜살같이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소. 한 순간이오. 나이가 든 나만이 아니라 젊은 ...
노화
어제 미라에 대해서 말했소. 그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우리의 미래라고, 곧 닥친다고 말이오. 그게 죽음이라는 사실을 그대는 눈치 챘을 것이오. 그런데 죽기 이전인 지금 이미 우리는 미라가 되는 중이오. 물기가 천천히 빠지고 있소. 그걸 노화라 하오. 피부는 탄력을 잃소. 눈빛도 흐려지오. 머리카락이 빠지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속에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라오. 관절이 경직되어 가오. 위와 장도 탄력을 잃소. 정신적인 부분도 비슷하오. 의지력도 줄어들고, 성적인 욕망도 떨어지고, 자기 성취욕도 감소하오. 물론 개인...
미라
며칠 전에 경북 안동 지역 어딘가에서 4백년 이상 된 미라가 나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처럼 의학적으로 미라 처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생전의 모습을 하나도 잃지 않은 모습을 유지했소. 무덤을 이장하는 작업 중에 나왔다 하오. 후손들은 미라를 다시 관 안에 넣었다 하오. 무언가를 두려워한 탓인지, 아니면 영구 보관할 방법을 찾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소. 미라를 자주 보도록 하시오. 그게 우리 모두의 운명이오. 아무리 잘 보관된 미라라고 하더라도 거기서 생명을 느낄 수는 없소. 건강도, 아름다운 외...
대림절에 대해(15)
앞에서 대림절 영성에 대해서 여러 번에 걸쳐서 설명했소. 그런 설명으로 모든 게 확연하게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오. 이런 개념적인 용어들은 거기에 연관된 다른 개념들을 알고 있을 때만 전달되기 때문이오. 어제의 묵상에 나온 부활과 순교만 해도 그렇소. 그 두 용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더 깊이 생각해야만 하오. 그것만이 아니오. 창조와 종말에 대한 개념들이 넓어져야만 생명 완성과 그것의 기다림과 그것을 미리 당겨서 살아야 할 신앙의 세계가 보이게 될 것이오. 대림절에 대한 묵상을 오늘로 정리하겠소. 다른 것은 다 ...
대림절에 대해(14)
대림절 신앙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실감이 가지 않소. 마치 어린 시절에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정도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오. 다른 건 접어두고 지금 당장 먹고 살기 바쁜 마당에 막연한 예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친다는 말이오. 예수 재림을 통해서 생명이 완성된다고 해도 그건 먼 미래의 일이고, 지금 당장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게 현안이오. 이걸 억지로 납득시킬 수 없소.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삶의 태도니까 말이오.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을 들어보시오...
대림절에 대해(13)
지금 우리는 대림절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이야기요. 그것은 곧 생명완성이며, 세계완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오. 여기서 핵심은 도대체 무엇이 생명이냐 하는 질문에 있소. 우리는 그 질문에 대답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오. 지금 이렇게 살아있기는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 자체도 그렇게 확실한 게 아니니 어쩌겠소. 잘 생각해보시오. 우리의 생명에서 가장 궁극적인 토대가 무엇이라 생각하오? 노자와 장자는 도라고 말하고, 하이데거는 존재라 하고, 화이트헤드는 과정이라 말하오. 우리 몸을 구성하고...
대림절에 대해(12)
돌도 우주 전체의 차원에서 생명 현상이라는 어제의 말을 그대가 인정할는지 모르겠소. 다른 예를 들겠소.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 똥>이 있소. 강아지 똥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그것에 기대서 민들레꽃이 피어나오. 강아지 똥은 지구의 생명 현상과 깊숙이 연관된 어떤 사건이오. 강아지가 똥을 누려면 먼저 무언가를 먹어야 하오. 강아지가 먹은 것은 땅에서 난 것들이오. 그게 밥일 수도 있고, 멸치일 수도 있소. 지구에서 비밀한 방식으로 나온 것들이오. 강아지 똥은 우주의 중심에 속하는 생명이오. 모든 사물이 우주...
대림절에 대해(11)
대림절 묵상 글에 생명완성, 세계완성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소.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혼선이 없으려면 이런 단어의 개념을 일단 정확하게 해야 하오.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작업이 인문학이고, 신학이라고도 할 수 있소. 생명의 완성이라는 말은 순전히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는 인식과 관련되오. 사람의 관점에서는 돌이나 흙은 생명이 아니오. 그런 것은 그냥 사물이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것도 역시 생명의 가능성이 부정될 수 없소. 창조 설화에 따르면 하나님이 동물과 식물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