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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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강의 개요 [1]

  • Aug 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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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련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소. 모두들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서 수련회에 참석하는데, 그분들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걱정이오. 주제는 <창조와 종말>이오. 이미 강의 개요와 자료는 인쇄에 들어갔소. 개요는 다음과 같소. 제1강 및 시작 기도회, 8월26일 저녁 8시30분 제목: 창조와 그리스도교 신앙 성경: 욥기 42:1-6 사회: 박노출 제2강/ 8월27일 오전 10시 제목: 창조 이야기(1) 성경: 창세기 1:1-13 사회: 김정환 제3강/ 8월27일 오후 2시 제목: 창조 이야기(2) 성경: 창세기 1:14-31 사회: 이선영 제4강/ 8월27일 저녁 8...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12)

  • Aug 23, 2011
  • Views 1799

성서적이며 특별히 메시야적인 창조론은 ‘정적인’, 그리고 자기 자신 속에서 평형을 유지하며 머물러 있거나 자기 자신 속에서 움직이고 폐쇄되어 있는 우주의 상과는 원칙상 대립한다. 오히려 완성을 향한 그의 종말론적 지향성은 완성되지 않은 우주의 역사의 모습과 상응한다. .... <중략> ... 과거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새로운 하나님 중심적인 자연이해와 인간이해와 세계 이해를 통하여, 그리고 이 자연적-인간적 세계의 역사에 대한 종말론적 이해를 통하여 극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화론에 대한 만족할만한 신학적 전망을 ...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11)

  • Aug 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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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물질과 생명 체계들의 계속된 형성을 나타낸다. 이로서 진화론은 신학이 말하는 계속적 창조와 관계된다. 계속되는 창조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창조하고 또 활동하는가? 태초에 있었던 하나님의 창조 형식들을 계속되는 역사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활동 양식에 적용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잘못이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유지와 보존과 변형과 성취의 형식들은 미래를 향하여 개방된 그들의 역사에서 기술되어야 할 것이며, 여기에 있어서 미래 개방성의 신학적 개념은 개방성의 조직이론적 개념을 받아들이고 또 이것을 ...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10) [1]

  • Aug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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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의미에서 진화는 창조 자체와 관계없다. 오히려 그것은 ‘만듦’과 ‘창조’의 배열과 관계된다. 창조한다는 것과 만든다는 것은 서로 혼동되어서는 안 될 성서적으로 상이한 개념들이다. 창조는 현존 일반의 기적을 의미한다. 창조 행위는 단 하나의 신적인 순간에 있는, 그 자체 속에서 시간으로 연장되어 있고 풍요한 형식으로 구분된 현존 전체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원칙상 창조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 이 개념들은 동일한 현실의 상이한 국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237쪽) 몰...

세상과 ‘나’

  • Aug 19, 2011
  • Views 1953

창조 신앙은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피조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오. 그게 창조론이라는 낱말에 담긴 뜻이오. 그 세상에 나도 포함되어 있소. 그 세상에 내가 철저하게 의존해 있소. ‘나’가 우선이 아니라 ‘세상’이 우선이라는 뜻이오. 나는 변수이고, 세상은 상수요. ‘나’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오. 그걸 잘 생각해보시오. ‘나’ 없는 세상 말이오. 그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실감이 잘 가지 않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어렵소. 우리는 철저하게 세상을 나와 연결해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오. 조금더 이런 생각을 밀고 나가보시오. ...

창조와 종말에 대해서 [1]

  • Aug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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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련회의 주제가 <창조와 종말>이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몇 번에 걸쳐서 짧은 글을 썼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오.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앙은 사실 이 두 단어에 걸쳐 있다고 해도 좋소. 이 세상이 이렇게 우리 눈앞에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소. 그것이 창조 사건이오. 엄격히 말해서 세상이 우리 눈앞에 있는지 아닌지도 우리는 모르오. 이미 그 세계 안에 들어가 버린 뒤에는 그 세계가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오. 우리 눈에는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지만 그게 빛이 아닐 수도 있소. 인간의 ...

수련회를 앞두고.... [2]

  • Aug 17, 2011
  • Views 1859

오는 8월26일부터 2박3일 동안 여름수련회가 열리오. 참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분들도 있을 거고, 아예 관심이 없는 분들도 있을 거고, 기다렸다는 듯이 참석하는 분들도 있고, 참석하고 싶지만 사정이 어쩔 수 없는 분들도 있소. 생각과 형편이 모두 제각각이오. 그대는 어디에 속하오? 이런 수련회에 참석하기가 쉽지는 않소.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다는 것이오. 실제로 바쁘기도 하고 공연한 일로 바쁘기도 하오. 현대인들의 특성이 바쁜 삶이고, 더 나가서 쫓기는 삶이오.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9)

  • Aug 16, 2011
  • Views 1515

신앙인의 현재는 과거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우며 메시야의 미래를 향하여 열려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고대의 윤회적인 시간이해를 결코 현대의 직선적인 시간이해로 대치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동일한 선상으로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양자를 질적으로 구분하는 메시야적인 시간 이해로써 대치시킨다.(155쪽) 시간이 무엇이오? 시간도 피조된 것이라고 생각하오? 시간에 대해서 불교의 윤회적 입장이나 헬라의 공간적인 입장은 비슷하오. 모든 것...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8)

  • Aug 15, 2011
  • Views 1666

이 기본명제로부터 출발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연 속에 있는 우주적인 영의 활동 방식들을 발견할 것이다. 1) 영은 물질과 살아 있는 것의 모든 영역 속에 있는 창조성의 원리이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며 물질적이며 살아 있는 유기체들의 새로운 기획들을 그들 속에 선취한다. 이런 점에서 영은 진화의 원리이다. 2) 영은 전체론적(holistische) 원리이다. 진화의 모든 단계에서 그것은 상호작용과 이 상호작용들 속에서의 일치와 상소간의 침투와 동지적이고 연대적인 삶을 창조한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의 ‘공동체 영’(...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7)

  • Aug 13, 2011
  • Views 1685

신적인 창조는 아날로기아가 없는 것이므로 그것은 또한 표상될 수도 없다. 신적인 창조의 행위는 한번도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가지 과정으로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통일된 것이고 독특한 것이다. 이리하여 언제나 지속을 요구하는 시간도 창조의 행위로부터 배제된다. 창조는 흡사 갑자기, 한 순간에 일어난다. 그렇다면 창조의 행위는 시간 밖에 있으며 무시간적인 것인가? 만일 그것이 무시간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과 같이 영원한 것인가? ‘태초에’라는 표현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이 표현...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6)

  • Aug 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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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인간과 함께 하는 하나님 역사의 ‘무대’ 이상의 것이다. 하나님 역사의 영광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이 역사의 목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래의 몇 가지 점을 확보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의 창조로서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주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를 통해서 열린다. 그것은 단순히 세계를 관찰함으로써 오지 않는다. 2. 세계를 하나님 창조로 인식함으로써 주 하나님의 계시는 우주적으로 된다. 3. 하나님 창조로 이해되는 우주는 하나님의 주권 역사에서 파악된다. 태초의 창조는 이 역사를 준비하며, 이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새 ...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5)

  • Aug 11, 2011
  • Views 1554

“땅을 정복하라”는 구체적인 성서 표상은 신학의 진통이 수백 년 동안 땅의 통치(dominum terrae)로서 가르쳐 온 지배의 명령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음식물에 대한 명령이다. 즉 인간은 동물들과 함께 땅의 식물들과 나무들이 생산하는 열매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지배권의 의미는 없다. 지배에 대한 명령은 창세기 1:26절에서만 발견된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여기서...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4)

  • Aug 10, 2011
  • Views 1962

자연의 대물화(對物化)는 인간의 주관화와 상응한다. 사유하는 사물(res cogitans)과 연장된 사물(res extensa)을 나눈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현대적인 과정을 밑받침하는 이론이다. 여기에서 인간을 사유하는 사물과 일치시키는 것은 인간에게 적대적이고, 마찬가지로 자연을 연장이라는 기하하적 관념에 예속시킨 것은 자연에 적대적이다. “특히 데카르트를 통해서 유행하게 된 자연에 대한 비정신적인(geistlos) 이해는 정신을 비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하고 자연과 정신을 무신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하는 ...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3)

  • Aug 09, 2011
  • Views 1959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즉 하나님과 유사한 모든 관계들은 상호간의 근원적 거함과 삼위일체적인 순환의 상호 침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세계 안에 있으며, 세계는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영광에 의하여 침투되고 있다. 생존하게 하는 영 안에서 영혼과 몸은 인간적인 전체를 향하여 하나로 된다. 여자와 남자는 조건 없는 사랑의 나라 안에서 참되고 전체적인 인간 존재를 향하여 해방된다. 고독한 삶은 없다. 모든 단자는 -라이프니츠에 반하여- 많은...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2)

  • Aug 08, 2011
  • Views 2084

성서의 전통에 따르면 모든 신적인 활동은 그의 활동에서 영적이다.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의 활동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은 그의 창조물에게 쉼 없이 영을 불어 넣어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계속해서 우주적인 영의 에너지와 가능성들을 받음으로써 존재하고 산다. 그러므로 창조된 모든 현실은 에너지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신적인 영의 실현된 가능성으로 파악될 수 있다. 영의 에너지들과 가능성들을 통하여 창조자 자신이 그의 창조 안에 현존하고 있다. 그는 창조에 대하여 단순히 초월적으로 대칭하여 ...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1)

  • Aug 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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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몰트만의 책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Gott in der Schöpfung)에 나오는 내용을 발췌해서 전하겠소. 이 책은 몰트만이 1985년에 뮌헨의 그 유명한 출판사 Chr. Kaiser Verlag을 통해서 낸 것이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1984/85년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의 기포드 강좌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오. 그의 이런 책을 평신도들이 따라가기는 쉽지 않긴 하오. 그래도 읽어야 하오. 힘을 내시오. 이 책에서 우리는 창조론의 신학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비판이후의 과학적 방법들과 ...

사람 창조(6)

  • Aug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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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먹을거리를 하나님이 허락하셨소. 그런데 그 문장을 정확히 보시오. 채소와 나무 열매를 주셨소. 짐승과 물고기를 주셨다는 말은 없소.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채식동물로 창조하셨다는 뜻이오? 여기 본문으로 채식주의 운운하는 것은 너무 진도가 빨리 나가는 것이긴 하오. 성서기자가 그걸 의도했다고 확신할 수도 없소. 성서가 기록되던 시기의 유대인들은 당연히 육식을 했소. 양, 소, 염소를, 그리고 각종 물고기도 먹었소. 유대인들은 먹을거리에 대해서 유난히 민감했던 민족이오. 짐승 중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사람 창조(5)

  • Aug 05, 2011
  • Views 1676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오해되었소. 지배 개념이 바로 그것이오. 사람은 세상을 지배할 권한이, 또는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생각했소. 그것도 나름으로 일리가 있소. 모든 동물과 곤충을 비롯한 자연은 거칠어 보이오.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허물어질 것처럼 보이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대로 자연을 지배하려고 했소. 그 자연지배가 우리의 삶을 부분적으로 편리하게 하긴 했으나 생태가 균형을 잃는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소. 일본 핵발전소 사고에서 ...

사람 창조(4)

  • Aug 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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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보도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셨소.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단지 생육하고 번성하는 명령만 내린 것과 비교되오. 다른 짐승들은 나름으로 지능 활동을 한다 하더라도 자연의 일부에 속하오. 자연의 일부는 자연을 다스릴 수가 없소. 그냥 자연의 속성으로 살기만 하면 되오. 마치 유아기 아이들이 매일 엄마 젖을 빨고 잠을 자기만 하면 되는 것과 비슷하오. 사람은 어제 짚은 것처럼 자연의 속성대로 살면서 동시에 자연의 일부로 떨어지지 않았소.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소. 자연과 잘 어울리...

사람 창조(3)

  • Aug 03, 2011
  • Views 2096

창 1:27절을 보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남자만이거나 여자만으로, 또는 중성 쯤 되는 어떤 형태로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소. 창세기 기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동물들도 모두 암컷과 수컷으로 창조하신 거요. 그것들이 후손을 번식하려면 반드시 암컷과 수컷이 결합해야 하오. 사람도 이런 메커니즘에서는 다를 게 없소.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도 근본 원리에서는 똑같다 하오. 생명의 근본이 음양의 결합이라는 동양사상과도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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