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7)
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신학자가 되고 신학자로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소여성(所與性)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은혜이다. 신학자가 신학자 될 수 있는 것은 과격하고 근본적인 놀라움에 의한 것이다. 신학자는 이 은혜를 수용한 사람이며, 이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신학활동을 한다. 또한 이 은혜의 수용자는 다만 자신만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즐기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지 못한 사람은 신학에서 손을 떼고 하나님에 대한 놀라움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놀랄 필요가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6)
신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엄습하는 놀라움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이 놀라움은 인간을 놀라움으로 몰아넣고 배움을 강요한다. 신학에서 신학자가 어느 날 배움을 끝내고 비상한 것이 평범한 것으로, 새로운 것이 옛 것으로 되어버리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신학은 낯선 것을 결코 지배할 수 없다. 만약 누가 이 낯선 것을 지배한다면 그는 신학을 아직 착수하지 않았거나 이 신학 하는 것으로부터 이미 벗어난 것이다. 신학의 건전한 뿌리인 이 놀라움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신학의 대상은 집안에서 사용하는...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5)
누구든지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Verwunderung)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고 계속 강건해져야 한다. 얼마동안 놀라움을 경험했고 지금은 아무 놀라움도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 놀라움의 경험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곤란하다. 이러한 놀라움의 경험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신학자라고 한다면 그는 신학 이외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76쪽) 바...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4)
성령은 전제로서의 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성령을 전제하는 신학은 비영적인 신학에 불과하다. 성령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와 신학에게 자유롭게 은혜를 베푸시는 생명력이다. 이처럼 비영적인 신학을 돕는 분은 오직 성령뿐이다. 성령은 신학으로 하여금 그때마다 신학이 만들어 낸 전제들의 비참성에 대하여 의식케 하고 인식케 한다. 따라서 교회공동체와 신학은 항상 새롭게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려면 “창조자 성령이여 어서 오시옵소서.”,(Veni, creator Spiritus!) 그리고 “오시옵소서 오시...
고난주간을 보내며(6) [2]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저녁 때 무덤에 묻히셨소. 최소한의 장례절차도 밟지 못했소. 왜냐하면 금요일 저녁부터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일단 안식일이 시작되면 시체를 움직이는 일은 금지되오. 그 안식일에 예수님의 시체도 무덤에 갇혀 계신 거요. 죽음의 세계요. 가사(假死)가 아니라 실질적인 죽음이오. 메시아가 우리와 똑같은 죽음에 떨어졌소. 죽음을 보통 영원한 안식이라고 말을 하오. 부분적으로 옳기도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오. 모든 책임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
고난주간을 보내며(5)
오늘은 성(聖)금요일이오.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오후 3시에 운명하셨소. 십자가 처형이라는 게 보통 끔찍한 일이 아니라오. 손바닥에 못을 치오. 거기서 피와 체액이 흘러나와 죽을 때까지 매달려 있어야 하오. 보통 건장한 남자는 일주일 정도 매달려 있고, 특별한 경우는 보름 동안 매달려 있기도 하오. 일벌백계의 뜻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걸 보게 하기 위해서 공개 처형을 하는 거요. 죽은 뒤에도 매장하지 않소. 시체를 파먹는 포식 조류들이 와서 먹지 않겠소? 예수님이 6시간 만...
고난주간을 보내며(4)
오늘은 목요일이오. 고난주간의 목요일에 예수님에게 일어난 큰 사건은 세 가지요. 1)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셨소. 2) 겟세마네 동안에서 기도하셨소. 3) 대제사장이 보낸 사병(私兵)들에게 체포당하셨소. 각각의 사건이 다 예수님의 운명에서 결정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인류의 운명에서도 결정적인 것이었소. 그대는 어떤 이야기에 관심이 더 많소? 두 번째 이야기를 하겠소.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는 동산에서 기도를 하셨다 하오. 자세한 이야기는 그대가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줄이겠소. 우리의 궁금증...
고난주간을 보내며(3)
고난은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며칠 전에 말했소. 선천적으로 장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사업이 망하거나 결혼에 실패할 수도 있소. 목사들의 경우에는 목회를 실패할 수도 있소. 제삼세계 어린이들 중에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많소. 그 이외에 크고 작은 고난과 시련이 우리 자신과 주변에 그치지 않소. 사람들은 대개 이런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가는 것으로 평생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이런 어려움을 피해갈 수는 없소. 애...
고난주간을 보내며(2)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그대가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기는 어려울 거요. 이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 교리가 비슷하오. 칭의론만 해도 그렇소. 사람들은 아예 죄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칭의라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소. 종교 경험이라는 게 그렇소. 그게 말로 전달이 된다면 간단하지만 그게 사실은 불가능하오. 억지로 사랑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오. 그래도 그리스도교 교리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려는...
고난주간을 보내며(1)
어제는 고난주일이었소. 사순절 마지막(여섯 번째) 주일이면서 종려주일이기도 했소.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교회는 금주 한 주간을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는 주간으로 보내오. 목요일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나눈 유월절 만찬과 제자들의 발을 씻긴 세족식이 있소. 그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도 있었소. 금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운명하신 날이오. 그리고 당일 매장되었소. 예수님의 한 생애가 마친 날이오. 토요일은 무덤 속의 하루였소. 돌아오는 주일은 부활절이요. 우리는 왜 예수님의 고난을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3)
이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시오 성부 성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이 성령은 창조주, 화해의 주, 계약의 주로서도 행동하셨고, 바로 이런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행동(창조, 화해, 계약)을 조명하는 힘으로 사람들 가운데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에도 거하시고, 거하셨고, 거하실 것이다. 성령은 저 운동하는 공기요, 움직여진 대기이다. 사람은 이 공기와 대기 속에서 이 성령에 의하여 인식된 자와 이 성령을 인식하는 자로서, 이 성령에 의하여 부름 받고 이 성령에게 순종하는 자요, 성령의 말씀에 의하여 증거 받...
원당일기(3) [2]
어제에 이어서 쓰오. 어제는 땅 이야기만 하다가 나무심기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소. 그런데 오늘도 역시 땅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은 건 웬 조화요. 땅, 흙이 내 몸의 원래 고향이래서 그런 것 같소. 시골의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유익은 흙과의 친밀성을 높여준다는 데에 있는 것 같소. 우리가 결국 돌아갈 세계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좋은 게 없소. 이런 말이 공자 왈로 들린다면 그대는 아직 젊은 거요. 나이가 들었으면 공감하실 거요. 어떤 이들은 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소. 시골생활이라는 게 어느 ...
원당일기(2) [6]
목사들은 토요일이 가장 피곤한 날이오. 주일보다 더 그렇소. 그날 주로 설교를 준비하기 때문이오. 요즘 나는 금요일에 설교를 작성하는 탓에 토요일에 좀 여유가 있게 지내오. 토요일에 넉넉한 기분으로 주일에 할 설교를 다시 검토하기도 하고, 성경을 읽거나 다른 책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밀린 원고를 쓰기도 하오. 지난 토요일(9일)에 ‘기독교사상’에 보낼 원고를 쓰기 위해서 아침을 먹은 뒤 영천 농가로 향했소. 마티즈를 끌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실수 묘목’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소. 차를 급하게 세워 그 묘묙원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2) [1]
이 일을 하시는 분은 주 하나님이신 이분, 즉 성령이시다. 물론 다른 영들도 있다.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지니는 선하게 창조된 영혼을 오류와 혼란으로 몰아넣는 악마적이고 허무의 영들이 있는데, 이런 영들은 추방되어야 한다. 이 모든 영들은 저 주권적 성령이 아니다. 이 중에 가장 훌륭한 영에 관해서도 그것이 있는 곳에 저 자유가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모든 영들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그것의 풍향이 어떠하며, 그것이 위로부터 불어오는지 밑으로부터 불어오는지, 무엇보다 저 신적인 자유 속에서 역사하여 인...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1) [4]
이 주권적인 힘의 성경적인 이름은 루아흐요, 프뉴마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움직여진 공기요 움직이는 공기, 입김, 바람 및 폭풍을 뜻하는데, 라틴어 Spiritus와 불어의 Esprit는 저 말의 본래 뜻을 잘 알려주지만 영어의 Ghost는 거의 귀신에 가까운 뜻을 나타내며 독일어 Geist는 저 단어의 본뜻이 지닌 역동적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말의 뜻을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후 3:17)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하나님 자신을 인간에게 개방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개방하...
대형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에게! [1]
그대가 출석하는 교회는 어느 정도의 크기요? 바람직한 교회의 크기를 계량화하기는 어렵소. 반드시 작은 교회가 좋다거나 큰 교회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소. 어떤 공동체든지 말씀이 선포되고 성만찬이 집행되면 그게 그리스도 교회요.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역할이 있소. 그렇지만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소. 먼저 자립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교회는 목사가 먹고 살 수 있는 다른 수입원이 있거나, 또는 남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영적 경지를 확보한 게 아니라면 건강한 교회로 ...
김동건 박사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 [7]
오늘은 그대에게 책 한권을 소개하겠소. 김동건 박사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요. 우리의 영성을 위해서 좋은 책 읽기보다 우선하는 게 없다는 사실은 내가 누누이 말한 것이오. 그대도 동의하리라 믿소. 내가 따로 서평란에 모아두기 위해서 쓴 글을 아래에 다오. 그것을 오늘 매일묵상에 대신하겠소. 좋은 주일을 맞으시오. 김동건 박사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 영남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동건 박사께서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했다. 부제는 “12개의 주제”다. 부제대로 이 책은 현...
교회는 하나다 [2]
그대는 교회가 무엇이라 생각하오? 왜 교회에 나가시오? 교회가 없으면 하나님이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시오? 한국교회 신자들은 교회에 대한 열정은 뜨겁지만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소. 다만 ‘우리’ 교회라는 사실에 열광하고 있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알아두시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요. 교회의 단일성은 교부시대부터 가장 중요한 교회의 특징으로 인정받았소. 우리나라 교회의 특징은 분열이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백오십 여개의 교단으로 분리되었다 하오. 같은 개혁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장로교가 ...
한기총 해체 주장에 부쳐 [8]
최근 기독교계에서 ‘한기총’ 해체 논의가 초미의 이슈라는 소식을 그대는 알고 있으신지. 한기총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약자요. 한기총은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기구로 알려져 있소. 이게 한국기독교의 현주소이고, 비극적인 현실이기도 하오. 원래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기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약칭 ‘교회협’이오. 영어 명칭은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이고, 보통 약칭으로 이니셜을 따서 NCCK라고 부르오. 교회협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깊이 연대하면서 교회 운동과 선교사역을 감당하...
원당일기(1) [4]
두 딸이 집을 떠나면 들어가 살 작정으로 작년에 시골집을 하나 마련했소. 경북 영천시 북안면 원당리 113-2번지요. 시골이라서 땅값은 얼마 하지 않소. 판넬 조립식으로 16평의 집을 지었소. 아직은 가서 살지 못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글을 쓰거나 마당 손질을 하고 있소. 원래 집이 있던 터라고 하는데, 우리가 땅을 구입할 때는 아무 흔적도 없었고, 이웃집의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었소. 동향 언덕배기에 자리한 땅이오. 바로 앞과 왼편에 집이 한 채 씩 있고, 오른 편은 숲이고, 뒤편은 산이오. 숲과 산이 마음에 들어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