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하루와 소중한 하루! [4]
그대는 오늘 하루 뭐 하며 지냈소? 공장에 나가서 일했을 수도 있고, 학교에 가서 배우거나 가르칠 수도 있고, 직장을 구하려고 알아보는 중인지도 모르고, 달콤한 연애를 했는지도 모르겠소. 대박을 꿈꾸면서 사업을 구상하거나 매출을 올리려고 부하 직원들을 닦달했을 수도 있소. 가정에서 청소하고, 아이 보고, 밥 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르오. 다 각각의 하루였소. 그런 하루가 쌓여서 한 달이 되고, 그런 한 달이 쌓여서 일 년, 그런 일 년이 쌓여서 한 평생이 되오. 그렇다면 결국 하루의 일상이 한 평생이라는 말이 ...
설교공부에 대해(3) [1]
지난 주일에 서울샘터교회를 방문한 어떤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소. 그분은 오랫동안 다비아 사이트의 회원이셨소. 그분이 하는 말이 정 목사는 설교를 진행하면서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 질문이 바로 자기가 하고 싶었던 거라서 설교에 관심이 간다는 거요. 일반 신자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나에게는 놀라웠소. 질문보다는 정답을 원하는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행태와 달랐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내 설교의 핵심을 잡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소. 나는 설교자가 답을 주기보다는 청중들을 성서텍스트의 세계 안으로 안...
설교공부에 대해(2) [1]
앞서의 글에서 설교는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소. 그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소. 공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로 들리면 곤란하오. 설교 공부가 왜 필요 없겠소. 다만 그것을 기술이나 방법론의 문제로 여기지 말라는 뜻이었소. 설교만이 아니오. 모든 공부는 ‘지시하는’ 진리에 영혼을 여는 일이오. 진리가 지시한다는 말은 진리 자체가 가르친다는 뜻이기도 하고, 진리가 계시된다는 뜻이기도 하오. 성서텍스트 자체가 말을 한다는 뜻이오. 설교자의 첫 걸음은 바로 성서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오. 그대는 설교를 하는 사...
설교공부에 대해(1) [3]
9월12일 자로 알림판 메뉴에 올린 ‘설교공부모임’ 꼭지 글을 그대도 읽었을 것이오. 혹시 궁금한 게 있소? 사실 설교를 주제로 하는 모임은 목회자들 세계에서 흔한 거요. 이미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설교학을 공부하고, 목회 현장에서도 설교 세미나를 접할 기회는 많소. 그런 모임에 쫓아다니기가 귀찮을 정도로 널리고 널린 게 설교공부 모임이오. 이런 마당에 내가 또 다른 모임을 준비하는 이유가 뭐요? 이전의 모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번 모임이 전혀 새로워야만 말이 되는데, 이 두 가지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소. 이전의 모...
<복음과 상황> [4]
한국에도 기독교 잡지가 꽤 되오. 내가 그쪽으로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정확한 정보를 줄 수는 없소. 대략적인 것만 말하리다. 우선 각 교단에서 나오는 잡지가 있소. 우리나라에는 교단도 많으니 당연히 잡지도 많소. 어떤 데서는 월간지로, 다른 데서는 격월간지로 나오오. 감리교회의 격월간지 <목회와 강단>에 나는 금년 한 해 동안 6편의 원고를 기고했소. 초교단적인 배경의 잡지도 제법 되오. 가장 전통이 오래된 잡지는 <기독교사상>이오. 수년 전에 거 잡지에 내 졸고가 4년 가까이 연재되었소. 실명 설교비평이오. 그 시절은 내 ...
청소를 하며...
그대는 집안 청소를 자주 하시오? 그리고 깨끗이 하시오? 나는 청소에 게으르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데, 대충 하오. 집안이 좀 지저분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소. 물론 집안을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치우면 기분이 좋긴 하겠지만, 그것도 따지고 벼면 별 거 아니오. 깨끗하다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다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겠소? 지금 우리는 너무 깨끗한 게 오히려 탈인 것 같소. 어느 정도는 흐트러진 공간에서 먼지와 함께 사는 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오. 내가 오늘 그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
북한 돕기의 전제? [1]
그대도 북한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는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거요. 그것은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된 문제요. 근 20년 동안 그들은 생존에 급급했소. 그들에 비해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살고 있는 남한이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웬만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모두 인정하고 있소. 여기에는 이념의 차이도 없소.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 않소. 문제는 북한 돕기의 전제 여부에 있소. 어떤 이들은 북한이 일단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오. 지난 정권 10년 동안, 소...
시가 우리를 건드린다
어제는 김응교 시인이 소개한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 전문을 그대에게 읽어드렸소. 내게 능력만 있다면 저 시를 해석해주련만 그게 안 되오. 성서는 해석이 되는데 시는 해석이 안 된다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오. 내 수준에서 해석하라면 해석 못할 것도 없소. 그러나 시의 깊이에 들어가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해석이라면 하지 않느니만도 못하오. 1연 6째 줄부터 나오는 내용을 먼저 읽어보시오. 아니다. 그건 들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며 침묵도 아니었어.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
그대가 나를 건드렸어, 톡톡 [7]
혹시 그대는 김응교 시인을 아시오? 나는 신학대학교 학부에 다닐 때부터 그분의 시와 글을 읽었소. 뭘 알고 읽은 거는 아니고,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어서 그렇게 폼을 잡고 있었소. 아마 그분이 크게 뇌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오. 투병일기 비슷한 것을 읽은 것 같소. 다 옛날이야기요. 그런 젊은 시절이 좋은 것은 책읽기에 빠져들어 간다는 것이오. 김응교 시인이 금년 초부터 <기독교 사상>에 글을 연재하고 있소. 그분의 독특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시에 대한 해설을 하오. 이번 달에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동정녀 문제에 대해 [2]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내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이 문제가 아직도 한국교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오. 남자와의 성관계 없이 마리아가 예수님을 출산했다는 보도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사도신경에서 명시적으로 거론되고 있소. 유감스럽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마가복음과 요한복음, 그리고 대다수 신약의 서신들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소. 언급 유무로 이 사실을 판단할 수는 없소. 거기에는 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속사정이 숨어 있기 때문이오. 그것에 대해서는...
부음 광고 [6]
9월3일자 조간 한겨레신문 2면 하단에 옥한흠 목사님의 부음 광고가 한 면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큼지막하게 났소. 2010년 9월2일 오전 8시43분에 소천 하셨다는 내용이오. 아마 10개에 이르는 중앙지 모든 신문에 광고가 나간 게 아닐까 생각하오. 이미 옥 목사님의 별세 소식은 긴급 뉴스로 나와서 다 알고 있었지만 이런 광고 덕분으로 장례절차에 관한 것까지 다 알게 되었소. 빈소, 장례예배 일시, 장지, 하관예배에 관해서, 그리고 유족관계와 장례위원 목록이 길게 나왔소. 고문, 장례위원장, 공동장례위원장, 대략 국내외 8백 ...
보수주의 [2]
그대는 보수적인 사람이오, 아니면 진보적인 사람이오. 사람 자체가 보수라거나 진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소. 사람은 그냥 사람일 뿐이오. 다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서 보수와 진보로 분류될 수 있소. 그런데 사람이 늘 생각만으로 사는 건 아니오. 감정도 있고, 심리도 있고, 의지도 있소. 더 깊은 곳에는 영성이 있소. 이런 여러 요소 중에 하나만 뚝 잘라서 사람을 판단하기는 어렵소. 그런 모든 것들을 통으로 봐야만 사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거요. 어느 한 요소가 나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통하는...
‘아리에티’를 찾으며... [2]
어제는 모처럼 그대에게 영화 본 이야기를 했소. 옛날에는 사람들이 추석이나 설날 등의 명절에 극장에 많이 갔소. 티브이도 드물고, 평소에 돈도 없이 지내다가 명절에는 돈도 생기고 하니 주로 극장에 갔소. 요즘은 국내외 여행을 많이 가는 것 같소.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핵가족의 구조화되고 보니, 명절 풍속이 많이 달라지고 있소. 어제 본 영화의 느낌이 강해서 오늘도 한 마디 더 해야겠소. 키가 10 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소인 소녀 아리에티는 호기심이 많소. 별장의 마루 밑에서만 지내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진 탓인지 밖으...
‘마루 밑 아리에티’ [3]
그대는 오늘 추석 연휴 첫날에 어떻게 보내셨소? 나는 오늘 오후에 아내, 두 딸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았소. 기획과 각본은 그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이고, 원작은 메리 노튼이라고 하오. 원제는 “마루 밑 바오우어즈”라 하는데, 바오우어즈가 사람인지 잘 모르겠소. 감독은 하야오가 직접 후계자로 지명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요. 원작자인 메리 노튼이 이름을 보아하니 일본 사람이 아닌 것은 알겠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소. 원래 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아이들이나 보는 영화로 생각했었는데,...
돈 안 드는 삶! [3]
어제 설교 “우리의 주인은 한 분이다!”에서 못 다 한 말을 오늘 보충하고 싶소. 돈 안 드는 삶의 영역을 확대하고, 거꾸로 돈 드는 영역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소. 돈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니라 돈을 다스리는 삶을 가리키오. 그게 쉽지는 않소. ‘돈이 웬수’라는 말도 있소.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우오. 이수일과 심순애의 애달픈 사연도 역시 돈이 문제였소. 여자는 사랑에 기울어지오, 아니면 돈에 기울어지오? 요즘의 세태는 더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고 있소. 돈을 많이 벌면 유능한 사람으로, 못 벌면 무능한 사람으로 간주되오....
주일을 기다리며
그대는 교회에 다니오? 주일을 기다리는 쪽이요, 아니면 피하는 쪽이요? 당연히 기다리는 쪽일 거요. 그리스도인이 주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불행한 일이오. 불행한 일들이 드물지 않는 것 같소. 주일에 나갈 교회가 없거나 교회에 나가봐야 재미도 없을 경우가 그렇소. 교회가 주변에 지천으로 깔렸는데도 나갈 교회가 없다는 건 나도 직접 경험해 보았소. 교회를 맡지 않고 있을 몇 달 동안 여러 교회를 순회했었소. 대개 실망했소. 예배 분위기가 일단 경건하지 않았고, 예배 순서도 영적인 긴장감과는 관계가 없었소. 설...
<길은 광야의 것이다>
오늘은 그대에게 시 한편을 읽어주겠소. 백무산 시인의 시집 <길은 광야의 것이다>(창작과비평사, 창비시선 182)의 제호로 채택된 ‘길은 광야의 것이다’라는 제목의 시요. 내가 시를 해설할 능력이 없으니 그대가 알아서 새기시구려. 그가 왜 길을 광야라고 했는지를 한번 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소. 광야는 구약 신앙의 중심 개념이기도 하오만 백무산이 그것을 구약에서 따온 것은 전혀 아니오. 얼마를 헤쳐왔나 지나온 길들은 멀고 아득하다 그러나 저 아스라한 모든 길들은 무심하고 나는 한 자리에서 움직였던 것 같지가 않다 가야 할...
죽는 순간 [3]
그대가 젊다면 죽음을 아직 실감하지 않을 거요. 아무리 젊다고 해도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실제로는 죽음과 상관없는 게 아니오. 죽음은 일상의 문제요. 오늘의 문명은 우리를 속이고 있소. 우리에게 죽음이 없는 것처럼, 거리가 먼 것처럼, 영원히 살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속이고 있소. 요즘 나는 죽는 순간의 느낌이 어떨지 종종 상상하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습하는 것일 수도 있소. 사는 것도 벅찬데 죽음을 왜 준비하고 연습하느냐고 묻고 싶소? 그것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소. 죽음이 아주 가까워졌을...
천안함, 어찌할 것인가?
9월13일에 천안함 사고에 대한 정부의 최종 조사보고서가 나왔소이다. 그 보고서를 직접 읽지는 못했겠지만 매스컴이 전하는 간략한 내용은 그대도 알고 있을 거요. 총괄하면 천안함이 북한의 잠수정이 쏜 어뢰에 의해서 침몰 당했다는 것이오. 지난 6월20일에 발표한 중간 조사에서 진전된 내용이 거의 없소이다. 중간 조사 발표 후에 쏟아진 의문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아무 것도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창작과 비평>,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서프라이즈 등을 보면 알 것이오. 이번 ...
삶은 공평하다 [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을 정의로운 분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이상한 구석이 많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냥 방관하는 게 아니라 직접 다스리신다면 왜 이렇게 불공평하냐, 하는 질문이오. 그걸 여기서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소. 어떤 아이들은 부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어떤 아이들은 가난뱅이 부모 밑에서 태어나오. 아무리 노력해도 삶이 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모든 게 술술 잘 풀리는 사람들도 있소. 똑같은 한민족이지만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풍요롭게 살고 있소. 남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