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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34) [1]

  • Aug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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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는 구조적으로 볼 때 일용할 양식을 중심으로 앞에 세 항목이 나오고 뒤로 세 항목이 나오오. 앞의 세 항목은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이고, 뒤의 세 항목은 사죄, 시험, 악이오. 앞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있소. 일용할 양식은 더 구체적으로 사람의 것이오. 이런 주기도의 구조로 볼 때 기도는 우선 하나님이 드러나는 내용으로 시작해야 하오. 우리의 교회생활에서 이런 기도를 만나기는 쉽지 않소. 거의 모든 기도가 개인의 간구에 떨어져 있다는 말이오. 기도를 자기에게 소용...

주기도(33)

  • Aug 21, 2010
  • Views 2294

-일용할 양식(3)- 일용할 양식과 관계된 두 번째 이야기는 성만찬이오. 어제는 오병이어에 대해서 말했소. 일용할 양식, 오병이어, 성만찬 이 세 가지 모두 먹는 이야기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먹는 이야기가 제법 많소. 심지어 예수님을 가리켜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는 평판도 있었다 하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그런 평판이 따라다녔다는 게 이상하지 않소? 이상할 게 하나도 없소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삶을 누리셨소. 다른 게 하나도 없었소. 그는 참 인간(vere homo)이셨소. 먹고 배설하는...

주기도(32)

  • Aug 20, 2010
  • Views 2363

-일용할 양식(2)- 일용할 양식과 연관된 복음서 이야기는 두 가지요. 하나는 오병이어이고, 다른 하나는 성만찬이오. 오늘은 오병이어를 보겠소. 오병이어 사건은 너무 잘 알려진 탓에 여기서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성인만 5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하고 묻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소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니 당연히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오. 예수님을 그렇게 보는 것은 기독교 신앙...

주기도(31)

  • Aug 19, 2010
  • Views 2264

-일용할 양식(1)- 주기도를 주제로 한 매일 묵상을 시작하면서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언급했다는 걸 그대도 기억하실 거요. 특히 남한이 몇 년 치씩 먹을 걸 쌓아놓은 채 일용할 양식이 없는 북한을 모른 척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소. 이런 태도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볼 수 있소.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부자의 문지방에 기대서 얻어먹고 살다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하오.(눅 16:19-31) 어떤 목사는 나사로는 하나님을 잘 믿었고, 아브라함은 믿지 않아서 그...

주기도(30) [1]

  • Aug 18, 2010
  • Views 2322

-당신의 뜻(3)-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오. 기도 무용론은 기독교 안에서 설 자리가 하나도 없소. 그걸 전제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기도가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것이오. 그런 공부 없는 기도는 결국 외식과 중언부언으로 빠질 수밖에 없소. 지금 한국교회의 예배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도를 지나치게 자유기도로 드린다는 것이오. 그것의 장점도 있소. 성령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오. 내가 보기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소. ...

주기도(29) [1]

  • Aug 17, 2010
  • Views 2214

-당신의 뜻(2)- 지금 우리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주기도의 내용을 함께 생각하고 있소. 솔직하게 말하시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하겠소? 이런 질문이 이것 자체로는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오. 아니 내 뜻은 우리가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못하오. 여기 수능을 앞 둔 학생이 있소. 그는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소. 그게 자신의 뜻이오. 그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아서 좋은 대...

주기도(28) [1]

  • Aug 16, 2010
  • Views 2060

-당신의 뜻(1)- 주기도에서 하나님을 위한 간구는 세 가지라고 앞에서 설명했소.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그리고 당신의 뜻이오. 당신의 뜻(쎌레마 수)에는 물론 하나님의 뜻이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가장 원형적인 기도는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드린 기도라 할 수 있소. 복음서기자들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라는 곳에서 기도를 드리셨소. 얼마나 치열하게 기도를 드렸는지, 그가 흘린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보였다고 하오. 이 장면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소. 인류를 구원하...

주기도(27) [2]

  • Aug 15, 2010
  • Views 2209

-당신의 나라(7)-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배타적인 구원 통치라고 한다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냐, 하고 궁금하게 생각할 수도 있소. 일리가 있는 질문이오.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소. 우리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들 중에서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소. 태양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항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오. 인류가 지구에게 상당한 기간 존속하려면 태양이 계속해서 빛을 발해줘야 하오. 우리가 또 하나의 태양을 만들 수는 없다오. 촛불 한...

주기도(26) [2]

  • Aug 15, 2010
  • Views 2541

-당신의 나라(6)- 어떻소?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상이 그에게 넓어졌소? 또렷해졌소? 그렇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마시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오. 구원과는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성과는 연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림 감상과 비교해보시오. 윌리엄 터너의 그림 <Snowstorm>이 우리 앞에 있다고 생각하시오. 터너의 그림세계를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 중에서 누가 이 그림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겠소? 물론 전이해가 없다 해도 직관력만 있으면 그림을 ...

주기도(25) [1]

  • Aug 13, 2010
  • Views 2186

-당신의 나라(5)- 지난 이틀에 걸쳐 바르트의 글을 읽은 그대, 수고가 많으셨소. 우리가 애를 쓰면서까지 이런 신학자들의 글을 읽는 이유는 이런 글들이 신앙의 상투성에서 벗어나는데 약효가 가장 특별하기 때문이오. 일반적인 교회생활이나 개인의 경건생활은 바둑으로 치자면 동네바둑과 비슷하오. 바둑을 아무리 재미있게 둔다 하더라도 실력이 느는 건 아니오. 는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소. 신학자들의 글은 일류 프로기사의 바둑과 같소. 여기 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 나라>에서 몇 대목을 발췌 인용하겠소. 그 내용은 앞에서 ...

주기도(24) [1]

  • Aug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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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라(4)- 앞의 글을 읽어보니 어떻소? 바르트의 글을 감칠맛 나게 읽을 수 있다면 그대는 신학적으로 이미 어른이 된 거요. 신학의 거장인 바르트의 영성 안으로 들어간 것이니 말이오. 거꾸로 무슨 말인지 종잡기 힘들었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시오. 신학 석사 학위를 받은 이들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오. 어떤 이들은 본인의 신학적 사유가 모자란 탓에 이해하지 못하면서 바르트의 글을 별로 쓸모없는 것으로 매도하기도 한다오. 어리석은 소치요. 자, 이제 바르트의 글 두 번째 단락을 읽도록 하시오. 우리가 ...

주기도(23)

  • Aug 11, 2010
  • Views 2281

-당신의 나라(3)- 아래의 글도 특강 발제문에 들어 있는 건데, 바르트의 “주기도”(Das Vaterunser) 62-71 쪽의 내용을 발췌 번역한 것이오. 바르트의 글은 그의 독특한 신학적 착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소. 그래도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할 테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시오. 두 번에 나누어 싣겠소. 하나님 나라는 신약성서 안에서 볼 때 이 세상의 삶이며 목적이다. 그 삶과 목적이 바로 창조자의 의도와 부합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죄로 인해 발생하는 위협에 대항하는 방어물이며, 이 세상에 잠복해 있...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주일 [1]

  • Aug 11, 2010
  • Views 2284

돌아오는 주일(8월15일)이 성령강림절 후 12째 주일이면서, 동시에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주일'이라는 사실을 그대에게 전하고 싶소. 남한교회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북한교회를 대표하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지난 7월 하순 경에 아래와 같은 공동기도문을 발표했소이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교회는 가짜라고 주장하고 있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궁극적인 판단은 성령의 몫이오. 그들이 노골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비록 우리와 다른 교회 형태를 보인다고 ...

주기도(22)

  • Aug 10, 2010
  • Views 2343

-당신의 나라(2)- 아래는 특강 발제문의 두 번째 인용이오. 예수 사건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오. 이런 설명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지, 혹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오? 그 대답은 이 자리에서 하지 않겠소. 언젠가는 저저로 알게 될 것이라 믿소. 예수님의 축귀와 치유 사건도 하나님 나라와 직결된다. 축귀와 치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해방과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을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과학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성서시대...

주기도(21)

  • Aug 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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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라(1)- 주기도의 두 번째 간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여기서 ‘당신의 나라’(바실레이아 수)는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요. 하나님 나라는 앞에서 언급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깊이 연결되오. 하나님과 하늘은 동의어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그 하늘에 계신 분만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아버지이오. 하나님 나라는 그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요.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지난 7월20일 마산재건교회에서 특강을 했소. 발제문의 일부를 여기 옮길 테니 참고하...

주기도(20)

  • Aug 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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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이름(6)- 하나님의 이름은 존재론적으로 거룩하오.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소.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수도 없소. 그렇다면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무의미하거나 형식적이라는 말이 되는 거요? 아니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소. 일시적으로나마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오.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그렇소. 인류 역사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릴 것 없이 무지막...

주기도(19)

  • Aug 07, 2010
  • Views 2151

-거룩한 이름(5)-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거룩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소. 하나님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런 경험도 불가능할 거요. 거룩한 두려움은 낯선 것에 대한 경험이라고 앞에서 말했소. 하나님을 전적으로 낯선 이로 경험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만이 거룩하기 때문이라오. 이것도 이미 앞에서 언급했소. 하나님만이 거룩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소? 잘 들으시오. 사람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할 수 없소. 사람이 아무리 거룩한 태도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이 거룩해지는 건 아니오. 자기의 전 재산으...

주기도(18) [1]

  • Aug 06, 2010
  • Views 2545

-거룩한 이름(4)- 루돌프 오토라는 종교학자의 책 <Das Heilige>를 그대는 혹시 읽어보셨소? 내 기억으로는 분도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을 거요. 거기서 오토는 종교경험의 본질을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했소. 두려움이면 두려움이지 도대체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게 무슨 말이오. 내 둘째딸 이야기를 한 가지 하겠소. 그 아이가 첫돌인지, 두 살 때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만한 나이 때 이야기요.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소. 그 아이가 그 촛불을 바라보는 표정이 아직도 내 머리에서 잊히지 않소. 신기하고 놀랍...

주기도(17) [1]

  • Aug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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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이름(3) 앞서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겠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께는 이름이 없으며,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오. 여기서 말하는 ‘이름’은 오히려 하나님의 행위라고 보는 게 맞소.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내라는 명령을 내리신 그분의 행위가 그의 이름이오.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 행위가 하나님의 이름이오. 이 말은 하나님이 행위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오. 따라서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기도는 하나님의 행위가 거룩...

주기도(16) [1] [1]

  • Aug 04, 2010
  • Views 2069

거룩한 이름(2) 그대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만약에 이름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규정할 수 없으니 말이오. 하나님도 그분의 원래 이름은 아니고, 여호와도 이름은 아니오. 하나님에게는 이름이 있을 수 없소. ‘만사를 규정하는 현실성’(die alles bestimmende Wirklichkeit)을 우리가 어찌 규정한다는 말이오. 그냥 ‘주’라고 하든지, ‘당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 귀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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