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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15) [3]

  • Aug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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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이름(1) 주기도의 구체적인 첫 간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오. 고대인들에게 이름은 특별한 의미가 있소이다. 그 사람의 전체 인격과 권위를 담보하는 것이오. 여기서 ‘당신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가리키오.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그 권위가 그대로 드러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라 할 수 있소. 이것은 십계명의 삼 계명과 상통하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이런 구절을 실감나게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소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소. 하나는 우리에게 하...

주기도(14) [2]

  • Aug 02, 2010
  • Views 252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 대한 앞서의 설명을 통해서 그대는 하나님에 대한 표상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소? 이것을 잊지 마시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우리 신앙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오. 한국교회 신자들은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경험하기만 바란다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그대도 대충 알고 있을 거요. 단적으로 한국교회에 이단이 자주 크게 발흥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신앙적인 특성에 놓여 있다오. 인간에게는 종교심이 있으니까 단순히 열광적인 태도만으로도 무언가 깊은 신앙경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

주기도(13) [1]

  • Jul 31, 2010
  • Views 2379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초월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가리키오. 초월(超越)은 인간의 인식이나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오. 하나님이 초월적인 존재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온 것이오. 철학도 그런 개념을 말하오. 플라톤의 이데아는 초월적인 세계이자 능력이오. 이런 초월개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소. 기분 나쁜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별로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소.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들을 실증적으로만 계량하고 판단하는 세상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오....

주기도(12)

  • Jul 31, 2010
  • Views 2126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단지 두려움의 대상만은 아니었소. 하늘은 오히려 생명의 원천이기도 했소. 하늘로부터 모든 생명의 에너지가 내려오고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요. 이건 고대나 지금이나 똑같은 형편이오. 태양 에너지가 모든 생명의 원천이오. 태양 덕분으로 콩도 자라고, 밀도 자라고, 민들레도 자라오. 고대인들이 탄소동화작용은 몰랐겠지만 태양이 모든 식물이 자랄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소. 식물만이 아니라 동물도 태양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오. 이건 간단한 이야기요. 태양이 없으면 식물이 죽고, 식물이 ...

주기도(11)

  • Jul 31, 2010
  • Views 2192

다시 주기도의 첫 구절을 보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했소. 우리 생명의 보호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하오. 이게 무슨 뜻이오? 하늘이라니, 그 하늘이 어디요? 성서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관점은 그 글을 쓴 사람들이 처한 ‘삶의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오.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소. 어떤 어린아이가 “우리 집은 얼마나 큰지 몰라!”라고 했소. 실제로 그 집에 가보니 스무 평도 안 되는 집이었소. 비슷한 경우를 그대도 경험했을 거요. 어렸을 때 자라던 동네를 어른이 된 뒤에 가보면 생각과 전혀 다...

주기도(10)

  • Jul 30, 2010
  • Views 2420

아버지 표상이 보호자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기독교 영성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면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오. 하나는 우리의 삶이 아버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할 정도로 그 토대가 부실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사람에 따라서, 또는 상황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거요. 양쪽의 대답이 모두 가능하오. 어떤 사람은 잘난 척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말고 자기 주먹을 믿는다 하오. 액수가 늘어나는 저금통장과 주식, 그리고 부동산에 취미가 있는 현대인들은 주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이오. 어떤 사람은 매사를 불안...

주기도(9) [1]

  • Jul 28, 2010
  • Views 2466

헬라어 성경은 주기도를 이렇게 시작하오.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첫 단어가 ‘파테르’인데, 아버지라는 뜻이오. 이어서 ‘우리의’라는 인칭대명사가 나온다오. 독일어로 주기도를 Vaterunser(파터운저)라고 하오. 헬라어로 된 주기도 첫 단어를 독일어로 바꾼 것이오. 여기서 아버지는 무슨 의미겠소? 여성신학자들은 아버지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소. 아버지라는 단어는 남성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오. 그대는 하나님을 남성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정관념에 젖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소. 기독교 남성...

주기도(8)

  • Jul 27, 2010
  • Views 2282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점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오. 형제 관계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형제 관계의 삶에 들어가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힘들어 하고 있소. 주기도는 우리를 영적으로 힘들게 하려는 기도는 아니오. 실제로는 불가능한 삶을 무조건 추구하는 극단적인 이상주의로 몰고 가려는 것도 아니오. 형제 관계의 삶을 체념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척 위선을 피우라는 말도 아니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오. 그...

주기도(7)

  • Jul 26, 2010
  • Views 2602

세속사회에서 실제적인 형제 공동체는 불가능한 거요? 어제 묵상에서 나는 형제 공동체가 일반적인 게 아니라고 말했소. 엄격하게 말하면 형제 사이에도 경쟁심이 작동할 때가 많소. 가장 두르러진 예를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소. 카인은 시기심으로 동생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돌로 쳐 죽였소. 형제끼리도 경쟁의식이 잠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따르면 아들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연적으로 느낀다고 하니, 더 긴말이 어디 필요하겠소. 수도원이나 수녀원도 완벽한 ...

주기도(6) [2]

  • Jul 25, 2010
  • Views 3523

세계 교회가 모두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소. 기도한다는 것은 거기에 우리의 영혼을 담는 신앙행위요. 그 기도의 내용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기도 하오. 잘 보시오. 우리 아버지를 함께 부른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형제라는 말이오. 도대체 형제라는 것은 무슨 뜻이겠소?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도 형제, 자매라는 말을 흔하게 하니, 묻는 말이오. 이런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소. 실제로 마음은 형제와 자매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거리는 것 같소. 기독교 역사에는 이런 형...

주기도(5) [1]

  • Jul 24, 2010
  • Views 2394

우리말 주기도는 이렇게 시작하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헬라어나 영어, 독일어의 어순을 따르면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이라오. 주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요. 일반적으로 기도는 혼자 드리오. 예수님도 혼자서 미명 시간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를 드리곤 하셨소. 잡히시기 전날 밤에도 감란 산에서 혼자 기도하셨소. 아무도 하나님 앞에 우르르 몰려 갈 수는 없소. 단독자로 서야 하오. 그러나 주기도는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라 특별한 기도요. 기도의 전범이며, 진수라 할 수 있소.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모두...

주기도(4)

  • Jul 23, 2010
  • Views 2382

스텐리 하우어워스가 쓴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읽어주겠소. 이 기도에서처럼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참 하나님이 아닌> 어떤 신을 더듬어 찾는 것이며, 그런 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고, 그런 신을 ‘내가 필요한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님을 자기 형상대로 만들어 내려하고, 급기야 어떤 이들은 ‘사용자 중...

주기도(3) [1]

  • Jul 22, 2010
  • Views 2824

지난 이틀 동안의 주기도 묵상을 읽으면서 속으로 ‘그게 다는 아닌데...’ 하는 그대의 마음이 내게 전달되는구려. 일용한 양식에만 머물면 결국 오늘과 같은 세속사회에서 버텨낼 수 없는 거 아니냐, 하고 말이오. 옳소. 지금 우리는 한가롭게 일용할 양식 타령을 해도 좋을만한 처지가 아니오.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면 최소 10년의 양식은 비축해놓아야 하오. 노후 설계도 해야 하오. 우리가 수도원이 아니라 세속사회에서 산다면 문자의 차원에서 ‘일용할 양식’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소. 생각을 잘 하시오. ‘일용할 양식’이 세...

주기도(2) [2]

  • Jul 21, 2010
  • Views 2428

오늘 우리 모두는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기도를 드릴 마음이 없소. 생존의 위기를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오.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이제는 ‘well food’를 찾는 실정이오. 아무도 주기도의 저 대목을 절실하게 대하지 않소. 그렇다면 주기도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겠소? “우리에게 맛있고 열량 낮고 건강을 보장하는 양식을 주소서.” 이런 식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오. 이런 조건으로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소.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하지 않소? 그렇다면 기도는 영적인 차...

주기도(1) [1]

  • Jul 20, 2010
  • Views 3427

그대가 성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주기도를 일주일에 최소한 1번 이상은 드릴 것이오. 거의 매일 드리는 분들도 있을 거요. 주기도는 아주 특별한 기도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예수님이 알려주신 기도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소. 거의 모든 교회가 주일 공동예배에서 주기도를 드리오. 침례교회 중에서 어떤 교회는 사도신경은 암송하지 않지만 주기도만은 드리오. 그만큼 주기도는 세계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오. 8월27일부터 열리는 대구샘터교회, 서울샘터교...

근본주의(9) [3]

  • Jul 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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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어야겠소. 이 문제는 이렇게 토막글로 다루기에는 주제가 너무 무겁고, 예민하오. 정리한다는 의미로 세계교회에서는 소수에 불과한 근본주의가 한국에서는 왜 다수가 되었는지를 설명하겠소. 그것은 근본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소. 근본주의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는 신앙운동이라는 것은 앞에서 밝혔소.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을 인본주의 신학으로 규정하였소. 그 결과는 신학과의 단절이오. 근본주의는 나름으로 신학적인 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신학이라기...

근본주의(8) [1]

  • Jul 17, 2010
  • Views 2249

근본주의의 태동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언급했소. 극과 극은 통한다고, 인간 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필사적으로 막아보려던 근본주의는 또 다시 인간 중심적으로 흘러갔소. 이게 무슨 말인지 몇 가지 예를 들겠소. 쉴라이어마허는 현대신학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있소. 그의 활동 시기는 19세기 전반기요. 그가 강조한 것은 인간의 절대의존 감정이오. 그가 말하는 감정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감정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깊은 종교성을 가리키오. 그를 비판하는 한국의 근본주의는 ...

이정희 의원 [6]

  • Jul 16, 2010
  • Views 3834

7월15일에 민주노동당 새 대표로 이정희 의원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그대도 들었소? 이정희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두시오. 대한민국에서 최초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아닐까, 기대하오. 이건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기대요. 한국의 정서에서 여성 대통령은 앞으로 한 세대는 더 흘러야 될 거요. 박근혜 의원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자를 이기고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다면 당선됐을지도 모르지만, 박근혜 의원은 박정희라는 후광을 덧입고 있으니,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소.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

근본주의(7) [3]

  • Jul 15, 2010
  • Views 2752

사실 근본주의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앞에서 제임스 바가 제시한 근본주의의 세 가지 특징을 기억할 테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것을 말한 것뿐이지 그것으로 근본주의자들을 명확하게 구분해낼 수도 없소. 사람을 어떤 틀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오. 가장 큰 이유는 한 인격체가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오. 가정에서는 매우 인정이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는 비정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소. 어느 쪽의 행동이 그의 인격을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거겠소? 근본주의자들도 한쪽으로는...

나우엔의 기도 ‘고독’에 대해서

  • Jul 14, 2010
  • Views 2857

오늘은 그대에게 헨리 나우엔의 기도문 ‘고독’을 읽어드리겠소. 기도문이라기보다는 영적 단상이라고 해야 좋을 것이오. 일단 천천히 읽어보시오. 고독은 사랑에 목마른 우리 마음의 뜰입니다. 우리가 홀로 있어 열매 맺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쉼이 없는 우리 몸과 걱정 가득한 우리 마음의 고향입니다. 고독은 어떤 장소와 실제로 이어지든 아니든 우리 영적 생활에 불가결한 것입니다. 고독은 우리가 쉽게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정하고 걱정에 차 있기에 만족을 약속하는 눈앞의 것에 금방 마음을 빼앗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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