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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문명과 존재의 불안 [1]

  • Feb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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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문명과 존재의 불안 그대도 오늘 하루 햇살과 바람을 느꼈을 거요. 오늘 내가 경험한 햇살과 바람은 얼마나 감미로운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오. 오랜 만에 낙동강 앞에 섰었소. 그 기분을 아실 거요. 강이 앞에 있소이다. 어딘가에서 모인 작은 물방울들이 이런 강을 이룬 거요. 놀랍지 않소? 수십만 년, 수백만 년을 굽이굽이 내려오면서 자기 스스로의 길을 냈소. 장하지 않소? 오늘 내가 소속된 ‘대구경북 목회자 정의평화 실천협의회’는 낙동강 정비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기도회 및 생명평화 순례 모임을 열었소. 거기서...

하나님 나라(5) [4]

  • Feb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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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5) 오늘 그대에게 들려줄 판넨베르크의 글은 다른 때보다 조금 기오. 한 패러그래프를 몽땅 인용하는 탓에 그렇게 되었소. 인내심을 갖고 함께 들어보십시다. 하나님을 미래의 힘이라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이라는 말은 새로운 구체성을 획득한다. 우리가 ‘미래의 힘’이라고 말할 때 훨씬 더 현실적인 과거나 현재와 비교해서 무미건조하고 막연한 미래라는 개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공허한 세계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미래를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연구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래는 어느 정...

하나님 나라(4) [6]

  • Feb 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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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4)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를 미래에 속하는 현실성(reality)이라고 선포했다. 이것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대망의 한 전통적 관점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주장은 기본적으로 오고 있는 그의 통치에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이해가 새로운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의 통치와 그의 존재는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는 아직 존재의 과정에 놓여 있다.(75) 그대에게 꺼림칙하게 들리는 구절이 위 인용문에...

하나님 나라(3) [1]

  • Feb 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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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3) 하나님의 존재는 하나님의 통치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종교 철학의 언어로 말한다면 신들의 존재는 그들의 힘이라는 것이다.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은 유일의 힘이 모든 것을 통치한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신경의 제 1항을 해설하면서 루터는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신만이 참된 신이라고 말했다. 자기를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드러내시는 신만이 참되시다. 이것은 유한한 존재자들을 떠나서는 하나님이 하나님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다른 어느 누구 또는 어떤 것 없이도 지낼 수 있기...

하나님 나라(2) [1]

  • Feb 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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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2) 그대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소? 사실 그 이름을 알면 어떻게 모르면 어떻겠소. 다만 생존해 있는 개신교 신학자들 중에서 거장에 속한 인물이니 그대 같은 지성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저 이름쯤 알아둬서 나쁠 건 없소. 독일 슈테틴에서 1928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여든 두 살이 되는가 보오. 판넨베르크와 동시대를 살면서 쌍벽을 이룬 독일의 또 다른 개신교 조직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한국교회와 인연이 깊은데 반해서 판넨베르크는 그렇지 못한 ...

하나님 나라(1) [3]

  • Feb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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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1) 앞으로 당분간 기회가 닿는 대로 그대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을 걸겠소이다. 하나님 나라만큼 성서에서 중요하면서도 교회에서 오해되는 개념도 없을 거요.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이 결국은 하나님 나라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공간적인 차원의 천당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에서 오해되고 있다는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의 신앙도 깊이를 더해가지 않을까 생각하오. 바라기는 ‘하나님 나라’를 골치 아픈 것으로 여기고 미리 겁내거나 멀리...

재의 수요일 [10]

  • Feb 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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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그대, 오늘은 ‘재의 수요일’이라오. 성회(聖灰)수요일이라고도 부르오. 오늘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거요. 사순절(四旬節)은 부활절 전날부터 거꾸로 계산해서 주일을 뺀 40일 기간을 가리키오. 전통적으로 사순절에는 몇 가지 전통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과 연관된다오. 신자들이 교회에 가서 재를 이마에 바르는 거요. 그대여, 우리는 모두 재로 돌아가오.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어느 누구도 가릴 것 없이 우리는 똑같이 먼지로 돌아가오. 여기에는 왕으로 살았든 거지로 살았던 아무런...

하나님의 영광 [2]

  • Feb 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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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 그대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거요.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더라.”(사 6:3b) 가득하다고 말했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했소.(고후 4:6)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의 탄생 전승에서 다음과 같은 천사들의 합창을 전하고 있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눅 2:14a) 그 외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관한 구절을 성서에서 쉽게 찾을 수 있소이다. 그대는 성서기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뭐라고 생각하시오?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7]

  • Feb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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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대는 우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지, 즉 더 확실한 것인지를 질문하고 싶소. 너무 초보적이거나 유치한 질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소. 말처럼 보이시오? 그래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하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소. 첫째, 이 질문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아주 오랜 전부터 인류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았던 것이라오. 인류의 오래된 전통을 우습게 보는 건 경솔한 태도요. 둘째, 오늘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과도하게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소. 우리는 너나할...

영혼의 안식(2) [4]

  • Feb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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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안식(2)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소. 어제 말한 영혼의 안식은 도대체 무엇이오? 이걸 설명하려면 기독교 신앙 전체를 설명해야 하오. 그렇지 않소? 우선 영혼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하오. 영혼을 말하려면 영혼을 창조한 분을 먼저 말해야 할 거요. 안식은 말 그대로 참된 쉼이오. 참된 쉼은 곧 구원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또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야 할 거요. 구원은 또 무엇과 연관되겠소? 기독교에서는 왜 칭의를 구원의 토대라고 주장하는지도 설명해야겠소. 영혼의 안식으로부터 기독교 신앙 전반으로 우리의 대화가 확장된...

영혼의 안식(1)

  • Feb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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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안식(1) 그대는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보내셨을 줄로 아오. 우리는 모두 즐거움을 찾고 있으니, 당연히 즐거워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문제는 간혹, 또는 자주 즐겁지 않게 산다는 거요. 즐겁지 못한 이유는 찾아보면 거의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을 거요. 그런 거야 다 알고 있는 것이니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소. 즐겁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일상을 심심하게 생각한다는 게 아닐까 생각하오. 이게 정확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오. 심심한 걸 해소하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걸 찾고 ...

오래된 미래 [7]

  • Feb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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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그대는 아마 위 제목을 들어보셨을 거요. 안 들어봤어도 괜찮소. 이제 내가 조금 소개할 터이니 듣기만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오. 사실은 책 제목이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라는 스웨덴 출신 여성학자가 16년간에 걸쳐 티베트의 라다크를 체험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오. 그녀가 1975년에 라다크를 처음 방문했다는데, 런던 대학교 동양 언어학과의 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오. 잠시 탐방하려다가 아예 눌러 않은 셈이지. 달라이 라마가 서문을 썼소. 서문을 적은 날짜를 보니 1991년 2월26일이오. 우리나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9]

  • Feb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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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이 질문은 사람이 사유(思惟)하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된 것이오. 너무 진부한 질문처럼 들릴지 모르겠소. 아니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에게는 없소이다. 이런 질문을 그치는 날,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요. 그런 질문은 배부른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요. 그런 사람과는 뭐,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소. 사람이 배불리 먹으려고 사는 거는 아니지 않소. 조금 덜 먹을 생각만하면 먹는 문제로 우리 삶이 소진되지 않아도 좋을 거요. 더구...

비오는 날 [6]

  • Feb 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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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그대, 무엇 하오? 요즘 며칠 동안 비가 오오. 늦은 겨울비요. 이제 추위가 끝났나보오. 비오는 날은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만드오.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은 대개 비오는 날과 연관해서 사연이 많소. 각자 따로 우산을 갖고 나왔지만 함께 붙어서 걸을 때는 한 개로 충분하니,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애틋하겠소. 초등학교 시절도 비오는 날은 낭만적이오. 가사가 정확한지 모르겠구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우산, 파란우산, 찢어진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오가던 시절이 그립고 그리운 오...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며 [11]

  • Feb 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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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며 지난 2006년 3월20일에 ‘마가복음 매일묵상’을 쓰기 시작해서 2010년 2월10일로 끝냈습니다. 40일이 모자란 4년 동안 매일 마가복음을 붙들고 씨름한 셈입니다. 대학 4년의 세월과 비슷하군요.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실제 느낌은 한 순간입니다. 아마 죽을 때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요? 마가복음이 끝났으니 이제 무엇을 써야할까요? 성서묵상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구약의 예언서나 신약의 서신을 선택해도 좋긴 하지만, 이제는 성서의 틀을 벗어나서 좀 편하게 글을 쓰고 싶은 거지요. 일...

2월9일 마가복음 후기(19)

  • Feb 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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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9일 마가복음 후기(19)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16:20) 어제 묵상의 결론에서 하나님과 동일한 심판의 권능이 예수님에게 주어졌다는 초기 기독교의 신앙을 변증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실을 마가복음 공동체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흔적을 위 20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초창기에는 거부하는 사람들...

2월8일 마가복음 후기(18)

  • Feb 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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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8일 마가복음 후기(18)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16:19) 승천에 이어서 ‘하나님 우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신자들은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에게도 우편과 왼편이 있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이런 표현들은 모두 종교적 메타포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에게 상대적 개념에 불과한 우편과 좌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된 이 세상의 위치 개념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 기자...

2월7일 마가복음 후기(17)

  • Feb 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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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7일 마가복음 후기(17)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16:19)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예수님에게 일어난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궁극적인 생명 사건입니다.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들도 그런 부활 생명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죽음 너머의 생명을 주는 존재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궁극적 생명이라는 초...

2월6일 마가복음 후기(16) [2]

  • Feb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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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6일 마가복음 후기(16)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16:19) 이제 우리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단락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매일 묵상의 방식으로 따라오다 보니 벌써 이런 순간이 왔군요.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이 순식간에 느닷없이 오겠지요. 막 16:19절과 20절은 마가복음의 결론이라 말해도 좋습니다. 19절은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것이고, 20절은 제자들의 복음 전파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마가복음만이 아니라 신약성서 전체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

2월5일 마가복음 후기(15) [1]

  • Feb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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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5일 마가복음 후기(15)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18) 다섯 번째 표적은 치유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치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와 장애인을 고치셨습니다. 사도들에게도 그런 일들이 흔히 일어났습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30)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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