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Views

10월27일 십자가 아래서(1)

  • Oct 26, 2009
  • Views 3019

2009년 10월27일 십자가 아래서(1)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15:23)(15:24)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히기 전에 몰약이 든 포도주를 받았지만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몰약은 감람과(橄欖科) 나무에서 얻어지는 식물기름입니다. 예수의 탄생 전승에 따르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가져온 선물 목록에 이 몰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당시에 몰약은 다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통증 완화제입니다. 몰약을 포도주에 탔으니 이런 효능이 배가되었겠지요. 유대의 귀부인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10월26일 골고다를 향해 [1]

  • Oct 25, 2009
  • Views 2606

2009년 10월26일 골고다를 향해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15:22) 골고다는 아람어 골골타(golgolta)에서 왔습니다. 그 뜻은 끔찍하게도 ‘해골의 곳’이라고 하는군요.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명칭은 해골과 비슷한 형태의 바위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오리게네스, 에피파니오스, 히에로무니스 같은 교부들은 이 이름을 아담의 해골이 묻힌 곳이나 머리 잘린 사람들의 곳과 연관시키기도 했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로 가는 장면을 상상...

10월25일 구레네 사람 시몬(2)

  • Oct 24, 2009
  • Views 5316

2009년 10월25일 구레네 사람 시몬(2)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15:21) 알렉산더와 루포는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장면에서 굳이 그들의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요. 아마 훗날 시몬은 기독교인이 되었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그 두 아들도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몬은 구레네 사람이라고 합니다. 구레네(Kyrene)는 북아프리카 케레나이...

10월24일 구레네 사람 시몬(1)

  • Oct 23, 2009
  • Views 2941

2009년 10월24일 구레네 사람 시몬(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15:21) 막 15:21-41의 내용이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전체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서로 중복되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을 못 박았다는 이야기가 24절과 25절에 중복됩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에게 마실 것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23절과 36절에서 중복됩...

10월23일 자색 옷(7)

  • Oct 22, 2009
  • Views 1990

2009년 10월23일 자색 옷(7)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15:20) 예수님의 수난 전승을 육체적 고통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을 영육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아무런 고난을 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체성에 대한 부정은 초기 기독교만이 아니라 중세를 거쳐 지금까지 계속 기독교 영성에 잠재되어 있는 가현설입니다. 가현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일방적...

10월22일 자색 옷(6) [2]

  • Oct 21, 2009
  • Views 2328

2009년 10월22일 자색 옷(6)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15:20) 십자가 사건에서 고통이 핵심이 아니라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언급을 보충해서 설명해야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로마 군인들에게 당한 가혹한 폭행 장면을 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십자가 처형 장면도 육체적인 고통과 직결해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제 잠시 말씀드렸듯이 마가복음 기자는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했다고 말할 뿐이지 채찍질에 대해서는 직접 거론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0월20일 자색 옷(5) [4]

  • Oct 19, 2009
  • Views 4797

2009년 10월20일 자색 옷(5)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15:20) 이제 군인들의 조롱이 끝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사형수에게 가하는 모욕 행위를 그저 기계적으로 따른 것뿐입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았을 겁니다. 이게 비극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행하는 것을 판단할 줄 모릅니다. 특히 구조적인 악에서는 무기력합니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노예제도가 그렇습니다. 노예를 부린 농장 주인들은 모두 믿...

10월19일 자색 옷(4) [1]

  • Oct 18, 2009
  • Views 2274

2009년 10월19일 자색 옷(4)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15:19) 군인들의 조롱이 계속됩니다.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이 갈대는 군인들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준 것이었습니다.(마 27:29) 그것은 왕을 상징하는 지팡이였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가한 조롱은 아주 극적입니다.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누가 감히 왕의 머리를 왕의 지팡이로 칠 수 있습니까? 보통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침을 뱉는다는 건 상대방을 인간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

10월18일 자색 옷(3)

  • Oct 17, 2009
  • Views 1882

2009년 10월18일 자색 옷(3)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15:18) 군인들은 억지로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운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사형수에게 가하는 퍼포먼스입니다. 조롱이지요. 자신들이 죽여야 할 대상을 조롱해야만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겠지요. 그들이 건넨 평화의 인사는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곧 십자가에 달릴 사형수를 향한 연민에 불과합니다. 말뿐인 평화입니다. ‘평화’가 지금 오용되고 있는 중입니다. 로마는 로마의 평...

10월17일 자색 옷(2)

  • Oct 16, 2009
  • Views 3552

2009년 10월17일 자색 옷(2)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15:17) 군인들은 총독 관저 안으로 예수님을 끌고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못 박는 작업은 그렇게 많은 군인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형수에게 가하는 집단적인 폭행이 일종의 세리모니로 준비되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에게는 가학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심리입니다. 이것은 개인보다는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일본과 한국에 사회적 문제로 종...

10월16일 자색 옷(1)

  • Oct 15, 2009
  • Views 2084

2009년 10월16일 자색 옷(1)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15:16)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된 예수님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1차 심문을 당하고, 이어 빌라도의 정식 재판을 받습니다. 거기서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예루살렘의 총독 관저라 할 수 있는 ‘브라이도리온’의 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빌라도의 재판은 관저 밖 광장에서 진행된 것 같습니다. 총독이 평소에 머물던 관저는 물론 지중해 연안인 가이사랴에 있습니다. 군중들이 많이 모이...

10월15일 바라바 이야기(16) [1]

  • Oct 14, 2009
  • Views 2002

2009년 10월15일 바라바 이야기(16)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15:15)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죄인을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선고가 내려진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슨 근거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을까요? 이건 정말 복잡한 물음입니다. 십자가형은 반역죄를 일으킨 죄인에게만 해당됩니다. 앞에서 본대로 빌라도는 가능한대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자기의 시도가 실패하자 빌라도...

10월14일 바라바 이야기(15) [1]

  • Oct 14, 2009
  • Views 2678

2009년 10월14일 바라바 이야기(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15:15) 바라바와 예수의 운명이 극으로 갈렸습니다. 바라바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예수는 십자가 처형에 던져졌습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바라바를 좀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라바만 아니라면 예수님이 유월절 사면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을 테니까요. 바라바의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억울할 겁니다. 바라바는 특별 사면을 위해서 예수와 적극적으로 경쟁한 게 ...

10월13일 바라바 이야기(14) [1]

  • Oct 12, 2009
  • Views 1854

2009년 10월13일 바라바 이야기(14)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15:15) 바라바는 풀려났습니다. 민족 해방을 위해 투쟁한 용사가 민중들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7,80년대에 감옥에 갇혔던 통일 열사가, 또는 민주 열사가 87년 6월 항쟁 뒤로 풀려난 것과 비슷하니까요.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일에 우리의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야 합니다. 그런데 위 본문의 상황은 뭔가 ...

10월12일 바라바 이야기(13) [2]

  • Oct 11, 2009
  • Views 1884

2009년 10월12일 바라바 이야기(13)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15:15)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빌라도는 민중에게서 점수를 얻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바라바를 풀어 주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석방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추수주의) 정책입니다. 포퓰리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치 지도자가 독단이 아니라 민중의 생각을 따른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민중에 영합하느라 바른 정치를 펴지...

10월11일 바라바 이야기(12)

  • Oct 10, 2009
  • Views 1916

2009년 10월11일 바라바 이야기(12)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15:14) 어제의 묵상에서 거론된 민중 개념과 민주 개념의 추상성에 대해서 오늘 보충해야겠습니다. 누가 민중일까요? 간단하게 간추리겠습니다. 사회적으로 눌린 자들이 민중입니다. 배운 게 없고, 돈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만이 세상의 혁명을 꿈꿉니다. 이런 꿈을 꾸는 이들에 의해서 세상은 변합니다. 대충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오늘 한국사회의 변...

10월10일 바라바 이야기(11)

  • Oct 09, 2009
  • Views 2159

2009년 10월10일 바라바 이야기(11)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15:14) 예수님에게 민중은 누구일까요? 이는 곧 기독교 신앙에서 민중의 자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민중 신학자들은 민중 메시아론을 주창하기도 합니다. 민중의 바로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민중사관과 민주(民主)주의는 서로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진보적이고 지적인 신자들 중에서 교회의 민주주의를 주...

10월9일 바라바 이야기(10) [1]

  • Oct 08, 2009
  • Views 1716

2009년 10월9일 바라바 이야기(10)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15:14) 빌라도는 민중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 이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이에 민중이 더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저 고함은 오늘 이 시대에도 그대로 우렁차게 울립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고함입니다. 돈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돈 되는 일을 방해하는 것...

10월8일 바라바 이야기(9) [4]

  • Oct 07, 2009
  • Views 1972

2009년 10월8일 바라바 이야기(9)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5:13) 영적인 변화에 대한 어제의 묵상을 오늘 보충해야겠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영적인 변화는 내면의 변화입니다. 이 내면을 감정이나 마음의 차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감정이나 마음은 여전히 외면에 속합니다. 이것은 ‘인격’(personality)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데요. 인격의 가장 깊은 차원을 우리는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그 영혼이 바로 내면의 세계입니다. 감정과 심리는 오히려 인격의 바깥 영역입니다. 인격의 가장 ...

10월7일 바라바 이야기(8) [4]

  • Oct 06, 2009
  • Views 2494

2009년 10월7일 바라바 이야기(8)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5:13) 아, 듣고 싶지 않은 고함소리를 결국 듣게 되었습니다. 민중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그들은 민족 해방의 영웅인 바라바가 자신들을 구원하지 예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 걸까요? 아니면 대제사장의 선동에 놀아난 것뿐인가요. 어느 쪽이든지 절망적인 일입니다. 바라바와 예수는 여러 면에서 비교됩니다. 우선 비슷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바와 예수는 똑같이 삶과 세상의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했습...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