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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6일 베드로의 울음(7) [4] [1]

  • Sep 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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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6일 베드로의 울음(7)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14: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참 점잖은 표현이군요. 수사학에 능한 당대의 웅변가가 상대를 설득하는 한 과정처럼 보입니다. 어부 베드로가 언제부터 이런 세련된 말을 구사했을까요? 마가복음 기자의 각색일까요? 이 자리에서 그런 편집과정을 따질 계제가 아니니 덮어둡시다. 어쨌든지 우리는 지금 본래의 투박하고 직선적인 성격과 말...

9월15일 베드로의 울음(6) [3]

  • Sep 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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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5일 베드로의 울음(6)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14:71) 세 번이나 거듭해서 “당신은 예수와 한 통속이야.” 하는 말을 들은 베드로는 급기야 저주하며 맹세했다고 합니다. 이럴 수가 있을까요? 너무 심하지 않나요? 앞에서 두 번 부인한 수준으로 이번에도 부인하고 넘어갈 일이지 어쩌자고 저주 맹세를 한단 말인가요? 유대인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의 출생, 또는 운명을 저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주하다”는 뜻의 헬라어 ‘아나테마티제인’은 성서에서 늘 저주받...

9월14일 베드로의 울음(5)

  • Sep 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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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4일 베드로의 울음(5)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14:70) 베드로는 두 번째로 예수와의 관계를 부인했습니다. 차마 자기 입으로 발설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한번 꺼낸 말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습니다. 거짓말은 또 다시 거짓말을 낳게 됩니다. 한번 죄를 범하면 자연스럽게 똑같은 죄를 범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태 앞에서 독자들의 심정은 좀 복잡할 것 같습니다....

9월13일 베드로의 울음(4)

  • Sep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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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3일 베드로의 울음(4)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14:69) 여종을 향해서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시치미를 뗀 베드로는 아래뜰에서 앞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보자는 계산이었겠지요. 여종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곳에 머물던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고 떠벌렸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이 여자가 야속할 겁니다. 무슨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계속 따라다니면서 베드로의 약...

9월12일 베드로의 울음(3)

  • Sep 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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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2일 베드로의 울음(3)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14:68) 하인들 사이에 끼어서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쳤습니다. 대제사장의 여종을 통해서 그의 정체가 들통 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산헤드린 공의회를 통해서 사형 선고를 받은 나사렛 예수와 일당이라는 겁니다. 돌아가는 형편이나 파악할 요량으로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온 그에게 당혹스런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여종의 말을 반박했습니다. 말도...

9월11일 베드로의 울음(2)

  • Sep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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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1일 베드로의 울음(2)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14:67) 지금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하인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심문을 받기 전에 그는 이미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그가 불을 쬐고 있다는 사실을 54절과 67절, 두 번에 걸쳐서 확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이렇게 한가롭게 불을 쬐고 있을 입장은 못 됩니다. 자기의 정체를 숨기려는 포즈였겠지요. 대제사장의 여종이 그를 보았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여자...

9월10일 베드로의 울음(1) [3]

  • Sep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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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0일 베드로의 울음(1)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14:66) 예수님이 산헤드린에 의해서 사형 선고를 받고 모욕을 받았다는 보도에 이어서 이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수치스런 사건에 대한 보도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세 번에 걸쳐서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양자 모두 예수님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전자는 교회 공동체 밖에서 행해진 부정이라면 후자는 안에서 행해진 부정입니다. 후자가 더 비극적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도망”(막 14:50)했지만 베드로만...

9월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3)

  • Sep 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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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3)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14:65) 유대의 산헤드린 공의회가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사실은 근거가 있을까요? 복음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이 산헤드린 공의회의 현장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심문은 심야에 이뤄졌고, 그 심문과 회의는 일반인들에게 공...

9월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2) [1]

  • Sep 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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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2)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14:65) 산헤드린 법정에 의해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후에 예수님에게 대한 모욕과 린치가 가해집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물론 산헤드린 의원이었겠지요. 그들은 두 가지 모욕을 가했습니다. 첫째, 침을 뱉었습니다. 침을 뱉는 것은 극심한 경멸을 뜻합니다.(민 12:14, 신 25:9, 욥 30:10 참조) 빌라도에 의해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에도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뱉었...

9월7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1) [2]

  • Sep 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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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7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1)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14:64) 예수님이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어제 묵상의 진술이 불편하게 느껴지신 분들이 계신가요? 초월의 한 특성은 전지전능입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의 능력으로 공생애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인간들에게서 보이는 모든 인식론적 한계를 그대로 안고 사셨습니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反)기독교적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어...

9월6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0) [1]

  • Sep 0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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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6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0)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14:64)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유대의 최고 법정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단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어제의 묵상에 이어 오늘 조금 더 보충하겠습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유대교와 구별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놓여 있습니다. 즉 신의 본질에 대한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본질은 초월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또는 하나님을...

9월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9)

  • Sep 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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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9)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14:64) 위 구절은 기독교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일종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운명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에 의해서 예수님은 신성을 모독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유대 사회에서 그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자는 죽어야만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신성 모독자로...

9월4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8) [2]

  • Sep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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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4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8)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14:63)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대제사장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자기 옷을 찢으며 더 이상의 증인이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옷을 찢는다는 것은 극한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회개할 때나 참기 힘든 고통을 당했을 때 그들은 옷을 찢습니다. 때로는 재를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식음을 전폐하겠지요.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증인을 내세웠습니다...

9월3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7) [3]

  • Sep 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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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3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14:62) 예수님은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다는 것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궁극적인 것을 보려면 그것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궁극적인 것들, 또는 의미 충만한 것들은 대개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둑을 예로 들어봅시다. 가로 세로 19줄의 모눈 눈금으로 된 바둑판에 ...

9월2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6) [4]

  • Sep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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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2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14:62) 예수님의 대답 중에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을 문자적인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아마 없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순진하기는 해도 어리석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어렸을 때 “너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단다.”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여 혼자 심각해 하던 어린아이와 비슷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분들보다 문제가 더 심각한 사람들은 ...

9월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5)

  • Aug 3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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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14:62) “내가 그니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앞의 것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뒤의 것은 그 대답에 대한 설명, 또는 해석입니다. 인자(人子)는 앞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세상 마지막 때 심판자로 올 어떤 이를 가리킵니다. 낱말 뜻으로는 단순히 ‘사람의 아들’...

8월3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4)

  • Aug 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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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3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14:62) 대제사장이 답답하게 느낄 정도로 침묵을 지키던 예수님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그니라.” 대제사장이 기대한 대답일까요? 예수님이 실제로 이렇게 대답하신 걸까요? 그걸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뉘앙스로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과 대제사장이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훗날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 제자들의 믿음이 이 대답에 담...

8월30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3) [1]

  • Aug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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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30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3)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14:61) 앞에서 우리는 대제사장의 세 가지 질문을 각각 짚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보충하겠습니다. 그 질문에는 그럴만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는 질문은 단순히 침묵하신 예수님의 태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는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의 생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두 질문은 차이가 있습니다. 태도에 대한 것은 별로...

8월2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2) [3]

  • Aug 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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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2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2)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14:61) 두 번에 걸친 대제사장의 질문 앞에서 예수님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뭔가 예수님에게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 이제 대제사장은 단도직입적으로 세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이 질문도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아를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말이나...

8월2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1) [2]

  • Aug 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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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2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1)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14:60) 대제사장의 두 번째 질문은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입니다. 대제사장은 예수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여러 증인이 나서서 제 각각 떠든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예수를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어느 증언도 일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증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직접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대답에 따라서 앞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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