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7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0) [3]
2009년 8월27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14:60) 거짓으로 증언하던 사람들의 말이 다 끝났습니다. 그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가복음 기자는 56절과 59절에서 반복해서 지적했습니다. 예수를 향한 그들의 증언은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갖출 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대제사장이 직접 나섭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질문은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입니다. 이 질문은 무...
8월26일 대제사장 관저에서(9) [4]
2009년 8월26일 대제사장 관저에서(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14:59)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를 모함하는 이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지적합니다. 그것이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미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불가사의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으로도 안 되는 것이고, 로마의 법으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법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그 법은 칼과 같아서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정의를 세우기도 하지만 허물기도 합...
8월2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8) [3]
2009년 8월2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14:58) 거짓으로 증언하러 나선 이 사람이 발설한 내용은 막 13:2절에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갈 때 제자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성전의 돌들과 건물이 얼마나 장엄한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제자들의 이런 감탄사는 당시 일반인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다윗이 자재를 준비하고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
8월24일 대제사장 관저에서(7) [3]
2009년 8월24일 대제사장 관저에서(7) 어떤 사람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하여 이르되(14:57) 사람들이 왜 거짓으로 증언할까요? 그 이유는 가지각색이겠지요. 어제의 묵상에서 말씀드린 대로 친분에 따라서, 또는 금전적 이익에 따라서 거짓으로 증언합니다. 그런 증언은 악입니다.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 증언은 어떨까요? 사람이 살다보면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는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기독교 윤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규범윤리이고, 다른 하나는...
8월2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6) [3]
2009년 8월21일 대제사장 관저에서(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14:56)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죽일 작정을 했습니다. 예수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는지에 대한 심문을 하기 전에 이미 선고를 내린 셈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제 증인을 찾는 것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의 재판은 증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증인이 한 사람이면 효력이 없습니다. 많을수록 좋긴 하지만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이 증언을 해야만 그 증언의 내용이 법적 효력...
8월20일 대제사장 관저에서(5) [1]
2009년 8월20일 대제사장 관저에서(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14:55) 산헤드린 공의회 구성 인원은 대략 70명입니다. 그들은 유대사회에서 뽑히고 뽑힌 엘리트들입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개인적으로 애를 많이 썼고, 운도 따랐겠지요. 인격적인 부분에서도 자기 훈련이 잘 되었고, 세상을 다스릴만한 능력을 갖춘 이들입니다. 그들은 불편부당하게 재판을 할 만한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먹칠할만한 일...
8월1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4) [3]
2009년 8월19일 대제사장 관저에서(4)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14:55) 위 구절에 따르면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를 죽이려는 목적을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증거만 찾으면 됐습니다. 그들이 그런 목표를 설정하게 된 이유도 있겠지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렇게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어느 정도 해명이 됐습니다만 여기서 보충하는 게 좋겠군요. 그들은...
8월1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3) [1]
2009년 8월18일 대제사장 관저에서(3)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14:54) 악이 공모되는 자리에 산헤드린 의원만이 아니라 베드로도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체포 순간에 다른 제자와 함께 도망갔었습니다. 그가 다시 등장했다는 건 자신의 잘못을 깨우쳤다는 뜻일까요? 본문은 명시적으로는 물론이고 암시적으로도 그런 생각을 비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웃음이 나는군요. 베드로가 누굽...
8월16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 [2]
2009년 8월16일 대제사장 관저에서(2)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14:53) 산헤드린 공의회는 정의를 세우는 최고 법정입니다. 인류가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마련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지요. 만약 산헤드린이 없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될 겁니다. 무법천지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입니다. 산헤드린은 법으로 주먹을 다스릴 수 있는 특별 권한을 확보한 기관입니다. 이것이 법의 사회적 기능이겠지요. 법에 의해서 작동되는 세상이 상대적으로 건강하다는 사...
8월1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 [2]
2009년 8월1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14:53)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드리다가 체포당한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관저로 끌려갑니다. 마태와 누가는 이 대제사장의 실명을 ‘가야바’라고 밝힙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가야바에게 가기 전에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끌려갔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가야바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인인 가야바가 아니라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대제사장의 관...
8월14일 제자들의 줄행랑(3) [2]
2009년 8월14일 제자들의 줄행랑(3)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하니라.(14:52) 예수님의 체포 장면에 한 청년이 등장합니다. 그 청년은 체포당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기특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쳤는데 이 청년만은 그래도 예수님의 뒤를 따랐으니까요. 그런데 이 청년의 복장이 특이합니다.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둘렀다고 합니다. 홑이불을 두른 거야 그 당시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입는 거니 이상할 게 없지만 속에 아무 것도 안 입었다는 건 좀 그렇군요. 예수님을 호송하던 군...
8월13일 제자들의 줄행랑(2) [3]
2009년 8월13일 제자들의 줄행랑(2)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14:51) 결정적인 순간에 줄행랑을 친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우리가 그들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시몬과 안드레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그물과 배와 가족까지 모두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삼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가끔 예수님...
8월12일 제자들의 줄행랑(1) [4]
2009년 8월12일 제자들의 줄행랑(1)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14:50) 예수님이 체포당하는 순간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다고 마가복음 기자는 증언합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과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이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앞에서 무기력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진술이 과장은 아닌 듯 보입니다. 그게 좀 이상하긴 합니다. 스승이 억울하게 체포당했으면 제자들이 모여 무언가 조치를 강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
8월11일 예수의 체포(8) [4]
2009년 8월11일 예수의 체포(8)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14:49) 마가복음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의 체포 사건은 성경의 실현이라고 합니다. 이런 논조는 이 체포 사건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설화와 수세, 그리고 십자가 처형과 부활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다 거기에 포함됩니다. 큰 줄기만이 아니라 일종의 해프닝 같은 이야기들에도 구약이 그 근거로 제시됩니다. 예컨대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는 사...
8월10일 예수의 체포(7) [5]
2009년 8월10일 예수의 체포(7)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14:49)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 권력자들은 야밤에 무장한 병사들을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어제의 묵상 구절이 말하듯이 그들은 강도를 잡을 듯한 태도로 강도짓을 한 겁니다. 그것이 왜 강도짓과 같은 것일까요? 그들의 행위가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 은밀히, 그러나 전격적으로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예수님이 도주의 우려가 ...
8월9일 예수의 체포(6) [2]
2009년 8월9일 예수의 체포(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14:48) 예수님은 자기를 체포하러 온 이들에게 당신을 강도 취급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끌고 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무장한 병사들이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을 통해서라도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말씀이었습니다. 진리를 말씀으로 가르쳤고, 병든 자를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무장 병사를 보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
8월8일 예수의 체포(5) [3]
2009년 8월8일 예수의 체포(5)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14:47) 예수님이 체포당하는 순간에 예수님 곁에 있던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들고 한 병사의 귀를 내리쳤습니다.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장면입니다. 요한복음은 그를 베드로라고 지칭합니다. 워낙 성격이 급한 인물이니 그렇게 나설 만도 합니다. 그러나 칼을 휘두른 인물이 베드로인지, 제자 중의 한 사람인지, 그 이외에 예수를 따랐던 사람인지, 또는 예수를 체포하러왔던 병사 중의 한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
8월7일 예수의 체포(4) [1]
2009년 8월7일 예수의 체포(4)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14:46) 유다의 입맞춤 신호와 함께 병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경찰이 피의자를 검거하는 장면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흉악범이라도 된다는 것일까요? 도주의 우려가 있으니 구속시켜야한다는 걸까요? 참으로 딱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는 과정은 여러모로 비정상적입니다. 앞의 묵상에서 몇 번 짚었듯이 제자에게서 배신당한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자의 배신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위대한 스승들에게서는 좀처럼...
8월6일 예수의 체포(3) [5]
2009년 8월6일 예수의 체포(3)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14:45) 유다는 스승에게 와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병사들이 체포해야 할 대상을 그런 식으로 암시한 것입니다. 그런 입맞춤은 당시의 의례적인 인사법입니다. 지금도 중동 사람들은 왼뺨과 오른뺨을 서로 맞대는 방식으로 인사를 나눕니다. 이 장면은 극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많은 연극에서 비슷한 장면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유다의 입맞춤 장면이 역사적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전하고 있는 공관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은 유다...
8월5일 예수의 체포(2) [1]
2009년 8월5일 예수의 체포(2)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14:44) 유다가 배신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서 어제 잠시 설명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오늘 보충하겠습니다.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들의 꿈을 이뤄보려고 했습니다. 그 꿈은 나름으로 진정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또는 예수님과 함께 절박한 현실을 극복해보고 싶다는 꿈 말입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은...